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수 Jan 29. 2024

<나의 트랜지션 일기> 49장: 여성을 살게하라

모두가 살기위해


[49장: 여성을 살게하라]



트랜지션을 하기 전에도 여성의 위치와 여성이 겪는 문제에 대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단순히 당위적인 차원을 넘어서, 현실적으로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성별위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그 성별위계에 따라 남성집단 안에서는 약자의 위치에 있는 남성이 여성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것, 이른바 ‘은유로서의 여성’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극단적으로는 군대나 감옥에서 힘을 가진 남자가 힘이 없는 남자에게 성폭력을 저지르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가해자들이 동성애자라서가 아니라, 힘이 약한 남자를 ‘여자 취급’ 함으로서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 지배욕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남성집단 안에서 힘이 없는 약자의 위치에 있었고 때때로 ‘기집애’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여성이 폭력을 당하는 사회라면 나 역시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라는 감각이 있었나보다.


뉴스에서 여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범죄피해들(교제폭력,성폭력,스토킹,불법촬영등)을 볼때마다 너무나도 화가났다. 수많은 여성들이 정말 말도 안되는 이유로 – 만나주지 않아서, 고백을 거절해서, 성관계를 거부해서, 밥을 차려주지 않아서, 다른 남자를 만나는거 같아서, 자기를 무시해서 등 - 남자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고통을 받으며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와닿지 않는다면 검색창에 ‘왜 안만나줘’라고 검색을 해보시라). 통계적으로 매년 수 백명의 여성들이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들로부터 살해당하거나 살해당할 뻔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극도로 달한 이 사회에서는 여성이 당하는 일들도 ‘여성이라서’ 당한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남성이 ‘남성이라서’ 갖는 권력으로 저지르는 일들도 지적하지 못한다. 젠더에 기반한 폭력(gender based violence)임에도 젠더문제가 아닌 그저 개인간의 일로 치부된다.



출처: 한국여성의전화 홈페이지


예컨대 성폭력의 경우, 사전적 의미부터가 ‘성을 매개로 가해지는 신체적·언어적·심리적 폭력이다’. ‘성을 매개로’ 하는데 어떻게 성별과 상관이 없을수가 있는가? 남성 가해자가 여성 피해자에게 저지른 그 성폭력을, 같은 남성에게도 똑같이 저지를까? 남자가 같은 남자에게 술이나 약을 먹여서 성폭행을 저질렀다던가, 자신을 안 만나준다고 찾아가서 때린다던가, 남자탈의실이나 남자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몸을 촬영했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물론 단 한 건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고, 내가 앞에서 말한것처럼 남성집단 안에서 은유적 여성의 위치에 놓인 남성도 폭력의 피해를 겪기는 하지만, 보통은 여성 피해자가 압도적으로 많고 피해자의 성별이 무엇이든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이다. 모든 남자들이 다 나쁘다거나 다 없어져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무엇이 남자들에게 그러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가하는 구조를 봐야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총기가 허용된 밴드팀이라는 국가에 기타 도시, 베이스 도시, 드럼 도시가 있다고 해보자. 근데 밴드팀에서 총기사건이 해마다 100건씩 발생하는데, 통계를 내보니 95건은 다 드럼에서 발생했다는 결과가 나왔다면? 드럼다른 도시들과 무엇이 다른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분석해봐야 하지 않을까? 드럼 사람들이 특별히 더 악해서도 아니고, ‘잠재적 총기살인마’여서도 아닐 것이다. 밴드팀 나라의 총기상점이 죄다 드럼 도시에 밀집해 있다면 당연히 총기로 인한 사건사고도 그 곳에서 발생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젠더에 기반한 폭력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성차별과 성별위계의 존재를 부정하는 남성들에게, 남성과 여성의 삶을 모두 살아본 트랜스젠더로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으로 사회화되는 사람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갖는 권력이 명백하게 존재하며, 여성으로 사회화되는 사람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갖게되는 억압이 명백하게 존재한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 아니다. 더 많은 여성을 살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을 통해 남성들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과거의 내가 느꼈던 것처럼, 여성이 위험한 세상은 많은 남성들에게도 결코 안전하지 못할 것이기에.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트랜지션 일기> 48장: 싸움과 폭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