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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Sep 17. 2023

시작은 아팠지만, 일상은 잔잔했다.

등교 거부, 아이와 떨어진 열흘의 시간

우울과 무기력의 늪에 깊게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던 보호입원의 시작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응급입원 이틀 포함하여 벌써 열흘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의 아이와 나의 변화에 대해 기록해 본다.



분리

응급입원 72시간이 끝나면 퇴원을 할 거라 기대하던 아이는 병동을 옮겨 정식 입원 치료에 들어간다는 소식에 꽤 흥분했고,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과정을 지켜보던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며 당장 문을 열고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내야만 했다.


병식이 없는 아이는 의료진과의 만남이 필수적이었다. 내 노력이 부족했던 건지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고, 이런저런 사건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힘들게 온 만큼 전문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자식과 강제로 떨어지는 것은 참 못할 짓이다.


약 기운인 건지, 아니면 체념한 건지 저녁에 걸려온 아이의 전화에서 다행히 안정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선 다행이다. 아이는 병원에서 치료를 할 것이고 의료진들이 잘 보살피고 계시니, 난 여기서 내 할 일을 잘하면 된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방, 그 방엔 몇 달간의 우울과 무기력, 분노의 기운과 익숙한 아이의 체취가 엉겨있다. 온갖 패브릭을 다 걷어내어 세탁했다. 커튼, 침구, 매트리스 커버, 심지어 인형까지 싹 다 빨아 햇볕에 말렸다. 아이가 돌아왔을 때 다시 무기력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그때를 기억하지 않도록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그러나 아이가 아프기 전의 그 방과는 다르다. 아이가 돌아와 새로운 기운으로 채워야 마무리가 될 것 같다.


일요일, 엄마와 오랜만에 교외 나들이를 다녀왔다. 자식을 병원에 보낸 사실 하나에 매몰되어 지금의 현실을 슬픈 드라마로 만들면 안 된다. 5개월 때부터 아이를 키워주신 엄마는 이제야 개인 시간을 즐길 수 있었는데, 아이의 등교 거부로 모든 생활을 다 잃어버리셨다. 들쭉날쭉한 아이의 기분 변화와 한 끼라도 먹이기 위한 씨름에 지친 엄마에게 가을 하늘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몇 년 전, TV를 보시며 가고 싶다고 하셨던 한탄강 주상절리길이 기억나 가는 길에 도토리 막국수도 먹고, 멋진 주상절리길도 함께 걸었다. 천천히 걸으면 두 시간 거리라 하지만, 왕년에 한 등산했던 우리는 집에 두고 온 아기 고양이 생각에 파워 워킹으로 한 시간 만에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짧지만, 파란 가을 초입의 하늘과 푸르른 자연에 마음이 많이 정화된 느낌이다. 그래, 우리도 가을 하늘을 즐길 권리가 있어.


일상

엄마는 매일 아이에게 수건과 속옷을 갖다 주시러 병원에 출근 도장을 찍으셨고, 나는 오랜만에 아무 일 없는 일주일을 보내게 되었다. 정시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삶이 이토록 편안할 줄 몰랐다. 회사가 경기도로 이사한 뒤, 가끔 아니 꽤 자주 컨디션 난조로 오전 한두 시간 휴가를 낸다는 팀원들의 휴가 알림을 받는다. 평소 성실한 친구들이고 본인들의 휴가이기에 별 말은 안 하지만, 내심 피곤함과 더 자고 싶은 욕구는 본인이 조절할 수 있으니 벌떡 일어나 출근하고 그런 자투리 휴가를 아껴 정말 의미 있는 일에 쓰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차라리 퇴근 전 한두 시간을 내어 내 시간을 즐기는데 보태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일로 알토란 같은 휴가를 쪼개어 쓰는 입장이 되면, 그때는 이해가 될까? 나도 약간은 꼰대스러움이 있긴 한가보다.


비움

몇 달간 내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음으로 느꼈던 무력감에 많이 지쳤다. 그 과정에서의 많은 자극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일상에 하나라도 더 추가되면 내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관심분야가 다양하고 하고 싶은 건 해봐야 하는 성향이라 참 많은 것들에 어우러져 살았었다. 이젠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덜어내야 한다. 더 이상 자극이 들어오면 안 된다. 지금은 아이가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을 지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내고 있다. 지인들과의 만남과 연락도 최소화하고 있다. 미안하지만, 내가 해결해야 할 게 산더미라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내 얘기를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아니 어디서부터 하지 말아야 할지 신경 쓰는 것조차도 나에겐 자극이다.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이지만, 당분간은 잠시 울타리를 치고자 한다.


희망

아침, 저녁 하루 두 번씩 아이와 통화를 한다. 언젠가 아이의 요구, 나의 잔소리 정도만 짧게 주고받던 카톡에 익숙해졌는데 이렇게 통화를 하니 낯설지만 따뜻하다. 텍스트와 사랑을 담은 목소리로 전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엄마 뭐 해?"

