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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 Apr 09. 2023

당신은 무언가에 진심을 다해
몰입한 적이 있나요?

재즈의 사전적 정의는 아래와 같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미국의 흑인 음악에 클래식, 행진곡 따위의 요소가 섞여서 발달한 대중음악. 약동적이고 독특한 리듬 감각이 있으며, 즉흥적 연주를 중시한다. 뉴올리언스 재즈에서 시작되어 스윙, 모던 재즈, 프리 재즈 따위로 발전하였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위의 정의처럼 재즈의 종류도 너무나 다양하고, 즉흥적 연주를 중시하기 때문에 유명한 재즈 음악을 제외하고는 연주자의 스타일에 따라 느낌이 너무나 달라져서 딱 하나의 말로 정의할 수 없어 사람들에게 재즈가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주호민의 “재즈란, 샵밥 뚜비 뚜바 ~”의 밈이 유명해진 것도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어디에서 누구의 재즈 공연을 보냐에 따라 사람들이 경험하는 재즈가 달라지곤 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재즈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막연하게 그저 자유롭고 즉흥적인 음악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내가 재즈에 대한 인식이 확실히 바뀐 순간이 있었다. 

어느 한 재즈 공연 때문이었는데, 이 공연 이후로 나는 재즈란, 나 자신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자 음악을 통해 자유롭게 대화하며 결국에는 하나가 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재즈에 나는 곧 매료되었다. 

공연은 성수동의 어느 작은 재즈 바에서 열렸는데, 친구와 정처 없이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재즈 포스터에 즉흥적으로 결정한 공연이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고 심지어 재즈도 잘 몰랐던 나는 그냥 주문한 와인을 홀짝이며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공연이 시작되고 연주자 중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피아노 앞에 앉아 각 악기 앞에 있는 연주자들을 소개했고, 첫 곡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했다. 어느 여행지에서 느낀 점을 음악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당연히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고, 그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없어서 그저 여행할 때의 설렘이나 즐거움 정도겠거니 생각하며 음악을 들을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음악이 시작되자 내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설렘이나 즐거움보다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의 음악이었다. 당황한 나는 머릿속으로 어떤 곳인지, 어떤 느낌인지 정의해 보려 했으나,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이내 포기했다. 그리고 그냥 생각하지 않고 음악을 듣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몇 곡을 더 연주하는 그들을 지켜보는데, 나는 점점 음악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부끄러움에 눈물이 흘렀다. 

연주자들의 눈빛 속에서 나는 재즈에 대한 그들의 순수한 사랑을 보았다. 그 들은 서로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지금 이 순간 다른 고민이나 걱정은 없고 오직 내 앞에 있는 악기와 내 옆을 지키는 소중한 사람들만 존재한다는 듯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내고 있었다. 베이스의 선율은 내 몸속 아주 깊은 곳을 울리는 듯했고, 드럼의 리듬은 나를 일깨우며, 피아노의 선율은 나를 감싸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들은 행복해 보였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이란 저런 것이구나, 무언가에 모든 것을 쏟아내는 열정이란 저런 것이구나. 

그리고 내 안에 누군가가 물었다. 너는 무언가에 저렇게 진심으로 몰입한 적이 있느냐고. 

없다. 나는 언제나 현실적인 것을 먼저 생각해야만 했다. 이걸 하려면 적어도 이 정도 여유는 필요해. 돈도 안 되는 일에 내가 시간을 어떻게 내겠어. 등. 무언가를 아무런 대가 없이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시작하기엔 내 삶은 너무 팍팍했고, 현실은 냉정했다. 마치 네가 그럴 주제가 되냐는 듯이 세상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포기했던 꿈들이 좌절해야 했던 지난날이 서글퍼졌다. 그런데 그날의 재즈 선율이, 그 선율을 만들어내는 연주자들이 나를 다독이는 것 같았다. 그럴 필요 없다고. 때로는 그저 너 자신만 생각하라고. 위로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내가 하는 일을 때려 칠 용기도 여유도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저 나 자신만 생각하길. 그렇게 조금씩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내 시간을 채워나가길.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도 가득 채워지지 않을까. 충만해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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