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FC, DGB대구은행파크에 가보고 싶은 이유
모두 MT와 후배 밥 사주기(또는 밥 사주기 싫어서 피해 다니기)에 바빴던 대학교 2학년 봄, 저에게는 조금 엉뚱한 목표가 있었는데요. 경영대배 축구대회*에서 우승하는 것 그리고, 그 대회에서 꼭 골을 넣고 (같은 과 선배) 안정환처럼 많은 관중 앞에서 멋진 세레머니를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경영대배 축구 대회: 제 모교 경영대학 내에서 회식비를 걸고 펼쳐진 이벤트성 대회로 경영대학 내 분반한 4개 팀이 참가하여 리그로 우승팀을 결정했음.
지금도 가끔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위닝 일레븐을 함께 붙잡고 있는 제 친구가 엉뚱한 목표에 합류한 유일한 1인이었습니다. 저희 둘은 우승을 결정 짓는 마지막 경기에서 그 목표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프리킥 찬스에서 제가 헤딩 골을 넣었고, 한껏 멋있는 척을 하며 친구와 함께 세레머니를 완성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 좀...멋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이 점점 가물가물해지니까 할 수 있는 소리죠)
당시 관중석은 축구대회 마지막 경기를 보기 위해 온 학생들로 가득 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봤자 아주 작은 계단식 스탠드에 불과 100명 넘지 않았지만, 그 작은 스탠드를 꽉 채운 관중과 그 관중의 응원 소리를 들으면서 경기를 뛴다는 사실만으로도 제가 마치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축구에서 관중을 흔히 '열 두 번째 선수'라고 부르곤 합니다. 그만큼 관중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일 텐데요. 이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은 100,000명의 이란 남성(이란은 종교적인 이유로 여성의 축구장 출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들이 내뿜는 고성과 열기로 원정팀에게는 '지옥'으로 불립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도 오랜 시간 동안 하다디 스타디움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지요.
3월 1일 개막한 2019 K리그1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볼 때마다 텅 빈 관중석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영상의 댓글에는 "관중도 없는 축구 경기를 뭐하러 하냐"는 비난도 찾아볼 수 있고요. K리그 선수들도 꽉 찬 경기장에서 큰 함성과 응원을 받으며 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이런 안타까움을 가지기 전에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축구 경기장의 문제 아닌 문제점에 대해서 말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우리나라 축구의 전성기이자 단시간에 대한민국 축구 인프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계기가 되었는데요. 서울을 비롯한 월드컵 개최 도시 열 곳*에 모두 '신축' 경기장이 생겼기 때문이죠.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도시 열 곳: 서울, 부산, 인천, 울산, 광주, 대전, 대구, 수원, 전주, 서귀포
그리고 그중 여섯 곳은 축구 전용 경기장(이하 전용 구장)으로 지어졌습니다. 월드컵 이전까지 전용 구장은 한국 축구계 전체의 숙원 사업과도 같았습니다. 전용 구장과 트랙이 있는 종합 경기장에서 직관을 해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경기의 몰입도와 분위기는 하늘과 땅, 그 이상의 차이입니다. 전용 구장은 육상 트랙이 없어서 그라운드와 관중석의 거리가 종합 경기장보다 두 배 이상 짧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까지 다 볼 수 있지요.
전용 구장 여섯 곳을 비롯해 으리으리한 경기장 열 곳이 한꺼번에 생겼는데, 왜 예쁜 쓰레기냐고요? 문제는 월드컵이 끝난 후에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월드컵 이후 바로 이어진 K리그 경기에 대한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2002 월드컵 마지막 경기, 터키와의 3, 4위전 카드 섹션 문구인 "CU@K리그"가 무색할 만큼 말이죠. 사실은 줄었다기보다 K리그에 보이는 우리들의 관심에 비해 경기장 규모가 너무나 컸습니다.
FIFA에서는 월드컵 대회의 경기 입장권 수익 등을 위해 조별 예선을 치르는 경기장은 최소 40,000명 이상, 8강전 이상의 토너먼트를 치르는 곳은 60,000명 이상의 관중을 수용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축구 인프라가 갖춰진 유럽 등의 다른 나라가 개, 보수 또는 증축을 통해 위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신축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고 월드컵이 끝난 후 그 경기장들은 K리그의 각 구단이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은 FC서울, 수원 월드컵 경기장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 등에 말이죠. 사실 우리나라 프로축구 단일 경기에서 40,000명 이상의 관중이 입장하는 일은 드문 경우입니다. 세계 7대 더비 중 하나인 '슈퍼매치(수원 삼성 블루윙즈 대 FC서울)'를 제외하면 많아야 평균 1~2만 명 수준이었고, 이마저도 2002년 월드컵 이후 조금씩 하락해서 지금은 평일 일부 경기는 6~7천 명 정도의 관중이 입장하기도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K리그 경기는 항상 관중석이 텅텅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었고, 한 경기에 3만 장 이상이 남는 티켓 또한 그 값을 제대로 한다고 보기 어려웠죠. 제 가격에 티켓을 사서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축덕으로 인정받아 마땅한 상황이 되어 버린 거죠.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면서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와, 저 관중 봐. 어떻게 매 경기 관중이 수 만명이 올 수 있지?". TV 화면에 잡히는 관중석은 항상 홈 팬들로 가득 차 있으며, 열광적으로 보내는 응원을 보고 있자면 K리그의 그것과는 너무 많은 차이가 난다고 생각할 수밖에는 없죠. 물론 축구 종주국인 영국의 축구 열기를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홈구장 수용 인원입니다. 물론 아스날(에미레이트 스타디움: 60,260석),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올드 트래퍼드: 74,994석), 맨체스터 시티(에티하드 스타디움: 55,097석)처럼 상암 월드컵 경기장보다 훨씬 많은 수용 인원을 자랑하는 홈구장을 사용하는 팀들이 있고, 이 구장 또한 매 경기 매진 세례입니다. 하지만 구장 규모가 작은 팀도 많은데요.
