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아동의 부모이자 사회복지사로서, 푸른복지배움터의 글을 읽고
며칠 전, 양원석 소장님이 운영하시는 ‘푸른복지배움터’에 새로 올라온 아티클을 읽었다.
제목은 ‘자폐아동 진료, 병원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국내외 학술지를 기반으로, 자폐 스펙트럼 아동과 가족이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겪는 어려움을 분석한 글이었다.
나는 사회복지사이기도 하지만, 자폐아동의 부모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양 소장님의 글이 말하는 ‘진료 환경의 부재’나 ‘시스템의 준비 부족’은 내 삶의 풍경이었다. 글을 다 읽자마자 댓글을 남겼다.
“자폐아동의 부모로서 너무 공감합니다.
아이를 키우지만, 마을에서 우리 아이를 키우는 일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내가 쓴 짧은 댓글에 양 소장님이 정성스레 답글을 달아주셨다.
그는 “얼마나 많이 노력하시고 또 좌절하셨을까 싶어 속상하다”며,
“그래서 사회사업이 더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지역사회를 꾸준히 가꾸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한 문장이 오래 남았다. ‘사회사업이 자기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 그것은 결국 ‘지역사회가 사람을 품는 힘을 키우는 일’ 아닐까.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늘 ‘설명으로 시작해, 감사로 끝나는’ 일의 반복이다.
미용실을 가야 하면, 먼저 전화를 건다.
“저희 아이가 자폐가 있어서요… 시끄러운 걸 어려워하고, 가위 소리에도 예민해서요.”
그리고 사장님이 “괜찮아요, 오세요”라고 하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진료실 안에 들어가기 전, 나는 간호사에게 미리 설명한다.
“의사 선생님이 급하게 움직이시면 아이가 놀랄 수 있어요.”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해명하듯 설명해야 하는 일상.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식당은 괜찮다.
돈을 내고, 음식을 먹다 아이가 힘들어하면 그냥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병원이나 미용실, 학교, 돌봄센터 같은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은 다르다.
거부당하면 끝이다.
그래서 나는 먼저 ‘우리 아이를 받아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닌다.
그렇게 어렵게 만난 곳의 정보를 같은 처지의 부모들에게 공유한다.
“여긴 받아주셨어요, 아이를 정말 잘 이해해주셨어요.”
이 작은 정보 하나가 누군가에겐 생존의 끈이 되기도 한다.
나는 종종 꿈꾼다.
내가 아이의 장애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마을을.
“자폐는 옮는 병이 아니다.”
“그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느끼는 아이일 뿐이다.”
이런 말을 일일이 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사회를.
아이와 길을 걷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귀를 막으면,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그냥 지나가주는 세상.
그냥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넘어가는 세상.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는 아이와 함께 ‘보통의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그 ‘보통’이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 멀다.
특히 제도는 더 그렇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의 ‘돌봄교실’은 2학년까지가 우선이다.
3학년부터는 ‘스스로를 돌볼 수 있다’는 이유로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폐아동에게는 이 기준이 맞지 않는다.
우리 아이는 운이 좋아 3학년까지 돌봄교실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4학년부터는 떨어졌다.
방학이 오면 나는 매번 ‘누가 아이를 돌봐줄까’를 고민한다.
친정엄마께 부탁드리고, 활동지원사에게 부탁하고,
남편과 나는 번갈아가며 휴가를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이 일을 그만둬야 하나’ ‘아니면 아이를 기관에 맡길까’
하지만 맡길 기관도 없다.
그럴 때마다 “보통의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정말,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미치겠다는 표현이 딱 맞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나는 자주 묻는다.
“사회복지란 무엇인가.”
누군가를 ‘돕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가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양원석 소장님이 말하신 것처럼,
사회사업은 결국 지역사회를 ‘함께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가는 일이다.
누군가의 특성이 배제의 이유가 되지 않게 하고,
누군가의 다름이 불편함이 아닌 ‘공존의 일부’가 되게 하는 일.
자폐아동을 키우는 부모의 삶이 ‘개별의 문제’로 머물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가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복지관이, 병원이, 학교가, 미용실이, 마을이
조금만 더 ‘다름’을 이해할 준비를 하면 된다.
그건 거창한 복지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의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나는 이런 마을을 꿈꾼다.
아이의 특성을 미리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
아이가 소리를 내도, 사람들은 그냥 웃으며 지나가는 곳.
엄마가 두려움 없이 병원 예약을 할 수 있는 곳.
돌봄의 빈틈을 제도로 채워주는 곳.
그 마을은 ‘특별한 마을’이 아니다.
그냥,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마을이다.
양원석 소장님이 ‘푸른복지배움터’를 통해 보여주신 사회사업의 방향처럼,
우리의 지역사회가 더 푸르게, 더 단단하게 뿌리내리길 바란다.
누군가에게는 ‘공부거리’로,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글’로 남는
그의 글이 내게는 ‘마음의 응급약’ 같았다.
나는 오늘도 내 아이와 함께 마을을 걷는다.
작은 손을 꼭 잡고, 그 손 안에서 희망의 온기를 느끼며.
아직은 부족하지만,
우리 마을이 언젠가 아이를 온전히 품을 날을 기다리며.
푸른복지배움터 학술동향 글 원문 : https://edu.welfare.pe.kr/%ed%95%99%ec%88%a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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