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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 Dec 05. 2023

중국 출장

기다림의 끝

내 기억 속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만났다.

나는 거의 동일한 시간에 퇴근해서 차를 몰고 테니스코트에 가서 레슨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을 살고 있었으므로, 나보다 훨씬 빨리 출근함에도 불구하고 늦게 퇴근하는 그를 역에서 픽업해서 집에 데려다주곤 했다. 잠시 얼굴을 보는 것뿐이긴 했지만 우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자차가 있어도 차를 관리하는 법을 몰랐던 내게, 그는 핸들소리 한 가지로도 뭐가 문제인지 알려주곤 했다. 

그를 통해 자동차 부품에 대한 용어들을 들으며 내 삶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내가 나고 자라고 살아온 지역, 누군가가 볼 땐 작고 볼품없는 그저 그런 동네였던 그곳을 그는 나와 함께 누벼주었다. 넓은 지리에는 약하고 동네 지리에만 환했던 내가 운전을 하며 쏟아놓는 쓸데없는 옛이야기와 잡담들을 들어주었다. 갑자기 온 세상이 가득 찬 것만 같았다. 언제나 이곳을 떠나야만 누군가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번엔 반대였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존중하고 기억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두 번째 출장을 떠났다. 이번엔 중국이었다. 중국에 공장이 있다고 했다.

세계를 떠돌며 일하는 것, 내가 원했던 일을 그가 하는 중이었다.

두 달여의 장기 출장이었기에 그는 내게 출장지로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주말 이틀 동안만이라도 관광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우리의 만남을 이미 알고 계셨던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짧은 시간의 비행을 마친 후 뜨거운 대기가 반기는 중국에 도착했다.

나의 방문을 허락받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팀장님이 그와 함께 공항에서 대기 중이셨다.

 


팀장님의 환영을 받으며 공항에 도착해서 팀원분들이 반겨주는 저녁식사자리에 초대되었다.

'해외출장'이라는 화려한 단어와 달리 저녁식사 자리는 조촐했다.

한식이었는지 중식이었는지 메뉴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수줍게 웃으며 내가 앉을자리를 비워주시던 그의 상사들이 떠오른다. 그에게서 들은 나에 대한 간단한 소개에 맞추어 자신의 공통점을 드러내어 대화소재로 제공해 주시고 많이 웃어주셨던 것만 기억난다.

수줍게 미소 짓는 그와 그가 결혼에 골인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시는 회사 동료분들 정도로 기억은 갈무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또 한 번, 나는 그의 진심을 느꼈다. 진심으로 나를 대하는 순수한 마음이 '똑똑' 계속해서 노크하는 기분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다.

사진 찍기 놀이에 여념이 없던 그와 나는 말로는 '천진 아이'를 보러 간다고 했으나 사실은 어디든 정처 없이 걸었던 것 같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삼각대에 사진기를 고정시켜 두고 사진을 찍었다. 5초 혹은 3초로 시간을 맞춰두고 사진 찍는 우리를 지나가는 현지인들은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그들의 표정이 그야말로 천진난만해서 '천진'이라는 지명만 들으면 그 얼굴들과 한번 만져보고 싶지만 차마 만지지 못하던 아쉬운 손가락들이 떠오른다. 디지털카메라 속에 이미 들어가 있는 우리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천진의 현지인들은 사진 속에 없지만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



관광온 나를 위해 우리는 공기가 오염되어 스모그 현상으로 먼지가 가득한 천안문 광장을 함께 거닐기도 하고 배를 타고 용경협의 절경을 감상하는 투어를 하기도 했다. 여름옷만 챙겨가서 중국이라는 대륙은 조금만 흐리거나 산속 깊이 들어가면 두툼한 긴팔이 절로 떠오른다는 것을 제대로 배운 여행이기도 했다.

지금도 머릿속에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는 중국은 나의 아버지가 그토록 가보고 싶어 하시던 곳이기도 했다.

특히 용경협은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무협지 안의 한 장면을 재현해 놓은 듯 끝도 없이 이어지는 강과 굽이굽이 이어진 산등성이, 중간중간 보이는 절벽이 절경을 이룬 곳이었다. 누구든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던 그곳의 풍경을 보고도 그저 멋지다는 생각만 했던 그때의 내가 안타깝다. 그 모든 친절을 받고도 그의 마음을 조금 더 확인해보고 싶어 하던 냉정함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고 싶어 진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아버지는 새벽시간 잠들어있는 나와 남동생의 머리맡에 앉아 신문을 읽곤 하셨다.

잠들어있는 우리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시다 두툼해진 손을 들어 이불을 덮어주시고 또 한참을 바라보며 미소 지으시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우리나라에 붐이 일었던 섬유산업으로 사업을 하셨고 태어난 후에는 중동지역 파견근로자 생활을 하셨으며 귀국 후에는 자영업을 운영하셨던 아버지가 예고도 없이 떠오르는 순간이 올 때마다 내가 사랑받고 자랐음을 깨닫는다. 세상을 살아가며 힘들 때마다 내게도 기댈 언덕이 있었음을, 화려하지도 무언가 대단한 것을 선사하지도 못했지만 변함없이 꾸준히 따뜻함을 채워주었음을 기억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도 없이 등장했던 나의 냉정함은 내 성에 차지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 만들어낸 못된 성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 못된 성미는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누군가 앞에만 서면 본능적으로 발현되곤 했다. 어떤 행동을 해도 나를 받아주는 누군가를 발견하는 생존본능 같은 촉이 작동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촉은 중국 여행을 통해 내게 말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그런 너를 '용서'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어서 잡으라고.



우리는 중국 여행을 통해 결혼을 약속했다. 

나의 변덕과 이죽거림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아침, 점심, 저녁 식사할 메뉴와 식당을 고르고 여행코스를 도는 그를 보며 믿어도 되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아침은 햇반에 라면, 점심은 북경의 한식당, 저녁은 유명한 북한 식당 등 구질구질하게 비가 내리는 날씨 속에도 마치 근무시간의 연장 같았을지도 몰랐을 우리의 여행을 그는 꾸역꾸역 잘도 꾸려나갔다.

그런 그를 보며 지금껏 결코 쉽지 않았던 내 인생길도 그와 함께라면 꿋꿋하게 여봐란듯이 잘 이어나갈 것만 같았다. 한바탕 크게 다투고 중국을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마치 테스트 관문이라도 통과했다는 듯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다. 끝도 없이 확인하고 불안해하던 나는 혈연이 아닌 이상 느끼게 하기 힘든 관대함을 알려준 그를 배우자로 낙점했다. 중국여행은 그렇게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의 신호탄으로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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