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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Jun 09. 2022

빅이슈가 하고 싶었던 말

자주 가는 동네에 1시에 문을 여는 북카페가 있다. 오랜만에 찾은 그곳에서 빅이슈를 만났다. 노숙인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빅이슈는 서울에서 직장에 다닐 때 어떤 의무감과 함께 종종 사보던 매거진이었다. 주로 회사와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빅이슈 판매원에게 구입했고 고향에 내려가는 고속터미널역에서도 빅이슈를 발견한 날엔 가벼운 인사를 하며 빅이슈를 집어 들곤 했다.

습관처럼 사보던 잡지였는데 결혼 후 지방에 내려오면서 자연스럽게 잊혔다. 북카페 메인 서가에 놓인 책들을 둘러보다가 선명한 초록색 바탕에 얼마 전 다녀온 키미 작가의 작품 <분홍 테이블>이 표지로 인쇄된 잡지가 눈에 띄었다. ‘BIG ISSUE’. 매거진에는 6월에 어울리는 선명한 초록을 닮은 전시회 소식과 장애인 이동권, 돌봄 노동 등 요즘 화두가 되는 이슈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빅이슈를 오래간만에 읽으며 어디에서든 양질의 정보를 읽을 수 있는 시대에 잡지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지, 그중에서 노숙인의 자립을 돕는 공익성 잡지를 소비하는 사람은 몇 퍼센트나 될지 가만히 헤아려 보았다. 빅이슈 5월호를 통해 얼마 전 다녀온 전시를 추억했고 아직 가보지 못한 매력적인 전시를 알게 되었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 ‘Don’t be affected by the bad feelings some one give you. (누군가가 당신에게 주는 나쁜 감정에 영향받지 마세요)’을 만나기도 했지만, 빅이슈가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될,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서였을 것이다.


언론에서 자주 보도됐지만 제대로 주목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오늘 천천히 읽어 보았다. 그동안 장애인은 지하철을 이용하려다가 리프트에서 추락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으로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기도 했지만, 엘리베이터 미설치 역사가 아직도 29개 역이나 존재한다고 한다. 엘리베이터조차 설치되지 않은 역이 있는데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위해 휠체어 대신 바닥을 기어 지하철에 탑승하는 시위를 벌여야 했던 장애인들의 절박함은 비장애인인 나는 헤아릴 수 없는 깊고 아득한 터널이었을 것이다. 대중교통이 ‘대중’이라는 단어를 쓰려면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버스와 지하철은 대중교통이 아닌 비장애인을 위한 교통 서비스일 뿐이다. 그동안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연대에서 꾸준히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했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인 데는 정치 영역에서 장애인의 목소리는 소수 중 소수로 여겨져 중요한 의제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이동할 수 없었고, 이동할 수 없기에 교육받지 못했고, 교육받지 못했기에 노동할 수 없었고, 노동할 수 없기에 시설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노들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유진우 님의 말을 달리 말하면 비장애인인 나는 이동할 수 있었고, 이동할 수 있기에 교육받았고, 교육받았기에 노동할 수 있었고, 노동했기에 시설이 아닌 내가 원하는 가정을 꾸리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장애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 의해 제 삶이 토막 나는 걸 더 이상 원치 않습니다. 제 삶을 저 스스로 온전히 선택하며 살고 싶습니다. 마음껏 이동하고, 마음껏 공부하고, 마음껏 일하며 그렇게 제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라는 한국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협의회 소속 박현 님의 말이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지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마땅히 필요한 요구가 해가 될 수 있을까. 이제는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각자의 속도로 온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장애인 이동권과 교육권, 노동권, 탈 시설권, 차별 금지법 등 법과 제도가 함께 뒷받침되어야 할 때다. 장애가 있고 없고를 떠나 모두가 자연스럽게 사회에 스며들어 자기만의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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