"응, 잠깐 뭐 사러 나왔어. 바람이 선선해졌어. 캠핑 가기 딱 좋은 날씨야."

"비가 많이 오는데?"

"아 맞다. 비가 오네. 그나저나 우리 고양이가 아직 애기라 클 때까진 캠핑 못 가겠다."

"왜? 할머니한테 맡기고 가면 되잖아"

"오 캠핑 가고 싶어?"

"우리 전에 갔었던 바닷가 보이는 캠핑장, 거기 가고 싶어."

"오케이! 엄마가 바로 알아볼게. 거기 예약 안되면 다른 곳이라도 꼭 가자."


사실, 캠핑을 접을까 했었다. 아이는 일상을 찾는 게 먼저였는데 캠핑이나 여행을 데리고 다니며 내 욕심으로 아이가 좋아질 거라 생각했던 건 아닌지 반성했었다. 그러나, 아이가 그때를 추억하고 또 가고 싶다고 하니 접을 이유가 없다. 잠시 넣어둔 추진력을 꺼내어 간신히 바닷가가 보이는 캠핑장을 예약했다.


퇴원하면 해물라면과 돈가스부터 먹을 거라는 아이,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캠핑을 하고 싶다는 아이.. 뭔가 하고 싶다는 게 생긴 것은 긍정적인 변화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변화

아이는 언제 퇴원할 수 있냐고 매번 묻는다. 그러게 나도 궁금하다. 이제 데려오고 싶은데, 병원에선 주말까지 지켜보고 다음 주 월요일에 얘기 나눠보자 하신다. 그 얘기를 나도 아이에게 똑같이 해주었는데 그걸 아이는 월요일에 퇴원한다고 이해했었나 보다.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되자 아이는 나에게 화를 냈다. 아이가 좋아졌다고 너무 성급하게 생각했나? 하긴 우울증 치료가 성격 개조는 아니지. 그래도 엄마가 이해가 잘 되게 말하지 못했다며 사과해도 계속 화만 내니 아이가 돌아온 뒤가 덜컥 겁이 났다. 우리는 다시 좋아질 수 있을까?


전화로 미처 하지 못했던 말과 미안함을 메모에 남기고 고양이 사진을 프린트하여 수건과 함께 병원에 갖다주었다. (아기 고양이 분양 후 바로 입원하여 크는 모습을 못 보는 게 안타까워 인화하여 가져다주고 있다.)


"엄마, 아침에 화내서 미안해"

"아 엄마 편지 본 거야?"

"아니"

"고양이 사진 못 받았어?"

"응"


병원에서 아이에게 주어도 되는지 확인 후 전달하신다 하셨는데, 편지가 있어서 그런지 저녁까지 아이에게 주시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아이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아이 자신인 것인가? 늘 모든 불만의 원인은 엄마로 향했었던 아이의 변화가 놀랍다. 화를 낸 후 시간이 지난 뒤, 그 상황을 이해하고 미안함을 느껴 사과를 한 것이다. 우리는 이어 가벼운 대화를 한 뒤 마지막으로 "용기 내서 사과해 주어 고맙다"란 말을 남기려 했으나 끊어진 전화에 못한 게 아쉽다. 오늘 전화가 오면 꼭 고맙다고 말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치유

그동안 사람에 치이는 것조차 힘들어 차라리 시간에 치이겠다며 자차로 출퇴근했었다. 그러나 지난주는 계속 지하철로 다니며 책을 읽었다. 새벽에 나가니 사람도 없고 다닐만하다. 무엇보다 책에서 많은 위로를 받는다.


서평까지 남기면 너무 길어질 것 같고 책도 지금 지하에 있어 기억나는 글귀를 더듬어 요약해 본다.

'힘든 삶이 나에게 왔다 억울해할 필요 없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냥 이게 인생이다.'


'딸이 조용히 무너졌습니다.'라는 책인데, 아이의 마음이 아파 갈피를 못 잡는 부모들이 단단해질 수 있도록 의사인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쓰신 책이다. 사실, 그 책을 읽으며 모든 부모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 조차도 무지했던 아이들의 마음의 병, 사실은 우리 삶에 깊게 스며들고 있었단 걸 미리 알았다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접근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지난 열흘의 시간은, '시작은 아팠지만 일상은 잔잔했다'로 요약할 수 있겠다. 아이의 방을 깨끗이 치우고, 상한 곳을 수리했다. 그리고 새 침구를 들였다. 아이는 호텔의 침구를 참 좋아하는데(누가 싫어하겠냐만은) 비슷한 느낌이라도 나게 하얀 침구를 새로 샀다. 아이에게 그 얘기를 하니 예전 이불이 좋았다 하길래 버리려고 비닐에 넣어두었던 걸 부랴부랴 꺼내놓긴 했다.


우리는 이제 아이를 기다린다. 돌아오는 주에 꼭 만나고 싶다. 아무리 중요한 회의가 있어도 가장 빠른 날로 퇴원날짜를 잡고, 집에 와 식구들을 본 뒤 바로 해물라면을 먹으러 갈 것이다. 딸이 정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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