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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양 Apr 04. 2023

흰 머리카락, 하나에 100원


“앗, 따가워!”


동사무소 직원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뒤통수가 따끔했다. 뒤를 돌아보니, 소파에 앉아있던 엄마가 어느새 내 뒤에 와있었다. 엄마는 살짝 멋쩍게 웃으며, 내 흰 머리카락 하나를 들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것저것 처리해야 할 행정업무가 있어서 혼자 영주에 내려갔었다. 날이 더우니 동생 가게에 계시라고 해도 엄마는 굳이 나를 따라나섰다. 무더운 여름날 우리는 그늘을 골라가며 동사무소로 걸어갔다. 동사무소에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이 훅하고 우리를 반겨주었다. 엄마는  앉아 있다가, 내 뒤통수에 삐죽 나와 있던 흰 머리카락 하나를 본 모양이었다. 나는 머리카락이 뽑힌 곳을 긁었다. 말없이 내 머리카락을 들고 있는 엄마를 보니 ‘너도 이제는 흰머리가 나는 나이가 되었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무더운 여름날 오후, 엄마는 가게에 손님도 뜸하거나 바쁜 일이 없는 날이면 가겟방에 누워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했다. 하나에 100원씩. 나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열심히 뒤적였다. 엄마는 내가 머리를 만지면 졸다가 흰 머리카락을 찾아내서 뽑으면 깼다가를 반복했다. 엄마는 할 일이 없이 한가롭게 누워있는 일이 드물었다. 밤에도 손님이 물건을 사러 오면 팔아야 하는 시골의 작은 가게는 영업시간이라는 것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늘 잠이 부족했다. 나와 함께 외상장부를 정리하다가도 졸곤 했다. 나는 엄마가 졸지 않고 나와 이야기도 해주고 놀아주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늘 피곤해했고 일을 하지 않으면 졸고 있었다. 졸고 있는 엄마라도 함께 있고 싶었던 나는 머리카락을 뽑는 그 잠깐의 시간이 좋았던 것 같다.


나는 가끔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욕실에서 흰머리를 뽑는다. 족집게를 들고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뒤적인다. 그러다가 하얀 것이 반짝하면 검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들춰서 흰머리를 뽑는다. 까만 머리 사이로 삐죽 나온 흰머리만을 뽑았을 때, 쏙 하고 빠지는 느낌이 좋다. 어떤 날은 한두 개 정도만 찾을 때도 있지만 요즘은 꽤 많이 찾게 되었다. 그럴 때면 엄마의 흰머리를 찾아 엄마의 머리를 뒤적이던 그 여름날이 생각난다. 생각해 보니 그때의 엄마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 한참 어렸다. 고생을 많이 하고 속상한 일이 많으면 흰 머리카락이 많이 난다고들 하는데, 무엇이 엄마의 흰머리를 만들었을까? 100원, 200원, 300원 세느라 흰머리가 엄마의 눈물이고 땀인 줄도 모르고 마냥 좋아하던 것이 미안해진다. 이제는 염색해야 할 정도로 모두 하얗게 새어버린 엄마의 머리카락은 어쩌면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그 안에는 머리카락을 뒤적이며 하나라도 더 찾으려고 했었던 철없던 어린 마음도 들어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가게 일과 집안일을 하며 힘든 육체의 고단함 또한 들어있다.


6년 전 위암 진단을 받은 엄마는 위를 거의 잘라냈었다. 한 달 가까이 입원했다가 퇴원한 엄마는 한동안 파마나 염색을 할 수 없었다. 젊은 시절 풍성하던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빈 곳이 많아졌다. 실수로 몇 개쯤 까만 머리카락을 뽑아도 티도 나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까만 머리카락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흰머리만 뽑아래이~ 까만 거 뽑으며 한 개에 100원씩 뺀데이.”


내가 실수로 까만 머리를 뽑으면, 엄마는 졸다가도 귀신같이 알고 이렇게 말했었다. 밤에 머리카락을 뒤적이다가 흰머리를 뽑는다는 것이 잘못해서 까만 머리를 뽑을 때, 엄마의 말이 떠오르곤 한다. 나도 언젠가는 족집게로는 감당할 수 없어질 날이 오겠지. 그때는 나도 엄마처럼 할머니라고 불리는 날일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눈물과 땀의 결정체인 흰 머리카락 덕분에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듯이, 나도 흰머리 하나가 생길 때마다 조금씩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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