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 싱어송라이터 에릭남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나는 음악적으로 확고한 취향이 있다거나 철학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우리가 반드시 새롭게 재조명해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은 음악인이 한 명 있다. 바로 싱어송라이터 에릭남. 굳이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지않을까 싶을 정도로 이미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분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몇 달전 나는 한국에서 알려져 온 그에 대한 이미지나 평가가 굉장히 그가 추구하는 아티스트로서의 철학 혹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조명하지 않았고 충분히 설명하지 못 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살면서 딱히 연예인 덕질이라는 걸 안 해본 내가 최근 몇 달동안 그의 지난 몇 년치 해외인터뷰들을 찾아보고 그의 음악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도배하게 된 이유도 이러한 이유다.
그에 대한 새로운 발견의 실마리가 된 건 어느날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우연히 접한 Mindset 컨텐츠를 통해서였다. 짧은 트레일러 속 그는 아티스트로서의 지난 10년여 시간동안의 시간이 절대 쉽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려 컨텐츠 유료결제 구독을 시작했고 그가 지난 10년간 방송활동에서 한번도 말하지 않았던 솔직한 생각들, 그간의 경험들에 대해 듣게됐다.
그가 음악이나 방송계가 아닌 곳에서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걸 처음 본 건 2018년 개봉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라는 할리우드 최초 동양인 주연의 영화가 개봉했을 때였다. 주조연 모두 아시안으로 구성된 당시의 파격적 캐스팅에 미국 영화시장이 떠들썩 했고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 미디어에서도 이 영화에 대한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그 때 내가 발견한 뉴스 중 하나는 에릭남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애틀란타의 한 영화상영관에서 해당 영화관람을 위한 전좌석을 구매했고 원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했다는 소식이었다. 미국 영화시장 특성 상 개봉 후 첫 주 관람객 수에 따라 그 후에 해당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 수(영화관 수)가 결정되는 시스템 때문이었다. 당시 그 기사를 읽고 오, 멋있네, 하고 가볍게 넘긴 적이 있다.
그 뒤로 몇 년이 흐른 지금, 본인을 싱어송라이터이자 사업가라고 소개하는 그는 Dive Studio라는 컨텐츠 회사를 차려 해외팬들에게 K-POP을 소개하는 쇼를 진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Mindset 이라는 또다른 장르의 컨텐츠 자회사를 만들어 수많은 셀럽들이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겪었던 시련 그리고 그것들을 다루는데 있어 어떤 mindset을 다져왔는지 그간 방송에서 공개하지 않았던 정말 개인적이고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누군가는 말 못했던 가정사를, 누군가는 트라우마가 된 어린시절 겪은 괴롭힘을 그리고 숨겨왔던 마음의 병에 대해 이야기 하며 본인의 결핍에 대해 고백한다. 형식 또한 진행자와 게스트가 있고 인터뷰진행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혼자서 간직해왔던 일기장을 읽는 느낌으로 발화자 홀로 독백하듯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좀더 긴밀하고 사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에릭남은 어린시절 겪었던 인종차별이 어떻게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는지, 한국에서 이름이 알려진 자신이 왜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가수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본인이 ADHD임을 밝히며 왜 우리가 각자 내면의 아픔을 오픈업 해야하는지 그리고 왜 mental health care 컨텐츠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털어놓는다.
Mindset 컨텐츠를 통해 에릭남이라는 사람이 걸어온 길 전반에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에서 오는 혼란과 아픔이 기저에 깔려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나 역시 아시안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왔고 아파했던 사람으로서 에릭남이 전하는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고 이 때를 시작으로 그가 했던 여러가지 활동들과 인터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한국 활동을 접고 해외에서 인디가수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한 그는 동양인으로만 댄서를 구성해 북미, 유럽 해외투어를 다녀서 주목을 받았고, 특히 최근 코로나기간 동안 미국에서 벌어진 아시안혐오에 대해 타임지에 기고글을 올리기도 했다.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총격사건으로 인해 아시안 여성들이 사망한 해당 사건에 대해 미국 정부와 미디어는 범죄자를 성중독자로 진단했고 이것을 인종차별이 아닌 성적 충동과 관련된 범죄로 여론을 몰아가며 프레임을 바꾸려 했다. 이에 대해 미국 내 아시안 커뮤니티는 분노했고 에릭남은 본인 고향에서 벌어진 이 충격적인 사건과 그것의 본질을 덮으려 하는 여론과 경찰에 일침을 가하는 글을 쓰고 그 후에도 CNN에 인터뷰를 하는 등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본인의 목소리를 높였다.
타임지 기고문 일부 발췌
"A submission to, and eventual complicity with racism normalized a dynamic that should not exist. To grow up believing we needed to be O.K. with racism in order to have a seat at the table is not O.K.. To internalize racism at such a young age, in retrospect, warped my sense of normality. As a victim of a hit-and-run incident as a young teenager, I actually questioned if my mom was in the wrong when the driver got out of his car, slammed his fists on our window and screamed at my mother, “You dumbass motherf-cking ch-nk!” I’m Korean, by the way."
(인종차별에 굴복하고, 그에 동조하게 되며 존재치 않았어야 할 상황이 정상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발언권을 얻기 위해서는 인종차별을 받아들여야 한다 믿으며 성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중에 돌아보고 나니, 어린 나이에 인종차별을 받아들이며 제 정상 감각이 비틀린 것이었습니다. 십 대 소년으로 뺑소니 사고를 당했을 때, 상대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우리 차창을 주먹으로 치며 중국인 비하 욕설을 날렸을 때 저는 어머니가 잘못한 것이 아닌지 물어보았습니다. 아, 그리고 저는 한국인입니다.)
이것 외에도 지난 그의 인터뷰나 활동들을 찾아보면 지난 10여년의 활동을 통해 그가 본인이 지닌 영향력을 통해서 음악산업에서 나아가 글로벌사회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본인이 속한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여성, 아동, 성소수자를 아울러 모든 취약집단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고 힘을 보태는 그는 해외투어 당시 양손에 매니큐어칠을 하고 나타나 남녀사이 편견과 경계를 허물기 위한 MENicure movement에 동참하는가 하면 새끼손톱에 칠한 파란색을 통해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 밖에도 언제나 국제사회이슈를 끊임없이 조명하며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 위해 본인의 위치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사람. 얼마전 나는 그가 하는 컨텐츠사업에서 코로나 상황을 두고 World Bank의 전 총재 김용(Jim Kim)을 1대 1로 직접 1시간 가량 인터뷰 하는 영상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아마 K-POP 역사상 이런 류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아티스트는 에릭남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자료>
- 타임지 기고 글 원문(영어) https://time.com/5948226/eric-nam-anti-asian-racism-atlanta/
- 타임지 기고 글이 번역된 글이 있는 블로그(한국어) https://inglab.tistory.com/169
- 타임지 기고 글에 대한 기사(한국어) https://www.hankyung.com/entertainment/article/2021032172957
- CNN 인터뷰 풀영상(영어) https://youtu.be/ofpOXH1UQEE
- CNN 인터뷰 일부 발췌(한국어) https://www.youtube.com/watch?v=j4yQN27451Y
- World Bank 전 총재 김용(Jim Kim) 인터뷰(영어) https://www.youtube.com/watch?v=JiwvibnE2TQ&t=2955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