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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r 25. 2021

기억 저장고 월권행위가 높아간다

야금야금 내 기억을 먹는 연습을 하는 걸까

지난 온 삶에 대한 기억을  조금씩 지워가는 머릿속 지우개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건 축복이다.

기억의 과부하로 인해 오늘의 삶이 흔들릴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옛 연인과의 추억처럼 과거엔 중요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기억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져야 할 상처가 처음과 똑같이 남아있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현재가 소중하기 때문에 과거의 삶은  잊히기도 하고  

조금씩 기억 저장고 아랫칸에 저장되어간다,


그런데 기억 저장고가 월권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야금야금 현실의 삶에도 입맛을 다시며 접근하고 있다.


"있잖아 여기 벚꽃 진짜 예쁘다. 어제 나가봤는데 며칠 있으면 완전히 가득일 것 같다. 놀러 오너라"

"벚꽃이 어디 거기뿐이가. 이제 사방천지 벚꽃 일건대"

"계집애, 나는 니 이사 갔을 때 갔다 왔는데 왜 못 와. 버스만 타면 온다 아이가. 그래도 여기가 제일 예쁠 거다. 목, 금, 토 중에 온나"

놀러 오라면서 요일까지 정해놓고 오라고 한다.

친구가 저리 오라는 것도 처음이라 전화를 끊고 바로 버스표 예매를 했다.

구미까지 두 시간이나 걸린다.

오가며 네 시간, 거기서 친구랑 있는 시간 다섯 시간 정도 될 것 같다.

벚꽃보고 밥 먹고 커피 한잔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15년 전  이사를 오고 나서 친구네 가족이 우리 집으로 놀러 왔다.

나름 유명한 한우집에서 식사를 하고 집에 왔더니 친구의 디지털카메라가 사라지고 없었다.

차 문쪽에 넣어뒀는데  문을 여닫으면서 떨어졌나 보다.

밤에 주차를 했던 곳까지 가고 식당을 가고 해도 결국을 찾지를 못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아이들 사진이 들었을 카메라를 잃어버린 게 못내 미안했던 친구다.    

 

"이게 뭐지? 왜 없는 거야?"

아무리 찾아봐도 구미행 승차권이 안 보인다.

결제창 열어도 마이페이지를 열어도 구미행 승차권이 없다.

"폰도 돈 먹고 모른 체 하나?"

버스가 도착했는데 그만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매표창구에서 승차권을 다시 사야겠다면 몸을 돌리던 순간 

"아! 맞다. 시외버스"

그랬다. 구미행은 고속버스가 아니고 시외버스였다.

모바일 승차권은 잘 보관되고 있었다. 

기계의 문제가 아니라 내 기억의 문제였다.


짧은 순간 내 정신세계는 쓰나미를 겪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기억방이 조금씩 영역을 넓혀서 현재의 기억까지 야금야금 먹을 연습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책꽂이에 꽂힌 책처럼, 컴퓨터 파일처럼 잘 간추려 정리해 둔 것이  자꾸 흐트러지는 느낌이다. 

있어야 할 책이 사라지고 중요한 사진 파일이 지워져 있는 그런  당혹감을 느낀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깔깔 웃는다.

"야 그건 일상이야. 내 이야기 들어볼래" 라면서 무용담을 이야기한다.

그래 그래서 위로받는다. 

나만 그런 거 아니고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다고 말이다.

다들 그러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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