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축머치토커 Feb 22. 2019

당신이 좋아하는 선수는 몇 번인가요?

등번호 하나도 그냥 정해지지 않는다.

저도, 좋아하는 숫자가 있는데 말이죠.

 주말이면 몇 시간씩 공을 차던 중학교 시절부터, 저의 등번호는 줄곧 7번이었습니다. 7번...공 좀 차봤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기 있는 번호죠. 저는 데이비드 베컴의 팬입니다. 베컴의 플레이 스타일이 저에게는 로망이었죠. *택배 크로스와 대지를 가르는 패스를 따라한다고 동아리 선배들에게 한창 욕 먹었던 기억도 있고, 지금까지도 최고의 프리킥골로 이야기되는 그리스와의 2002년 월드컵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 2차전 결승골은 잠깐 눈만 감아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동아리 회장이라는 말도 안되는 명분을 내세워 7번을 따낸 적도 있었죠. 등번호 7번으로 유명한 선수는 많습니다. (이제는 구단주인)데이비드 베컴을 비롯해 라울 곤살레스, 루이스 피구그리고 호날두까지. 각자 이유는 다르지만 축구 선수들은, 그리고 저같은 '우리 동네 축구쟁이'들은 다양한 등번호로 선택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축구에서 등번호의 의미와 그 유래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택배 크로스 : 우리집 문 앞에 딱 맞춰서 도착하는 택배처럼 선수의 발 앞에 정확하게 도착하는 긴 패스



등번호 없이 뛰던 시절

 1920년대 이전까지는 선수들의 유니폼에 등번호가 없었습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등번호가 '필요'없었던 거지요. 중계 매체가 전혀 갖춰지지 않았던 때라 경기를 보기 위해서는 직접 관람할 수 밖에 없었고, 본인이 보고 싶은 팀 이름과 선수의 얼굴을 기억하면 되는 것이었죠.

 최초로 등번호가 필요하게 된 이유는 신문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신문 기자들은 기사를 쓰기 위해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을 구분하는게 필요했고, 이로 인해 축구 선수의 유니폼이 '숫자'가 새겨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등번호는 지금의 등번호와 많이 달랐습니다.


등번호로 전술을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선수들이 등번호를 처음 사용하게 된 그 시절, 전 세계 축구의 또 한 가지 큰 변화는 바로 '포메이션(formation)'의 등장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포메이션은 '2-3-5' 포메이션이었는데요. 중앙 수비수 두 명(2, 3번)과 양측면(4, 6번) 수비수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 한 명(5번)까지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나머지 다섯 명의 필드 플레이어는 공격 임무를 수행하는 단순한 형태의 전술이었습니다. 공격과 수비로만 구분한 단순한 이 전술부터 등번호에 이유가 생기기 시작했는데요. 포메이션에 따라 각 자리에서 뛸 선수를 정해야 했고, 그 자리에 해당하는 선수에게 각각의 번호를 부여했던 겁니다. 1번 선수는 골키퍼, 2, 3번 선수는 중앙 수비수, 7~11번은 공격수, 이런식으로 말이죠. 문득 든 생각이지만, 그 당시 선수들은 좋아하는 번호를 달고 뛰고 싶지 않았던 걸까요?

포메이션의 시초 2-3-5 시스템
양쪽 측면 미드필더(7, 11번)은 그대로 유지된 모양새

 단순한 이유로 시작한 등번호 중 일부가 아직까지도 그 자리를 의미하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팀을 이끄는 '에이스'의 역할을 하는 선수를 상징이 되기도 한겁니다.

 이런 번호 부여 방식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는데요. 그 기간 동안은 경기에 뛰는 선수라면 1번부터 11번까지의 번호를 고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열두번째 선수는 필요 없으니까요.(지금은 열두번째 선수가 매우 중요하죠. 바로 관중들) 이러한 개념은 1960년대 들어서 한 선수의 등장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최초로 14번을 달고 뛴 전설적인 선수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공격수 요한 크루이프는 뛰어난 실력으로 기억될 뿐만 아니라, 최초로 1~11번 이외의 등번호를 사용한 선수로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전세계 축구 선수 중 최초로 본인이 선호하는 번호를 선택했던 것인데요.

14번의 전설, 요한 크루이프(멀리 보이는 서독 선수도 11번이 아니네요^^)

13번을 가장 선호하긴 했지만 숫자의 부정적인 의미 때문에 14번을 대신 선택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네덜란드라는 지금도 개방적이고 다양한 문화로 유명한데요. 축구 문화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번부터 차례대로 번호를 선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당시에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을텐데요. 더욱이 그 선수가 한 국가의 전성기를 이끈 전설적인 선수가 되었으니, 이후 등번호에 대한 틀을 보기 좋게 깬 사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요한 크루이프가 선택한 14번은 네덜란드 축구계 전체에서 특별한 숫자가 되었는데요. 그의 소속팀이었던 야악스에서는 14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해서 영원히 그의 번호로 지정했으며, 그의 기일에 열리는 경기에서는 전반 14분 경기를 잠시 멈추고 그를 추억하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선수는 몇 번인가요?

이제는 0~99번까지 번호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요.(출처 : 한국일보)

 레전드의 길을 걷고 있는 호날두와 메시는 각각 '7'번과 '10'번을 달고 경기에 나섭니다. 두 선수가 모두 에이스이자 공격수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번호를 선택한 것으로 알겠지만, 실은 두 선수가 선택한 번호에도 축구의 역사와 포지션의 의미가 담겨 있었던 거죠.

 2019 아시안컵이 끝나자마자 구자철과 기성용이 차례대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평소에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즐겨 보던 사람들이라면 등번호 '13'과 '16'으로 그들을 기억할 겁니다. 그들이 은퇴하는 순간까지 선택했던 등번호는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선수는 몇 번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