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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ONG Dec 29. 2020

강아지는 참 솔직하다.

반려견에게 배우는 감정에 솔직해지는 법


똘이는 솔직하다. 자신에게도, 견생에서 마주치는 모든 상대에게도 숨김이 없다. 어찌 보면 무례하기도 한 똘이의 직선적이고 올곧은 감정 표현이 나는 마냥 부럽다. 생각해보니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상대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지만 적당한 거리감을 두는 경향이 있다. 다른 말로는 상황에 따른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다는 의미다. 유독 날 것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 겁이 많다.

'이렇게 하면 나를 우습게 보지 않을까?'

'저렇게 말할 때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감정을 드러낸다는 건 '벌거벗은 느낌'이라고 생각할만큼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고 있는 나로서는 똘이가 나날이 부러워질 수밖에 없다.


어느 동물보다 눈치가 빠르고 주인 또는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 반려견임에도 불구하고 똘이는 다른 반려견과는 다른 '개썅마이웨이'를 간다. 먼저 똘이는 졸릴 때 절대 졸지 않는다. '왜 졸지? 졸리면 자면 되지!' 명쾌한 정답을 품고 철퍼덕 엎어진 그는 잠을 청한다. 구겨진 얼굴은 씹다만 껌같은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 콧방귀가 절로 나온다. 꿀잠을 주무시는 똘이님께서는 코를 골거나, 쩝쩝 입맛을 다시기도 하고 달리기 하듯 네 발을 옴싹 거린 적도 있다.


식욕도 빠질 수 없다. 배고플 땐 '어서 밥을 대령하라 주인!'이라는 눈빛으로 빤히 나를 본다. 특히 고구마를 먹고 있으면 침으로 바닥을 흥건히 적시며 원하는 바를 이룰 때까지 지켜본다. 참으로 원초적이다. 퇴근하는 엄마, 아빠를 맞이할 때, 가끔 본가에 오는 오빠를 발견할 때면 좌우로 흔들리는 꼬리는 궤도를 벗어나 크게 원을 그린다.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개는 토끼에 빙의하는 사태까지 발생하며 타닥타닥 반가움의 리듬에 맞춰 데크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똘이는 질투가 많다. 집 근처 빌라에 사시는 똘이 최애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눌 때면 자기 여기있다며 평소보다 더격하게 꼬리를 흔든다. 그러다 기어코 할아버지에게 머리 쓰다듬기와 '아이 예쁘다'라는 말을 얻어낸 똘이의 환한 얼굴은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다. 할아버지가 똘이를 예뻐해 주시는 만큼 나도 할아버지의 시추 손녀 써니와 베프로 지내고 있다. 똘이의 질투는 써니의 등장과 함께 폭발한다. 활화산 같은 똘이의 질투는 삐죽삐죽 올라오는 등 털과 튼튼한 허벅지 근육으로 탄생한 이족보행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나 화났어!'하고 왕왕거림까지 더해지면 비로소 똘이의 질투 삼종세트가 완성된다. 동네 베프와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들어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다. 똘이의 질투를 온몸으로 받아주는 일이다. 내게서 풍기는 낯선 강아지의 냄새로 똘이는 꽤나 전투적으로 변한다. 냄새를 맡는 것이 아니라 이건 마치 새가 부리로 적을 공격하듯 코로 온몸을 찌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개는 너무 솔직해서 질투도 대놓고 하는구나'하고 생각했다. 가끔 장난기가 발동해 똘이가 보는 앞에서 써니와의 친분을 더 과시한 적이 있다.


하루는 어쩐 일인지 동네 안 쪽에 있는 우리 집까지 들어온 떠돌이 개 한 마리를 발견했다. 평소처럼 엄마의 출근길을 배웅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나와 똘이는 황급히 노선을 변경했다. 똘이가 우리에게로 다가오는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친 탓이었다. 그 아이는 점점 우리에게로 다가왔고 서로를 나누는 얇은 청록색 철망을 사이에 두고 똘이와 그 녀석은 얼굴을 맞대었다. 평소 일면식도 없던 아이인지라 나는 극도로 긴장했다. 겁도 많고 낯을 가리는 똘이의 성격 상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똘이는 이사  녀석과 처음 마주치던  화를  적이 있다.  산책하다 자주 마주치는 후추색 중형견에게도 싫은 티를 팍팍 냈던 전적도 있다. , 똘이는 이유 없이 화내지 않는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듯 똘이의 역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사  첫날 우리  앞에  일을  녀석과 보고도 치우지 않은 견주가 마뜩지 않았던 깔끔쟁이 똘이는  소리로 매너 없는 이웃에게 경고를 날렸다. 후추색  아이는 조용히 산책 가는 똘이에게 평소 시도 때도 없이 신경질을 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오프리시로 달려와 먼저 공격  적도 있다.  주인은 웃기게도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은 똘이를 보고 욕을 하며 구시렁대는 일이 허다했다. 심지어 자기네가 우리  앞을 지나는 중에 데크에 서있는 똘이를 보면서도 말이다. 나도 짜증이 나는데 똘이는 얼마나 짜증이 날지 알만했다. 그럴 때마다 똘이는 불편한 심기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도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나는  때마다 화는 나지만 싸우기 싫어 똘이를 달래며 피하기만 했다. 이렇듯 똘이는 명석하게도 좋은 사람, 예의 바른 개를 구별하는 능력이 있다.


다행히 크게 걱정했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신기하게 똘이는 전신이 뻣뻣해질 정도로 긴장하긴 했지만 찰나의 탐색으로 긴장을 풀었다. 서로 으르렁대지도 않았고, 코를 맞대고 예의 바르게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똘이의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이렇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레 유추해본다. 길 생활이 힘들었는지 누추한 모습을 한 그 아이의 상황이 안쓰러워 잠깐이지만 격려의 마음을 나누었던 게 아닐까. 이렇게 예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약간의 사료와 간식, 물을 나눠주는 순간에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던 똘이의 모습 때문이었다. 똘이의 솔직함에는 이유와 근거가 있다.


똘이는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다. 나는 그런 똘이를 보며 상황에 따른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한다. 덕분에 똘이에게만이라도 있는 그대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거나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점점 표현의 대상을 넓힐 생각이다. 사람은 동물과 달라서 감정을 숨기는 포커페이스가 필요하지만 부작용은 생각보다 크다. 점점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것, 그로 인해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똘이에게 솔직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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