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텅 빈 캔버스다 - 반 고흐
[내가 사랑하는 문장들] 반 고흐의 '영혼의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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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7. 2022
테오에게
사람을 바보처럼 노려보는 텅 빈 캔버스를 마주할 때면, 그 위에 무엇이든 그려야 한다. 너는 텅 빈 캔버스가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모를 것이다. 비어 있는 캔버스의 응시, 그것은 화가에게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캔버스의 백치 같은 마법에 홀린 화가들은 결국 바보가 되어버리지. 많은 화가들은 텅 빈 캔버스 앞에 서면 두려움을 느낀다. 반면에 텅 빈 캔버스는 "넌 할 수 없어"라는 마법을 깨부수는 열정적이고 진지한 화가를 두려워한다.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 그것도 영원히!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1884년 10월
반 고흐의 '영혼의 편지' 중에서
사색(思索): 텅 빈 캔버스를 보며 화가가 두려움을 느낀다면, 이는 그림만이 삶에 마지막 수단이었을 때다.
경제적으로 테오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반 고흐에게 자신을 노려보는 텅 빈 캔버스는 두려움을 넘어 생존의 위협을 가하는 공포의 대상이었을지 모른다. 또한 그림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수용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모님과의 갈등, 어디서 일하든지 항상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안고 살아왔기에 그에게서 그림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해도 안전한 도구였을 것이다. 그의 편지에서 그러한 감정들이 절실하게 표현되어 있다.
수북이 쌓여 있는, 팔리지 않는 그림들을 뒤로 한채 또다시 붓을 들어 텅 빈 캔버스를 응시할 때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두려움과 낙심을 뛰어넘어 다시 붓을 들었던 이유는 텅 빈 여백에 그릴 자신만의 영감과 그림이 계속 샘솟기 때문이 아닐까?
도저히 그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불타오르는 열정과 영감.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더라도 나 자신의 삶에 대한 불타오르는 열정.
남은 삶의 여백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삶에 대한 긍휼과 사랑.
그 열정과 사랑이 삶의 빈 여백을 채우고, 오뚝이처럼 그 어떤 난관에도 다시 일어나 걸어가게 만든다.
아! 초상화, 모델의 영혼이 그에 내재한다는 생각으로 그린 초상화, 그게 바로 내가 이뤄야 할 것이야! - 1888년 동생 테오에게 보내 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