풀럼(크레이븐 코티지: 24,500석), 크리스탈 팰리스(셀허스트 파크: 25,073석), 왓포드(버커리지 로드: 21,500석) 등이 대표적입니다. 참고로 풀럼과 크리스탈 팰리스는 각각 설기현, 이청용의 소속팀이었으며 왓포드는 이번 아시안컵 이후 김민재의 이적 루머가 있었던 팀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꽤 익숙한 팀이죠. 이 팀들을 비롯하여 2018-19시즌 프리미어리그 20개 팀 중 8개 팀이 수용 인원 3만 명 미만의 홈구장을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본머스의 홈구장 '딘 코트'(위 사진)의 수용 인원은 11,464명으로 K리그 1 12개 구단의 홈구장과 비교해도 가장 작은 수용 인원입니다. 본머스는 2017-18시즌 12위, 2018-19시즌 현재 1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강등권에서 힘겹게 싸우는 팀이 아니죠. 우리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구단의 경기만을 TV로 접하며 정작 부러워해야 하는 것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구장의 규모, 축구를 보러 오는 관중의 수가 아닌 그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과 열정입니다.
올 해 K리그 초반, 가장 주목 받고 있는 팀이 어딜까요? 이번 시즌 트레블*을 노리는 전북, 2년 만에 K리그1 으로 복귀한 탄탄한 팬심의 성남FC, 지난 시즌 준우승으로 돌풍을 일으킨 경남, 모두 아닙니다.
*트레블: 한 시즌에 세 개 이상의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 전북은 지난해 2개 대회 우승보다 더 큰 목표를 세웠다.
바로 대구FC인데요. 2018 러시아 월드컵 스타 조현우의 소속팀으로도 유명하죠. 올해 대구FC가 유명해진 이유는 조현우가 아니라, 새롭게 홈구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DGB대구은행파크' 덕분입니다.
지난 2003년, 시민구단으로 창단한 대구FC는 지난해까지 2002 월드컵 경기장 중 한 곳이었던 대구 월드컵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습니다. 이 구장은 다른 의미로 유명했는데요. 바로 '축구 경기 관람하기 가장 안 좋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수용 인원 68,000명의 육상 트랙을 포함한 종합 경기장이었던 점, 게다가 2003 대구 육상 세계 선수권을 염두하고 설계한 탓에 축구를 관람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의 경기장이었습니다. 그라운드와의 거리도 멀 뿐만 아니라 각종 시설물에 가리는 사각 지대도 많았으며, 관중석의 각도도 낮아 시야도 좋지 않았죠. 게다가 대구 시내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어 접근성도 좋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누가 직접 경기장을 찾아 관람하고 싶었을까요?
그러나 올해부터는 얘기가 달라졌습니다. 구단의 오랜 염원이었던 축구 전용 구장 'DGB대구은행파크'가 문을 연 것이지요.(구장명이 너무 촌스럽다고요? 그 이유는 다음 기회에 풀어 보겠습니다.)
수용 인원 최대 12,000명에 대구 시내에 조화롭게 자리 잡은 아담한 경기장인데요. 지난해 하반기부터 조금씩 궤도에 올라온 경기력과 구단의 홍보 그리고 K리그의 상황에 적합한 규모로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년까지 사용하던 대구 월드컵 경기장과 달리 10,000명의 관중만으로도 경기장이 꽉 찬 모습이며, 그 응원 소리는 수 만명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들립니다. 실제로 모든 관중이 일제히 알루미늄 바닥을 발로 딛으며 내는"쿵! 쿵! 골!" 구호는 홈 팀인 대구 선수들에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힘이 되고 있으며, 원정 팀들에게는 부담감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성적으로 그대로 나타났고, 올 시즌 매진을 기록한 세 번의 홈 경기에서 2승 1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좋은 성적이 팬들을 경기장으로 찾게 만드는 가장 큰 매력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일 테니, 대구FC의 홈 경기 티켓을 구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013년 가을, 숭의아레나와 상암 월드컵 경기장으로 각각 아이티, 브라질과의 평가전을 직관했던 적이 있습니다. 두 경기 모두 관중석은 매진이었고, 경기에 푹 빠져 응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브라질과의 평가전은 6만 명 넘는 관중의 열기와 함께 경기에 빠져들어, 눈 깜짝할 사이 경기가 끝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올해 대구FC의 홈 경기를 찾는 관중들은 2013년 직관할 때 느꼈던 저의 기분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렙니다.
2002년 월드컵은 우리나라 축구의 전성기였으며, 월드컵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숙제도 많이 던져 주었죠. 그 중 하나가 바로 '기대'였을지도 모릅니다.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최신식 경기장을 10개나 가지게 되었다는 것부터 월드컵의 열기를 그대로 K리그로 가져와 매 경기 관중이 꽉 들어찬 곳에서 경기를 하는 것.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또 다른 '대구FC', 'DGB대구은행파크'가 필요합니다. 적은 수라도 그 날의 분위기를 함께 하기 위해 경기장에 방문하는 관중이 많아지고, 그 분위기가 궁금한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티켓의 가치 또한 올라갈 것입니다. K리그 티켓 한 장을 구하기 위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처럼, BTS 콘서트처럼 **파크 홈페이지가 다운되고 밤새 줄 서는 날이 언젠가는 올 수 있을거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