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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데와소피 Jan 10. 2024

2023 읽은 책 결산

김소피의 독서기록

2023년은 공부가 되는 책들을 많이 만나서 그런지 책을 정리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책 내용 요약은 포기하고(이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보다 당연히 책의 내용이 더 풍부하다), 책을 선정하고 읽은 계기와 책을 통해 얻은 영감과 질문들을 위주로 결산을 하고자 한다.




사이버네틱스를 더 알아보기


20203년에도 체계이론, 시스템사고, 사이버네틱스 공부는 계속되었다. 올해는 크게 캐서린 헤일스의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와 장피에르 뒤피의 '마음은 어떻게 기계가 되었나'를 읽었다. 두 책 다 소화하기에는 아직 버거운 지점들이 많아 완독까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사이버네틱스의 기원과 그 내용, 관련된 학자들에 대한 상세한 소개, 사이버네틱스 내에서의 논쟁과 발전 단계들을 훑어볼 수 있었다. 마침 2023년 8월에는 사이버네틱스의 창안자라 할 수 있는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가 번역됐다.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국내 관심이 점차 늘어나는 것 같고, 덕분에 관련 공부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김초엽과 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는 2021년에 이미 꽤 화제가 되었던 논픽션이지만, 사이버네틱스 공부를 하면서 눈에 들어왔다. 계속 어려운 번역 책들을 보다가 반가운 마음에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의 지점에서 영감을 얻었다. 두 저자는 무언가를 '결여', '손실', '장애'로 보는 것이 '정상'을 상정한 인식의 문제라는 것을 새삼 알려준다. 어떤 농인들은 청각을 회복하는 것을 택하는 대신에 ‘듣지 못함’을 하나의 문화, 농문화라 칭하고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이 같은 인식의 전환이 내가 고민하는 '분단'문제에도 연결되었다. 장애인의 장애가 '장애'가 아니고 '다름'이 되는 것처럼, 한반도의 분단도 민족의 '손실'이 아닌 '다름'이 될 수 있을까? 정상이라 상정되는 몸을 기준으로 장애가 정의된 것처럼, 민족의 공간으로 상정되는 한반도가 분단을 문제로 정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분단 문제를 '한반도'라는 지리적 표상(지리체)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싶어졌다.



게임학 입문하기


2023년은 게임 이론에 대한 이해도 꽤 넓힌 한 해였다. 게임 관련 주제로 나오는 출판물 관심 있게 보는 편이지만 막상 제대로 읽을 기회는 없다가, 게임을 주제로 하는 스터디 모임을 하게 되면서 이번엔 본격적으로 읽어 나갔다. '게임: 행위성의 예술'은 모임에서도 같이 읽기로 처음 선정한 책으로, 근래 출간된 게임 관련 책들 중에서 관심도 많이 받고 흥미로운 논점을 가진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는 게임을 '행위성'이 아닌 '세계 창조'에 관점에서 더 재미있어 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의 장르인 건설 시뮬레이션이란 점도 그렇고, 게임 속 분투를 즐기며 엔딩까지 아름답게 완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게임이 어떻게 세상을 구현하는지 그 시스템에 늘 더 관심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자연스럽게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 게임'을 책을 찾아 읽게 됐다. 이 책은 이런 시뮬레이션류의 게임들이 왜 재미있고, 왜 이전의 게임들과 다른지를 설명한다. 저자 프라스카의 문제 제기 덕분에 게임의 분석과 비평은 내러티브에 집중했던 것을 넘어서 플레이어의 개입과 행위 그리고 시뮬레이션 구조에 초점을 맞춘 게임학(Game Studies, 혹은 루돌로지 Ludology)이라는 새로운 학술적 장르를 개척하게 된다. '시스템으로 풀어보는 게임 디자인'은 게임 개발을 시스템 사고의 관점에서 고찰한 책이라 반가웠다. 이 책에서는 시스템 사고에서 자주 설명되는 피드백 루프와 시스템 원형 등이 게임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설명된다. 시스템 사고에 비추어 시뮬레이션 게임 구조를 생각하니 게임이 보다 공학적으로 다가왔다.



