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SONG May 03. 2021

딸은 애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충분히 슬퍼 보였다.


Dear. 사과집 선생님께,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잘 지내고 계시죠? 사과집 선생님은 충분히 그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감사히도 보내주신 책은 잘 읽었어요. 평소보다 오래, 평소보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눌러 읽느라 시간이 좀 더 걸린 느낌이네요. 성의 있게 보내주신 책을 읽어 내려가는 것이 사이버 친구인 제가 할 수 있는 위로이자, 애도라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책을 읽고 난 감상을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하다 어울리진 않지만 편지를 쓴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써내려 가면 무겁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저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조금 오글거린다 느끼신다면 사과드려요. 이해해주시길 바라요. (웃음)


저는 죽음이라는 단어에 막연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온 뜻하지 않은 이별은 힘든 법이니까요. 무슨 의도로 유독 저에게 이런 경험을 많이 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살아온 시간에 비해 가까운 이들을 많이 떠나보냈습니다. 이별의 시작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외할아버지로부터였습니다. 90년 대 후반이었던 터라 시골에서 상이 나면 모든 손님이 집으로 모였고, 삼베로 된 수의를 입고 꽃상여를 들어 고인을 모셨지요. 죽음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도 못했던 저는 책에서만 보던 그 상황이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이후 절친한 친구도, 따뜻하게 웃어주셨던 친구의 어머님도, 친동생보다 더 가까웠던 후배도, 사랑했던 반려견이 떠났을 때는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나니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어렵더라고요.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그 두려움의 크기는 남들과 조금 더 큰 느낌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는 순간을 기점으로 이틀 전, 소중히 여기던 인연을 또 떠나보냈습니다. 이십 대의 마지막이었던 친구의 안타깝고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어요. 나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유난히도 꽃같이 뽀얀 얼굴이 영정사진으로 걸려있는 것을 본 순간 눈물이 고였습니다. 허망하게 떠난 것 치고는 너무 예쁜 얼굴이 야속해서 동시에 웃음이 났어요.


"이 와중에 사진은 참 예쁜 걸 걸어놨네, 뭐가 그리 급해가지고 벌써 갔어?"

웃기게도 넉살이 튀어나왔어요. 죽음도 경험이라고 여러 번의 이별은 슬픔을 희화화할 수 있는 굳은 살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저 나름의 죽음을 슬픔으로만 치장하지 않으려 터득한 방법이지요. 각자의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애도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제 방법은 적절하게 씌었어요. 생전 처음 큰일을 겪어 가늠도 할 수 없는 실의에 빠진 어린 친구들보다 약간의 어른스러움을 보여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는 넉살이 슬프기만한 이 상황을 이겨내는 무기가 되었지만 사과집 선생님의 이성적인 모습도 애도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경험이지만 누구나 받아들이고 체감하는 정도는 다를테니까요. 그리고 어설픈 위로보단 아무 말 없이 있어주는 것, 한 번의 피식거림을 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참 용기 있는 사람의 글이다.'였어요. 이렇게 속내까지 드러내며 생각하는 바를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압니다. 그 용기로 미래에 대한 준비를 차근차근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져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한 삶의 불씨는 꺼졌지만 매정하게도 시간은 잘 갑니다. 무겁던 장례식장을 벗어나면 오전에 흘렸던 눈물이 민망하게 웃고, 꼬르륵 배에서 우렁찬 소리도 나는데요. 결국 산 사람은 잘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112페이지 '장례를 치른다는 것은 내 곁의 사람을 알아차리고 그들에게 빚을 지는 시간이었다.'라는 말처럼 그 빚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현실을 받아들이고 떠난 이가 생각이 날 때면 그리워 하다가 술이 고프면 술도 한 잔 하고, 친구도 만나면서 감정에 솔직하면서 잘 살아보려고 합니다. 여기에 언제일지 모르는 저의 마지막도 천천히 생각해보려고요. 사과집 선생님도 지금처럼만 잘 살아주세요. 이 책을 읽은 모든 분들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