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1 - 2022.06.24
세상에 상처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무언가가 다른 사람에게는 깊이 생각할 화두일 수 있고, 한 사람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 다른 사람에게는 경악할만한 행동이 될 수 있다.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행동과 말들은 의도를 했든 하지 않았든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 역시 세상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다.
1. ‘나’ VS 세상
‘나’의 아버지는 오랜 무명배우 시절 동안 뒷바라지를 해준 아내를 배반하고 집을 나갔다. 오랫동안 정든 집에서도 나와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생활하는 ‘나’는, 한 몸을 누일 집을 찾기 어려운 것 이상으로 마음의 안식처를 찾기 어려워한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아버지를 위한 희생을 지켜봐온 ‘나’로서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강하게 느꼈으리라. 또한 사회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가장 작은 울타리인 가족이 붕괴되면서 정신적으로 타격이 컸을 것이다.
‘나’는 비슷한 가정 불행사를 가진 요한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어쩌면 요한도 그래서 ‘나’와 더욱 친밀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의 사랑을 대하는 태도는 정반대이다. ‘나’는 ‘그녀’에게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껴 깊은 사랑의 감정을 키워가는 반면, 요한은 사랑을 믿지 않고, 어떤 여자와도 몇 달 이상 연애하지 못하는 “섹스가 전부인 인간”이다. 이 태도의 차이는 각자의 어머니의 삶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나’의 어머니는 어쨌거나 헌신적인 태도로 한 남자를 사랑했지만 요한의 어머니는 요한을 가진 채로 영감의 첩으로 들어갔으나 나중엔 버려지고, 결국엔 자살하기까지 했다.
2. ‘그녀’ VS 세상
‘나’ 조차 그녀를 처음 본 장면에서는 온 몸이 얼어붙었다. “세기를 대표하는 추녀”인 그녀는 성장과정에서 무수한 상처를 입었다. 더욱 잔인한 것은 그 상처를 주는 주체에 그녀 자신 또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비교, 무시, 질투, 자랑, 과시를 이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는 점점 스스로의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굳게 잠근다.
이 책의 제목의 모티브가 된 그림이자 책의 서두에 삽입된 그림,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엔 많은 등장인물이 있지만 ‘나’는 오른쪽 구석에 있는 검은 원피스를 입은 키 작은 여자에 주목한다. 당시에는 왕실 사람들의 외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추한 외모의 난쟁이를 고용했다고 하는데,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바로 그 난쟁이였다. 즉, ‘추함’이라는 특성을 가진 이유로 선별된 사람이다. 그녀가 공장에서 경리일을 맡게 된 사유를 사장의 통화에서 엿듣는 장면에서, 그녀는 검은 원피스를 입은 난쟁이와 오버랩된다.
3. ‘나’ VS ‘그녀’
세상으로부터 큰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은 만나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한다.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녀를 사랑하며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고, 그녀는 자신을 외모라는 잣대로 판단하지 않는 남자를 처음 접하고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녀가 떠나간 이후에 “사랑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생활이다”라고 할 정도로, 둘은 무료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삶을 경험하였다.
마지막까지 해피엔딩으로 끝날 줄 알았지만, ‘나’는 스무살 겨울에 당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는 요한과 결혼하게 되며 ‘나’를 추억하며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