지도와 내셔널리즘


‘지도에서 태어난 태국'은 국가의 정체성과 이미지가 근대적인 의미의 지도 만들기에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태국은 한국과 달리 주변에 여러 나라와 맞닿은 지점이 많은 국가다. 왼쪽으로는 버마가 있고, 위로는 중국, 오른쪽으로는 라오스와 캄보디아, 베트남도 있고 아래로는 인도네시아가 있다. 저자 위니짜꾼은 지도를 획정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태국다움이며, 무엇이 태국 문화인지에 대한 경계가 그어졌다고 본다. 태국의 지도 이야기는 한민족의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도 제시한다. 한반도의 국경이 구획된 때는 언제이고, 한민족은 언제부터 그 국경을 통한 내부와 외부를 인지하였을까?

 


일단 근대적인 시점에서 이를 그린 '두만강 국경 쟁탈전'이라는 책을 먼저 펼쳤다. 청나라 황제의 부탁으로 두만강 지역 국경 조사 작업을 하게 된 서양인 선교사 이야기에서부터,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백두산은 원래 조선의 영토 바깥에 위치했었던 사실, 한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간도에 대한 지배권을 점차 넓히려 했던 일본제국의 전략까지 새롭게 알게 된 지점들이 참 많았던 책이었다. 근대적 국가로 변모하던 청과 대한제국, 일본 제국의 국민만들기 작업을 이해하는 데에는 이미 분화된 종족 의식과 영토 감각도 이해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적어도 대한제국의 영토는 그 국가 이전에 종족 혹은 민족의 영토 개념으로서의 '한반도'가 존재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민족이 근대의 발명품이라는 논의에는 어떤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할까? 책 '족류: 상징주의와 민족주의'는 민족이 만들어지는데 정치적 제도 외에도 문화적 상징자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유용한 설명을 주지만 '국가'의 차원에서도 더 설명이 필요하다 느꼈다. 2024년에는 한민족의 영토 개념을 더 잘 이어줄 수 있는 이론적 틀 거리나 비교 사례가 있는지 좀 더 찾아보려 한다.



새로운 철학


'존재의 지도'는 소위 객체지향적존재론이라는 새로운 철학적 사조를 반영하는 책이다. 브라이언트는 모든 존재를 '기계'로 바라보자고 주장한다. 사물(객체)은 주체에 의해 움직여지는 피동적인 존재만이 아니다. 실은 모든 사물들은 서로 연결되어 움직이는 기계들이다. '분해의 철학'은 어쩌면 그 기계들이 돌아가기 위해 재료로 사용한 것들이 배출되고 난 것, 그것을 처리하는 또 다른 기계들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우주의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다시 분해되고, 재조립된다. 인간만이 아닌 인간 주변과 인간 너머의 존재들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는 이런 책들에게서 인간이 중심이 아닌 철학의 씨앗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생각은 이쪽 철학들 쪽에 있을 것이다.



레빈의 '형식들'은 문학 비평의 형식이 곧 사회 비평에도 쓰일 수 있다는 과감한 주장을 한다. 나는 이 주장이 곧바로 납득이 되었는데, 언어가 곧 사회의 기본적인 매체이자 형식인 것은 루만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도 나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레빈의 이론과 루만의 이론은 서로 만나면 더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읽은 소설들


2023년에는 8~9권 정도의 소설을 읽은 것 같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3권을 골라봤다. 첫 책은 애서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되는 소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다. 소설의 탈을 쓴 철학적 사색인데, 되려 난 그 점이 좋았다. 어떤 책이든 그 내용에 맞는, 작가가 하고 싶은 모양의 맞는 형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어시그의 글은 그와 함께 여행하면서 사고하게 해준다. 나는 철학이 어떤 면에서는 이야기이고 여행이라 생각한다. 차페크의 '도롱뇽과의 전쟁'은 마치 잡지나 사전 같다. 한 장 한 장, 연결되는 듯 분절된 이야기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인류와 도롱뇽과의 관계가 매우 다양한 각도에서 펼쳐진다. 이런 백과사전식의 설명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라... 그를 (안톤 체홉 다음의) 최애 작가로 선정했다.



전춘화 작가의 '야버즈'는 2023년 읽은 소설 중 가장 마음이 움직인 작품이다. 조선족을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랐는데 이 소설이 그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나도 '이주민'이라는 걸 깨달았다. 국내에서의 이동을 우리는 보통 이주라고 잘 부르지 않기에 나 역시 나의 생의 경로를 이주라고 이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 시골에서 살았을 때의 경험과 지금 서울에서 사는 경험이 꽤 이질적이고 단절되어 있고, 나도 조선족들만큼이나 과거 살았던 곳에 대한 향수와 기억을 갖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선주민과 이주민의 구분이 생각보다 명확하지 않다. 신혜란의 책 제목처럼 차라리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 이 문구를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떨까.




글. 김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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