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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양 May 19. 2023

음식이 주는 힘

남편은 내가 요리하는 뒷모습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입에 맞는 음식을 해주면 언제나 맛있게 먹으면서 칭찬이랍시고 결혼의 이유에 대해서 말한다. ‘얼굴이 예뻐서 한 게 아니고, 뒷모습에 반했다고?’라고 내가 화난 척을 하면 남편은 웃으며 말한다. ‘얼굴은 뭐 말할 것도 없지.’라고 한다. 역시 남편은 살아가는 방법을 좀 안다. 남편은 먹는 것을 좋아한다. 결혼의 첫 번째 조건이 배우자의 요리 실력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남편과는 스노보드 동호회에서 만났다. 남편 지인이 운영하는 스키샵이 바빴던 날, 내가 열댓 명 되는 직원들의 점심을 챙기게 되었다. 그날 추운 슬로프에서 강습하고 온 남편은 내가 끓여준 김치 콩나물국에 홀딱 반했다. 김치 콩나물국을 끓이는 뒷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뜨끈한 국 한 그릇에 추위로 얼어붙은 몸이 풀리면서 마음도 함께 풀렸던 것이다.


나는 어릴 적 자주 귀에서 ‘삐-’하는 소리가 났었다. 엄마에게 말하면, “한동안 고기를 못 먹어서 그런가 보다. 고기 묵어야겠다. 그럼 괜찮아져.”라고 했었다. 그러고 다음 날이나 그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밥상에 고기가 올라왔다. 고기라고 해봐야 닭고기였지만, 늘 된장찌개와 나물, 김치뿐인 시골밥상에 닭고기는 그야말로 특식이었다. 엄마는 항상 닭을 삶아주었는데, 가끔은 치킨이 먹고 싶어 투정을 부리기도 했었다. 요즘도 엄마는 가끔 돈을 보내주시며, ‘소고기 사 먹어. 선우랑 김 서방 구워주고, 너도 많이 먹어.’라고 하신다. 아이는 한창 클 때이니 잘 먹어야 하고, 사위는 힘들게 일하니 잘 먹어야 한단다. 그리고 나는 딸이니까 잘 먹어야 한다. 한참 우리 남매를 키울 때, 마음은 늘 소고기를 먹이고 싶었을 엄마에게 있어 소고기란 얼마나 대단한 음식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아침에 아이가 연신 재채기를 해대더니 결국 저녁에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밤사이 기침하느라 뒤척이며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다음날 병원에 가니 목이 조금 빨갛긴 하지만 붓거나 항생제를 쓸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고 했다. 과연 하루 이틀 약을 먹이니 차도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 감기를 가져와 버린 모양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와 미세먼지 그리고 아이의 감기,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목감기에 걸려버렸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책을 읽는데 머리가 아프고 어질어질했다. 잠시 쉬려고 누웠다가 그대로 몇 시간이나 자버렸다. 그랬는데도 몸은 개운해지지 않았고 머리는 무겁고 팔과 다리가 욱신거렸다. 병원에 갔다 오면서 엄마가 보내 준 돈으로 소고기를 샀다. 소고기를 구웠더니, 아들은 ‘영주 고기 냄새가 난다.’라고 하며 좋아했다. 영주에 있는 동안에 거의 끼니마다 밥상에 소고기가 올라오니 소고기 냄새가 영주를 연상시켰나 보았다. 아이는 버섯, 양파, 마늘과 함께 구운 소고기를 덥석덥석 집어 오물오물 야무지게 씹어 먹는다. 나도 질세라 엄마가 보내준 청국장에 밥을 쓱쓱 비벼 소고기와 함께 먹었다. “고기를 못 먹어서 체력이 달리면 아픈 거야. 돈 걱정하지 말고 몸에 좋은 거 많이 사 먹어. 애 키우려면 잘 먹어야 한다.” 엄마의 말이 귓가에 울렸다. 진짜 고기를 못 먹어서 병이 났던 걸까. 잘 먹고 잘 잤더니 다음 날 목이 한결 괜찮아졌다.


가끔은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먹던 것도 몸이 아프면 ‘먹는’ 행동 자체에 좀 더 의미를 두게 되는 것 같다. 입 안이 헐고 입맛이 없어도, 물 한 모금 넘기기 힘들 만큼 몸이 아파도, 꾸역꾸역 입에 무언가를 넣음으로써 몸은 ‘살기 위해’ 애쓴다. 누군가 아프면 평소에는 손이 많이 가서 잘 하지 않는 특별한 음식을 해줌으로써 몸과 마음을 달래주려고 한다. 어릴 적 감기에 걸려 소아과에 갔다가 나오면 엄마는 꼭 뭐가 먹고 싶으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몇 번이나 바나나 우유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바나나 우유의 이미지는 따뜻함, 보호, 사랑을 연상시킨다. 고등어구이를 먹을 때면 껍질의 바삭함, 고소함과 함께 연탄불을 피워 석쇠에 고등어를 굽던 아버지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음식에 참기름을 넣을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기름방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다. 비 오는 날, 남동생과 함께 처마 끝에서 숯불을 피워놓고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던 기억도 있다. 사람을 떠올리면 음식이 따라오고 음식을 떠올리면 함께 먹었던 사람이 떠오른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에, 그리고 먹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는 늘 먹고 싶은 메뉴를 정확하게 요구한다. 카레덮밥, 연어구이, 고등어구이, 오리고기, 소고기, 비빔밥, 볶음밥, 소고기 미역국, 갈비찜, 계란찜…… 세상의 음식 가짓수만큼이나 요구도 다양하다. 아이도 제 아빠를 닮았는지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고기도 잘 먹고 채소도 잘 먹는다. 오이나 당근, 파프리카도 생으로 즐기고, 외가에서 할머니랑 캔 냉이나 민들레도 먹는 아이다. 내가 해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엄마가 해준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그러하듯, 아이도 크면서 음식을 먹을 때 나를 떠올리고, 나를 떠올리면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길 것이다. 아이에게도 언젠가는 몸과 마음이 지쳐 위로받고 싶은 날이 올 것이다. 그런 날에 우리가 함께 먹었던 음식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아이의 입안으로 들어가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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