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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스 May 11. 2023

보고 싶은 사람이 가는 거지

동물들이 있어야 할 곳

발가락이 꽁꽁 얼었었다. 눈 덮인 언덕길을 오르고 내리고, 수풀도 지나고, 늪지를 건너기 위해 말 그대로 외나무다리도 건너야 했다.


건넜던 외나무다리


이 어마무시한 아름다운 곳은 스웨덴에 있는 Måkläppens naturreservat 이라는 곳인데, 겨울에 딱 한번(11월 1일 ~ 1월 31일) 사람들을 자연에 초대하기 위해 오픈한다. Måkläppens은 모래 언덕들 자체로도 아름다운 산책로이지만, 그곳의 하이라이트는 자연 서식지에서 물개를 만나볼 수 있다는 행운이다.


내 비건 남자친구 알레는 동물원을 가지 않는다. 나 또한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답고 다양한 동물들이 신기한 마음보단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어서, 딱히 동물원이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아니어 왔다.


이런 우리에게 때와 장소만 잘 맞으면 눈앞에서 물개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 신나는 일이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집을 나선 건 새벽 이른 아침이었지만, Måkläppens에 도착해 서식지를 향해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해 어둑해졌다. 스웨덴 겨울은 해가 비교적 이른 시간에 급속도로 지기 때문에 시간개념을 잘 가지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니면 조난당한다.



끝없이 걷던 그 길 한편에서, 물개와 최소 50미터 거리를 두고 관찰하라는 푯말을 발견했다. 드디어 그들의 서식지 부근에 다 달았다는 걸 알 수 있게 하는 문구였다. '물개를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설렘과 함께 불확실감도 있었기에, 가는 길에 마주치는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자꾸 물어봐야만 내 마음이 좀 편해졌다. 저 멀리서 행복한 기운을 내뿜으며 돌아오는 한분이 있어 물어봤다.


"물개 봤어요?"


안내 푯말


운이 좋아서 일광욕을 마치고 바다로 다시 떠나가는 물개들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희망을 가지자마자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뛰다 뛰다 이런 마음이 들었다.


'더럽게 힘드네.'


더럽게 힘든 거다. 각자 사는 곳이 다르고, 내가 그들이 사는 곳으로 가고 있으니까. 내가 물개가 보고 싶지 물개가 나를 보고 싶어 하는 게 아니니까.


그래, 서식지를 볼 수 있는 자연 안으로 초대받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면서 가야지. 끝없이 뻗어가는 길을 계속해서 달리다 걷다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바다에 둥둥 떠있다 쏙 사라지는 검은콩들을 볼 수 있었다. 물개였다!


일광욕 후 떠나는 물개들


이 검은콩 두 개가 뭐라고 날 엄청 행복하게 만들었다. 때가 되어 떠나는 자유영혼 물개들이 행복해 보였고, 떠나는 물개를 볼 수 있음에 나도 행복했나 보다. (다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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