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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한결 Mar 12.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집에서 일을 한다

5년 차 가정보육 홈워킹맘의 진짜 속마음




초보 엄마의 큰 착각


"기관지가 늘 열려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항상 사람 많은 곳이나

감염 위험성이 큰 곳은 조심하세요.

우리는 그냥 감기로 지나갈 것도

민준인 폐렴이 될 수도 있어요."


생후 8개월,

간신히 아이를 살렸다.

긴긴 병원생활의 여정 끝에 퇴원을 했다.

담당 교수님은 하신 말씀을 또 하고, 또 하신다.

비록 기관절개관을 갖게 되었지만

당신도 처음엔 포기했던 아기가

기적처럼 살아 퇴원하니

더더욱 조심스러우셨을까.


그리고 이 말은

나의 뇌리에 새겨지듯이 박혀

육아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렸다.


그 흔한 문화센터 한 번 가 본 적이 없다.

어린이집...?

알아보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꺼려하시는 게 느껴졌다.

나 또한 보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놀이터...?

아이들이 많은 시간은 피하기 일쑤.

늘 이른 아침이나 아예 밤 시간에 데리고 나갔다.


8개월의 병원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

또다시 병원에 입원하는 상황만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만드느니,

24시간 아이랑 같이 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미쳤던 거지... 내가...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었고

더구나 아픈 아이를 키우게 될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해 본 적 없었다.


그저 어느 날 갑자기 눈 떠보니

들이닥친 일이었을 뿐.


그 닥친 일들을 버텨내기 위해

집에서 공부를 하고 일을 시작했다.


어느샌가

'아이들은 아프면서 크는건데...

보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

라는 생각을 늘 머릿속 한가운데에

둔 채로 말이다.




항상 아이를 데리고 집에서 일을 한다는 건


한 손으론 아이의 맘마를 만들고

다른 손으론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스마트폰을 분주하게 활용해야 하는 것.


3시간이고 4시간이고...

자신과 놀아주지 않아 서운해하는 아이를

허벅지 위에 앉힌 채 일을 해야 하는 것.


잠든 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

멀티 작업을 해야 하는 것.


오후 5시가 되어도 첫 끼를 제대로

못 먹는 경우가 허다한 것.


제때 화장실을 못 가서 생긴 변비 때문에

유산균을 늘 들이부어야 하는 것.


3박 4일을 세수도 못 해

눈에 들어간 개기름 때문에 눈물 흘리면서도

세수할 시간조차 아끼게 되는 것.


지금 당장 잠들어도 아무것도 안 먹은 채

7박 8일도 잘 수 있을 만큼

잠이 부족해지는 것.


"핸드폰 그만하고 애 좀 봐라" 하는

부모님의 말씀에 서운한 티를 낼 시간도 없는 것.


급성 맹장염에 입원하러 가면서도

가장 먼저 노트북부터 챙기게 되는 것.


집에서 하는 일은 늘 뒤로 미뤄도 된다고 여기는

가족의 생각부터 바꿔야 하는 것.

그만큼 결과물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안 힘드세요?"




..............................


당. 연. 히. 힘. 들. 다.

아니, 정말 딱 죽기 직전만큼 힘들다.


웃음이 나와서 웃는 게 아니다.

울 수 없으니 웃을 뿐.


힘들지 않아서 이렇게 죽자 사자 하는 게 아니다.

살아야 해서 할 뿐.


너무나 치열하게 힘든데,

그것보다 더 힘든 건...


집에서 일하는 것이

회사 다니는 것보다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


언제든 뒤로 미뤄도 된다고 생각하는 만큼

별 것 아닌 걸로 여겨지는 것.


아이를 혼자 놀 게 두고 싶어 두는 게 아닌데,

집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애를 늘 혼자 놀게 하냐는 말.


그 시선, 그 말들을 깨기 위해

늘 성과가 보이게 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들다.


다시 차라리 17kg짜리 아이를 하루 종일 안아 들고

일을 하라면 할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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