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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집 Feb 06. 2019

그레가 나에게 오다



그레는 회색털로 하얀 턱시도에 하얀 짝짝이 양말을 신은 초록색 눈을 갖은 고양이이다. 나는 9년째 그레와 함께 살고 있다. 내게 털 알레르기가 있는 줄 몰랐다. 처음에는 감기로 인한 코막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레와 함께 하는 순간 만성비염도 함께 시작되었다. 지금도 콧물이 뚝뚝 떨어진다. 팽하고 풀어 노트북 옆에는 코 풀은 휴지가 산처럼 쌓여있다. 그레와 함께 지내면서 여전히 힘듬을 호소하고 있지만 동그랗게 말아 자고 있는 그레가 사랑스럽다. 그레보다 내가 그레를 더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레와 함께 살기 전 나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다고 습관처럼 말하곤 했다. 고양이의 묘한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9년 전 초겨울쯤에 그림 선생님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아들 친구 고양이인데 러시안블루이고 새끼를 낳았대. 아들이 데리고 왔다가 다시 돌려줬어. 키울 사람을 찾고 있어. 너도 고양이 좋아한다고 했지.고양이 키울래?"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꺄 악, 키우고 싶어요. 고양이.” 그 한마디에 나는 4개월 된 초록눈을 갖은 꼬마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했을 땐 설렘과 후회의 감정이 뒤죽박죽 엉켜있었다. 충동적인 선택에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현실적인 엄마는 무슨 고양이냐며 네 자유도 없어지고 아프기라도 하면 돈이 얼마나 드는데 감당할 수 있겠냐며 겁을 주며 당장 다시 갖다 주라고 했다. 잠깐 꼬마 고양이에 홀려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젠 자유롭게 여행 갈 수 없을 거야, 평생을 책임져야 하는데 나 혼자 감당할 수 없을 거야. 꼬마 고양이 집으로는 돌려보낼수 없는 상황이니 좋은 집사를 만나게 해주자.’ 아무것도 모르는 채 초록 눈의 꼬마 고양이가 내 품에 안겨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하얀 작은 발로 내 손을 툭툭 치고 있었다.
 
하루, 이틀. 내결심은 달라지지 않았다.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에게 꼬마 고양이의 입양을 부탁했다. 시간을 두고 좋은 곳을 찾아 보내자고 말했다. 나도 원하는 일이다. 나는 입양 보내기 전까지는 꼬마 고양이를 데리고 있어야 했다. 정을 주지 않기 위해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목욕을 안 한 꼬마 고양이가 방을 활보하는 것이 싫어 커다란 박스에 넣어 두었다.꼬마 고양이는 자기 몸보다 두배는 큰 박스를 놀이기구처럼  펄쩍 뛰어넘어 방구석 구석을 다녔다.
 
그때 나는 큰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큰오빠는 결혼 준비 중이었다. 오빠에게는 꼬마 고양이를 잠시 데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스에 넣어두면 자꾸 나와 돌아다닌다고 하자 본인이 데리고 있겠다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바늘로 찔러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은 냉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품에 안고 자기까지 했다. 나는 정을 주지 않기 위해 꼬마 고양이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다."그레? 그레?" 큰오빠는 꼬마 고양이를 그레라고 불렀다. "뭐라고? 그레? 이름 짓지 마 정들어." 오빠는 내가 뭐라 하든 말든 "그레. 일루 와. 들어가자." 방문을 열면 꼬마 고양이는 오빠를 따라 쪼르륵 들어갔다. 이렇게 꼬마 고양이의 이름은 그레가 되었다. 회색 그레이에서 이를 뺀 그레.
 
일주일이 지났다. 입양 알아봐 주기로 한 친구에게 나는 전화를 했다. 계속 데리고 있다가는 정들 것 같은데 네가 데리고 있다 입양 보내 줄 수 없냐고 물어보았다. 알았다고 했다. 그레가 그 친구 집으로 가고 난 뒤  일주일 지나 연락이 왔다. “언니 나 못 데리고 있겠어. 좋은 집사 만날 때까지 그냥 언니가 데리고 있어.” 본인 두 마리의 고양이랑 그레가 어울리지 못해 데리고 있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그레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레는 오빠가 부르면 바로 갔지만 나에게는 한동안 오지 않았다. 나는 그레에게 미안했다. 시간이 꽤 흘렀으나 그 친구는 연락이 없었다. 나보다 더 좋은 집사에게 보내야겠다는 마음을 갖은 채 나는 9년째 그레와 함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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