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든 못하든 축구 자체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팬의 이야기
우리나라 프로축구팀 중에 좋아하는 팀이 있나요?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나라 프로축구를 보지 않는 사람이라도 프리미어리그에는 응원하는 팀이 있죠. 조금 더 가 볼까요?
축구를 아예 즐겨 보지 않는 사람이라도, 4년에 한 번씩 월드컵이 돌아오면 우리나라 경기에는 관심을 가지고 응원을 보냅니다. 각자 응원을 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죠. 그 수많은 이유 중에서 "그 팀이 잘해서", "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가 많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사람들(저를 포함한)의 특징 중 하나가 빨리 끓고 빨리 식는다는 것이겠죠. 소위 냄비근성은 응원을 보내는 마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잘할 때는 상관없습니다. 소위 응원할 맛이 나니까요. 그런데요. 내가 응원하는 특정 팀이 혹은 국가대표팀이라도 경기력이 좋지 않거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다시는 안 봐!", "관심 끊었어" 등의 의견이 끊이지 않습니다.
"잘.내.못.네"
진정한 팬심이란, 무엇일까요? 요즘 저는 팬심에 대하여 되돌아 보고 있습니다.
수원 삼성이 창단한 1995년부터 지금까지 저는 줄곧 수원의 팬입니다. 11살이었던 때부터 버스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종합 운동장까지 직관을 하러 갔었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로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서포팅*을 위해 수원 삼성 서포터즈인 그랑 블루에 가입하고, 제가 좋아하는 고종수 유니폼을 사기 위해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모으고 또 모았습니다.
*서포팅: 붉은 악마처럼 경기장에서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
휴지 폭탄, 꽃가루를 응원 도구로 만들기 위해서 집에 있는 두루마리 휴지와 신문을 모조리 찢고 없애서 어머님의 등짝 스매싱도 여러 번 맞았죠.
대학교를 수원 월드컵 경기장 바로 옆에 있는 곳으로 가게 된 것도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평일 야간 경기를 직관할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예전처럼 경기장을 자주 찾지는 못하지만, VOD로 전체 경기나 하이라이트를 챙겨 보며 계속 응원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수원 삼성의 전성기였습니다. 창단 초기부터 모기업의 과감한 투자를 앞세워 유명 선수를 대거 영업했으며, 당연히 성적도 좋았습니다. 프로 축구 리그 참가 3년째인 1998년에 첫 우승을 거두었고, 2002년에는 아시아클럽선수권(현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 무대까지 그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 이후에도 컵대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등 크고 작은 대회에서 우승 또는 항상 상위권에 있었죠. 약 10년간 리그의 강자로 군림하며 수원이라는 도시 또한 '축구 도시'라는 애칭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죠. 홈 경기마다 관중은 항상 가득했고, 공식 서포터즈인 그랑블루는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대규모 응원단이 경기장에 모였습니다.
이 당시 서포터즈 사이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응원가의 가사는 이랬습니다.
"사랑한다~ 나의 사랑~ 나의 수원~ / 좋아한다~ 오직 너만을 사랑해"
"우리는~ 우리는~ 아시아의 챔피언 / 우리는~ 우리는~ 우리는 아시아의 챔피언"
가사부터 애정이 듬뿍 들어 있고, '우리가 챔피언'이라는 가사는 챔피언이 아닌 이상 함부로 쓸 수도 없었죠. 경기장에서 항상 노래를 부르던 저에게는 수원 삼성을 응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거리였으며, 뿌듯함 그 자체였습니다.
2019 K리그1 초반 세 경기에서 수원 삼성은 3연패를 기록했습니다. 전년도 우승팀 전북, 2위 팀 울산과의 경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하부 리그인 K리그2에서 승격한 성남FC에까지 패한 것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수원을 상위권으로 예상한 전문가, 언론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 팬들도 마찬가지였고요.
선수 영입은 늦어졌고, 연봉이 비교적 비싼 베테랑 선수들과는 재계약을 하지 않았죠. 구단이 내세운 명분은 ”유망주 육성”이었습니다. 맞아요. 키워야 하고 꼭 필요하죠. 실제로 수원 삼성 산하 유스팀인 매탄고는 매년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다툴 만큼 좋은 유망주를 많이 길러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요. 어찌 보면 유망주 육성은 불가피했는지도 모릅니다. 3년 전 모기업이 변경(제일기획)된 이후 지원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고, 그 이후부터 성적은 조금씩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작년에는 상위 스플릿에서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하고 6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요즘은 경기가 있는 날에 문자 중계를 보기도 겁나고, 중계를 놓친 날에는 스포츠 기사를 검색하는 것조차 불편합니다. 또 졌을까 봐요. 제가 좋아하는 프로야구팀은 한화이글스인데요. 축구에서도 보살 팬이 되기는 싫으니까요. 점점 팬심이 줄어들고 경기에 관심이 줄어드는 건, 저만 그런 건 아니죠?
가끔 해외 축구 중계를 보면 홈 팀에 야유를 보내거나 홈 팀의 형편 없는 경기력에 손가락 욕을 하면서 경기를 관람하는 관중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들은 뭐가 그렇게 좋아서 욕을 하면서까지 한 팀을 응원할까요? 좋아하지 않으면 그만일 텐데 말이죠.
몇 년 전, 카페 라이브 채팅에서 우연히 만났던 리버풀 팬과의 대화로 '욕하면서 응원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수원’을 놓지 않고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즘 리버풀 성적이 좋지 않아서 경기 재미없지 않으세요? 응원하고 싶지 않으실 것 같아요."
"아니요. 괜찮아요. 잘하든 못하든 리버풀은 제가 좋아하는 팀이니까요.
제 맘속에 있는 냄비가 끓어 넘치려고 할 때도 짧았던 저 대화를 기억하며 나의 팀 수원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수원 삼성은 저에게 답답할 때 마음껏 소리지를 수 있게 해주었고, 감동의 눈물도 흘리게 해 주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응원하는 팀이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 수원의 팬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