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병동의 기록
호스피스 완화의료.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에겐 이제 너무 익숙하고 오래된 단어지만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처음 상담받으러 오는 이들에겐 너무나 낯설고 어쩌면 두렵기까지 한 단어 같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란 더 이상 치료가 어려운 말기 환자들을 위한 완화적 보존적 치료를 의미하는데 본인 또는 그 가족이 말기이고 더 이상 치료가 어렵다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호스피스병동 입원 상담을 받으러 오는 분들은 대부분 환자의 보호자들이다. 환자의 딸, 배우자. 어떨 땐 환자의 전 배우자가 오는 경우도 있었다. 보호자들에게 호스피스병동에서 가능한 치료, 입원절차, 비용, 입원기간과 같은 현실적인 부분들을 설명드리고 환자가 본인의 상황을 알고 있는지 물어본다. 마지막 질문에 주로 보호자들이 하는 답변은 ‘알긴 아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이다. 안다는 건지, 모른다는 건지 싶다. 대부분은 둘 중 하나다. 환자가 인지능력이 떨어져서 말해도 모르는 거나 이미 말기라고 들었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떤 보호자들은 ‘환자가 몰랐으면 좋겠어요. 환자에게 비밀로 해주세요.’라고 요청한다.
환자가 본인의 상황을 인지하고 본인이 스스로 정리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가족과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며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추구하는 이상이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호스피스병동은 최후의 보류 같은 곳이고 아직까지 호스피스병동에 가면 죽는다는 생각이 큰 것 같다. ‘지금은 호스피스병동에 가기엔 너무 이른 것 같아요. 조금 더 안 좋아지면 갈게요.’라고 하며 호스피스병동 입원을 미루다 임종하는 경우를 마주할 때면 마음이 좋지 않다. 집에서 있기 많이 힘드셨을 텐데.. 그들이 입원을 미룰 때 내가 조금 더 권유를 했어야 했을까. 그들의 마지막 순간은 어떠하셨을까. 나는 그저 그들이 편안하셨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호스피스병동은 죽기 전에 오는 곳이 아니고 죽으러 가는 곳도 아니다. 생각보다 무겁기만 하지 않다. 이곳에도 삶이 있다. 어떤 젊은 환자는 호스피스병동에서 처음 그림을 그려보고 그동안 몰랐던 그림의 재능을 찾았다며 즐거워했고 어떤 할머니는 아침 인사를 갈 때마다 고맙다고 손등에 뽀뽀를 해줬다. 매일 출근 전 아버지를 보러 오는 딸, 배우자 옆에서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남편. 이들의 삶은 호스피스병동에서 이어진다.
물론 이와 반대로 너무 늦게 입원하셔서 하루 이틀만에 생을 마감하시는 분들도 있다. 이런 경우는 보통 마지막 순간까지도 보호자들이 이별의 준비가 되지 않는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불편한 이야기를 보호자들에게 하고 싶지 않지만 할 수밖에 없다.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맞는 임종은 힘들다. 그런 과정을 너무나 많이 봤기에 환자와 그 보호자들이 호스피스병동에서 좋은 마무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환자와 보호자들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없앨 순 없지만 혼자 감당하기 힘든 순간을 함께 나누며 마지막 순간을 편안하게 지내도록, 환자와 보호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자 열심히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 호스피스병동을 조금 편하게 생각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 오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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