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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까스 Jul 13. 2022

향수 - 파트리크 쥐스킨트

2022.06.27-2022.06.28

어찌나 흡입력이 좋은지, 나는 이틀만에 거의 400쪽에 달하는 이 책을 완독해버렸다. 이 책은 천재에 관한 책이다. 역사상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작은 인간 하나가 세상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 몸소 보여주는. 아인슈타인, 아리스토텔레서, 뉴턴, 갈릴레이, 미켈란젤로, 파인만, 다빈치, 가우스, 오일러, 폰 노이만, 피카소. 음악, 체육, 미술, 수학, 과학, 철학, 인문학, 사회학, 문학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천재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하는 천재,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후각"의 천재다.


킁킁. 나는 나의 작은 자취방에 들어설 때마다 약간의 악취를 느낄 수 있다. 골방에서 올라오는, 약간의 하수도 냄새와 땀 냄새와 덜 마른 빨랫감 냄새와 먹고 남은 음식의 냄새와 쓰레기통에서 올라오는 악취가 뒤섞인. 청소를 한 지금은 그 냄새가 아주 미약하게 난다.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는 그가 맡는 모든 냄새의 실제 성분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천재들이 그렇듯, 그는 그 매커니즘을 배워서 깨달은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알고 있었다'.


나는 한 때 내가 천재이길 바랐다. 아니, 천재라고 착각했던 순간도 있었다. 되돌아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꽤나 주목받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나는 그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부끄러워하면서도 사라지지 않길 바라지 않았던가. 내심 그 빛이 다른 아이에게 옮겨갈 새라 두려워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시간이 들고 차츰 경험이 쌓이며, 나는 천재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천재라는 것이 그리 흔한 재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천재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많은 천재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시도하고 시도했으며, 포기하지 않고 될때까지 했다는 것이 바로 그 공통점이다. 아인슈타인은 그가 그저 일반인들보다 좀 더 오래 고민할 뿐이라고 했다. 물론 그것이 단순한 일은 아닐지라도, 과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라도 천재들의 두뇌는 일반인의 두뇌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루누이는 달랐다. 압도적인 재능. 보통 사람들은 단련할 생각조차 안 하는 후각이라는 장르에서, 독보적인 그만의 성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그 압도적인 재능을 이용해서 엄청난 결과물을 내놓는 꿈을. 물론 그 꿈을 추구하기 위해서 살인은 불가피한 일이었고, 어느 누구도 그에게 "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다니!" 하고 칭찬해주지 않았다. 그루누이는 전혀 망설이지 않았지만, 그것은 범죄였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천재였다면 어땠을까? 무얼 했을까? 나의 재능을 활용하여 부와 명예와 여자를 얻으려 했을까? 나의 욕심은 어디까지 미쳤을까? 문득, 내가 욕심이 별로 크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그렇지? 왜 나는 욕심이 적을까.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지금 삶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그루누이는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갈가리 찢겨 죽는다. 그 바로 직전 장면에서는 그가 만든 궁극의 향수를 아주 소량 사용했기 때문에 모두가 그에게 사랑을 느끼고, 서로 사랑을 느끼며 엑스터시의 향연을 펼치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으나 마지막 장면에서는 향수를 콸콸 쏟아부었기 때문에 그 효과가 극대화된 것이다. 이렇게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는 그의 삶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죽음을 맞게 된다.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가 바란 것은 오직 하나. 인간답게 사랑받는 것 이었다. 그는 생애를 통틀어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 또한 그를 조금이라도 품었던 사람들은 모조리 그가 떠나자마자 죽었다. 그루누이가 같이 사는 동안 그들의 향기를 빼앗아 버려, 그루누이가 떠나자마자 육신만 남고 향기가 없어진 그들에게 죽음의 신이 찾아왔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언제나 죽음을 몰고 다녔다. 사랑은 그에게 가장 먼 단어였다.


트레바리 독서모임에서 바로 직전에 다루었던 책도 사랑에 관한 '죽은 왕녀의 파반느' 였다. 왜 인간은 사랑을 갈구할까? 그저 나 홀로 만족하며, 자족하며 살아갈 순 없는 것일까? 내가 현재 삶의 지침으로 삼고 있는 하버드의 연구, 즉 행복을 결정하는 유일무이한 요소는 건강한 인간관계라는 것도 그 근본을 더 굳게 세워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건강한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우리 가족을 생각했을 때, 여자친구를 생각했을 때, 친한 친구들을 생각했을 때 나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너무도 당연하게 주어진 인간의 본성이랄까? 인간관계와 행복 사이의 관계에 대한 책을 찾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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