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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ONG Sep 05. 2020

강아지도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반려견이 드라이브를 즐기는 방법


"똘이! 빠방 타고 드라이브 갈까?"

바닥에 널브러져 있거나 소파에 아무렇게나 대자로 누워있다가도 똘이를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다. 주로 시니컬하거나 뚱한 표정을 일삼는 똘이의 표정을 세상 해맑게 만들어주는 말이기도 한데, 유사어로는 '똘이 빠방?', '똘이 간식 먹고 싶어요?',  '똘이 산책 갈까?' 등이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만나는 파랗고 높은 하늘이 매력적인 날이었다. 덤으로 태풍이 지나가고 온전히 가을바람이 선선히 불어 드라이브하기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현관문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시국이 시국인지라 사람이 조금이라도 모이는 곳은 가지 않기로 하고, 우리 가족만 아는 스폿을 찾아 슬쩍 콧구멍에 바람만 넣고 오기로 했다. 웬만해선 차에서도 내리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똘이와의 동행에서는 절대 하차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개린이의 노즈 워크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 시각과 후각의 자유로움 그리고 방광과 대장의 건강도 책임져야 하니 말이다.


사실 똘이가 처음부터 드라이브를 즐긴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차 타는 연습이나 차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연습을 하면 좋겠지만 할 수 없었다. 기분 좋으라고 하는 드라이브에 있는 콧물 없는 침샘을 대 방출하는 똘이의 모습을 보고선 부러 스트레스만 쌓이게 하는 것 같아 강요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똘이가 원할 때 하는 즐거운 드라이브를 하고 싶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나름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처음은 '빠방'이라는 단어를 알려주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강아지는 된소리 발음, 하이톤의 음성 인식 등이 인식하기 쉽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주어 들었다. 자동차라는 말에 반응을 전혀 하지 않아 '아빠 차', '엄마 차', '빠방' 이 세 단어로 기억할 수 있도록 반복 연습을 했고, 산책을 하고 돌아오면서 꼭 차 주변을 지나갔다. 그러다 보니 똘이는 이제 수많은 차 중에서 우리 집 차를 귀신같이 찾아낼 수 있게 되었고, 엔진 소리만 들어도 '우리 집 빠방이야!'하고 구분할 수 있는 신통방통한 능력을 얻었다.


다음은 차 타는 시간을 점진적으로 늘렸다. 운행을 하지 않고 멈춰있던 차에 잠깐 타고 내리는 연습을 시작으로 십분, 이십 분, 삼십 분을 넘어 몇 시간에 걸친 드라이브를 함께 할 때는 '이보다 기쁠 수 있을까'하는 감격스러움이 넘쳐흘렀다. 긴장감이 극에 달하면 아이들은 몸이 굳고 코에서는 콧물이, 입에서는 침이 쉴 새 없이 흐른다. 그 모습은 참으로 안쓰럽고 '내가 무슨 짓인가'하는 죄스러움이 머릿속에 가득 찬다. 하지만 가족들의 노력을 아는지 똘이는 점점 적응해 갔고 이후에는 창밖 풍경을 따라 시선을 돌리는 여유까지 생겼다. 차 문을 열어주어도 절대 스스로 탑승하지 못했던 애송이 시절을 지나 이제는 빨리 문 열라고 눈으로 레이저를 쏘는 지경에 도달한 똘이는 이제 진정 드라이브를 즐길 줄 아는 도시견 아니 도시 근처 시골에 사는 반도시 멍멍이가 되었다.


똘이가 좋아하는 드라이브 자리는 운전석 바로 뒤나 차 맨 뒤쪽 트렁크 문 앞이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창밖을 보거나 뒤에 달려오는 차를 지긋이 바라보고는 한다. 하루는 엄마를 회사에 데려다주고 똘이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날은 유독 신호마다 걸리는 이상하고도 신기한 날로 기억한다. 어김없이 빨간불에 걸려 신호 대기를 하던 중 우연히 룸미러에 비친 똘이의 뒷모습을 발견하고 한마디 건넸다.

"똘이! 그렇게 뒷 차 운전하는 사람 쳐다보면 부담스러워서 어디 운전하겠어? 앞을 봐! 앞을!"


내 잔소리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뚝심 있게 뒷 차 구경에 열중하던 똘이의 뒤통수가 나름 진지해서 어이가 없었지만 마침 초록불로 바뀐 신호등으로 인해 시선을 거두고 얼른 차를 출발시켰다. 일은 다음 신호 대기 중에 일어났다. 룸미러에 똘이에게 너무도 반갑게 손을 흔드는 뒷 차 운전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빵 터졌다. 그렇게 몇 번을 신호 대기 중에 만난 똘이와 운전자는 눈빛을 교환하고 손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운전하던 차가 좌회전 차선, 그 운전자의 차가 직진 차선에 서서 신호 대기 중인 것을 확인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웃기게도 동시에 똘이가 뒤를 돌아보며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보고 있나, 주인 놈아!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고~ 훗' 똘이는 마치 눈으로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표정도 묘하게 비웃음이 섞여있는 듯했다. 쳇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나는 사과를 하고 서로 화해하는 것으로 상황을 종료했다.


똘이는 최애 좌석에 앉아 자신의 팬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이제 드라이브를 힘껏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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