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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 Mar 27. 2024

삶은 균형을 잡는 일

어린 날의 기억 한 조각과 변함없는 현실의 벽

텅 빈 집안에서 고요히 침묵 속에 잠기는 순간이 있다.

가만히 돌아가는 세탁기 속 물소리를 듣거나 고요하게 공간을 채운 가구들을 바라보다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기 시작하듯 머릿속 한편에 잠자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펼쳐지곤 한다.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운동장의 소음과 따뜻해지기 시작한 날씨, 반팔에 긴바지 체육복을 입기도 했던 것으로 보아 때는 5월경이었던 것 같다.

스탠드라 불렸던 운동장 한켠의 커다란 돌덩이가 계단처럼 이어진 곳에 아이들이 앉아서 쉬고 있다.

아마도 몇몇이 발야구를 하고 나머지는 관람석에 앉아 응원하거나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었을 거다.

체육선생님은 커트머리에 주근깨가 깨알처럼 박힌 이제 갓 어린이 테를 온전히 벗는 중인 부반장에게 말을 걸고 있다.

비슷한 키와 체격, 성적까지 가진 내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운동을 꽤 한다는 칭찬과 함께 선생님은 은근히 묻는다.

"아버지는 뭐 하시니?"

어릴 때부터 대답하기 애매했던 질문이었다. 아버지가 뭐 하시느냐는 물음.

부반장은 1초쯤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자영업 하세요."

그리고 이어진 "무슨 일 하시는데?"라는 물음에 얼른 "카센터 하세요." 하고 말한다.

약간의 서글픔과 부끄러움이 언제나 당당한 부반장의 눈동자에 서린다.


곁에서 대화를 듣던 나는 아무 말도 듣지 않은 척하지만 어느새 땅을 바라보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철물점을 운영 중이셨다.

넉넉지 않은 형편으로 경기도의 한 위성도시에서 자라고 있던 나는 그런 류의 물음 앞에만 서면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부반장은 씩씩하게 뒤이어 말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언제나 바쁘시다고,

바쁜 아버지처럼 자신도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마치 아랫것들의 안위를 묻는 척하며 자기만족을 꾀하려 이것저것 물어대는 못된 양반 놈 같은 체육선생에게 강펀치를 날린 듯했다.

그 친구의 모습이 얼마나 멋졌는지 기억한다.

다시 고개를 들어 부반장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간결하지만 당당한 대답을 하고 부반장은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교실을 가득 메웠던 53명의 아이들, 그중 한 명이었던 나는 내가 속해있던 가정을 깨고 밖으로 나가는 중이었다.

공부를 조금 잘한다고 해서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떤 선생들은 이름만 선생이라는 것을 깨닫던 중이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그런 사실을 말해서는 안 되었다.

사회는 그런 거였다.

권력자가 잘못된 행동을 해도 눈치껏 굴지 않으면 끌려가서 혼쭐이 나는 곳이었다.

부반장처럼 맵시 있게 상대방이 놓은 덫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집중해서 뭔가를 외우고 대답하는 것 말고 힘을 가진 상대방이 전혀 예상치 못한 무엇을 말하는 능력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말이나 글이 되어 마음속에 자리잡지 못했다.

형체 없는 생각은 공기 속으로 수증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자기 주체성이나 내 생각을 말하는 방법 같은 것도 중요했지만 지식을 외워서 확인하는 시험은 더 중요했다.

그 시험조차 완벽하게 준비하는 연습이 되어있지 않던 나였기에 학업을 따라가는 것만도 버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험에 집중할수록 칭찬을 들었던 것도.

하지만 세상이 원하는 만큼 결과를 얻지 못한 순간에는 손에 쥔 것이 고작 이것뿐임에 어리둥절했던 것도 떠오른다.

뜻밖에 어른들이 말했던 시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직장에 다닐 때였다.

삶은 살수록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므로 나는 다소 유치해도 나만의 철학을 만들어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뒤늦게 했다.

내 눈에는 자기만의 철학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굳게 믿으며 사는 자만이 눈앞의 숱하고 미세한 흔들림에도 꿋꿋할 수 있었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사십 줄을 살고 있는 지금조차도 그 개똥철학과 투철한 믿음이 따뜻한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물음에 빠진다.

부반장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체육선생에게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을 허락한 것 같기에...

하지만 따뜻한 사랑도 물질이 먼저라는 현실 앞에 다시 멈춰 선다.

우리의 피도 의식주 없이는 데워질 수 없기에 이것도 맞다.

더 확실한 현실 앞에 모호한 내 생각은 갈 길을 잃는다.

나의 부모님도 이렇게 생각하셨겠지, 삶의 갈림길에서 현실을 택해야만 했겠지...

어린아이를 바라보며 오늘도 생각한다.

삶은 균형을 잡는 일 투성이라고.

오늘도 부디 안녕히, 안전하게 지내다 집에서 만나자고 속삭여본다.

우리의 생각은 모두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의미 있는 말로 변하는 순간에 다시 나누자고.


다시 새로운 오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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