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SONG Nov 23. 2020

강아지도 눈치가 있다.

반려견이 곤란한 상황을 대처하는 법


똘이는 우리 집을 스쳐간 여러 멈머들 중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집 방바닥에 대자로 누운 최초의 강아지로 기억되는 영광을 안았다. 똘이가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남겼는지는 '최초'라는 단어가 말해준다. 그렇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동물을 좋아하시만 그 표현은 무뚝뚝하니 겉으로 드러나는 법이 없고, 털 있는 짐승은 절대 밖에서 살아야 한다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계시다. 다행히도 연세가 들면서 우리 집을 거쳐간 아이들이 함께 살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본 탓에 당신들이 지켜온 명확한 기준은 '우리가 생활하는 집'으로 축소될 수 있었다.


모든 반려견을 기르는 가정은 공감하겠지만, 특히 진돗개나 진도 믹스를 기르는 가정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특징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털과의 전쟁을 빼놓을 수가 없다. 진돗개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으로 이어지는 것이 털 빠짐. '진돗개 털 빠짐 심해요.', '어마무시 털 빠짐', '진돗개 털 빠짐 대처법', '진돗개 털 빠짐 파헤치기' 등 제목도 다양한 털 관련 에피소드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만만치 않은 털과의 사투를 보며 태연하게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 가족도 역시 이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똘이는 일 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이 오기 전 털갈이를 한다. 평소 털이 사방에 분포하고 있지만 털갈이 시즌에는 유난히 눈처럼 휘날리거나 뭉텅이로 빠지는 탓에 애니메이션에서나 볼법한 털 뭉치가 바닥을 굴러다니곤 한다. 그럼 전적으로 주 보호자로 시청 전산에 등록되어 있는 나는 똘이와 함께 쫓겨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아침, 저녁 할 것 없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내 손에는 돌돌이가 떨어질 날이 없고, 청소기는 내 절친이 된지 오래다. 조금이라도 털 빠짐을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똘이는 일주일에 한 번 목욕을 하고 바디 미스트를 뿌린다. 하루에 두세 번씩 두 가지 종류의 빗으로 털을 빗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최근 노령견의 반열에 오르고 털이 유독 더 빠지는 것 같아 피부에 좋은 간식과 영양제를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도 안 먹는 영양제를 똘이는 챙겨 먹으며 나도 안 하는 피부 관리를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새삼스럽지만 나는 다짐했다.

'다음 생엔 우리 집 똘이로 태어날 거야.'

아무튼 꾸준한 관리로 반질반질한 털과 약간의 귀티를 얻은 똘이는 몇 시간의 드라이브를 마치고 시골집에 입성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대쪽 같은 기준에 맞춰 가슴은 아프지만 똘이는 도착하자마자 집 안이 아닌 마당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사건은 일어났다. 식구들이 저녁을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드는 찰나, 생전 처음 듣는 소리가 들려왔다.

'흐어엉~ 어엉~ 흐엉~ 히이잉~ 힝~'

육 년을 함께 산 시간 동안 짖는 것도 극히 드문 똘이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시골집의 마당에서는 절대 혼자 잘 수 없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애절한 목소리로 구슬프게 울어댔다. 어찌나 포효 하던지 소리를 듣자마자 나와 엄마는 숟가락을 놓았고, 아빠는 황당해했으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똘이는 눈치가 빠르다. 장담컨데 모든 반려견은 눈치가 빠르다. 나를 대하는 이 사람이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 나를 이뻐하는지, 해코지를 하지 않는 사람인지 귀신같이 알아채는 촉을 탑재하고 있다. 역시나 눈치 빠른 똘이는 집에 방문한 적이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를 기억해냈다. 후에 초록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자기 나름 최선의 애교를 부리며 '나는 말 잘 듣고 귀여운 멍멍이랍니다.'라는 메시지를 뿜어냈다. 놀랍게도 똘이의 매력 발산이 먹혔는지 빵 터진 할머니, 할아버지는 똘이의 집 안 입성을 허락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방바닥에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똘이의 구슬픈 울음소리는 자취를 감췄다. 난 그때 깨달았다. 우리 집 개님의 이중성과 영약함을.

‘이것이 바로 우리 집 개가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는 어마어마한 필승 전략이구나!’

포지셔닝에 기막히게 성공한 똘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손, 이쁜 짓, 앉아, 엎드려 등 갖은 개인기를 대방출하며 한동안 간식을 얻어먹었다. 그런 다음 '이쁘네'라는 말을 질릴 때까지 들었다.


온 가족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다. 똘이는 폭신한 이불이 깔린 방에서 내 다리를 베개 삼아 베고 누워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직도 얼떨떨하고 믿기 힘들지만 금견의 구역에서 털 있는 짐승이 사람 덮는 이불을 공유하고, 대자로 누워 잠을 자는 놀라운 일이 확실히 일어난 것이다. 똘이는 똑똑하게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었다. 자신의 능력인 빠른 눈치를 십분 발휘해 이쁨도 받고 따뜻한 잠자리도 얻었다. 똘이는 영리하게 자신이 처한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이쯤에서 나는 다시 한번 다짐한다.

'다음 생엔 꼭 우리 집 똘이로 태어날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강아지도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