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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Jun 17. 2022

취향을 가꾸는 법

이유 들여다보기

얼마 전 지인들과 공주에 갔다가 돌아가기 전에 독립서점에 들렀다. 제민천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블루프린트북’은 무인으로 운영하는 책방인데 예전에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 나와 결이 맞는 책들이 많아 나를 잘 아는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던 곳이다. 이번에도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아래 선반에 꽂힌 책부터 고개를 올려다봐야 보이는 벽 선반에 놓인 책까지 촘촘히 살폈다. 그러다 2018년에 출간한 후 그동안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변영주 감독의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를 발견했다. 목차를 살필수록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 책을 한 손에 쥐고 카운터에 놓인 노트에 책 제목과 가격을 적고 카드 결제기 이용 방법 안내에 따라 결제를 했다. ‘변영주,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10,000원’. 전에도 이곳에서 한번 해 본 적 있지만 주인 없는 서점에서 손수 결제하는 일은 이번에도 어색한 경험이었다.


이 책은 묵혀놓지 않고 바로 읽고 싶어 대전에 오자마자 북카페를 찾았다. 방송을 통해 감독님의 목소리를 종종 들어서인지 강연집의 내용이 눈이 아닌 귀로 읽히는 것 같았다. 자신만의 관점을 담은 명징한 문장들이 내 안에 들어와 조금씩 자리를 찾아갔다. 어떤 문장에 감응했을 때 그 문장을 완벽하게 기억하려고 애쓰지 말고 나만의 문장으로 만들어 담아 두라는 말을 빌려 정리하자면, 어떤 경험을 하고 좋거나 싫은 감정이 들었을 때 그 감정을 뭉뚱그려 기억하지 말고 왜 그런지 파고 들어가 보라는 내용이 좋았다. 왜 좋은지 왜 싫은지를 알아가다 보면 취향을 발견하게 될 거라는 말과 취향의 호수를 넓히려면 호수에 사는 물고기가 많아야 한다는 말도 많이 보고 경험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잘 모를 때 섣불리 아는 체하지 말고 최대한 어려워하라는 말은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 안에서도 필요한 말 같았다.


왜 이 책이 좋았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나는 영화를 보는 것보다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같은 이유로 윤가은 감독님의 『호호호』도 그래서 좋았고 양희 감독님의 『다큐하는 마음』도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여성 영화인 모임에서 만든 『영화하는 여자들』도 그래서 좋았는데 이 책은 좋은 나머지 책을 선물하고 다시 사기도 했다. 아직 윤가은 감독님 인터뷰 밖에 읽지 못했지만, 그 인터뷰가 너무 좋아서 다른 인터뷰도 분명 좋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 책이다.


책이 좋았던 이유를 생각하다가 이번에는 왜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을까를 생각해 보니 나는 눈앞에 보이는 결과물보다 그 너머의 이야기를 더 궁금해하고 어떤 마음으로 일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알게 됐다. 춤은 못 추지만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열렬히 챙겨보고 그중 시종일관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나와 나이도 같고 아이도 있는 한 댄서를 가장 좋아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춤으로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은 그 댄서를 따라 연말에 희귀 질환 아동을 돕는 기관에 후원하기도 했으니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를 어제보다 한 뼘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영화 산업에 대한 이야기부터 여성, 창작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확장되어 가는 이 책을 나는 여러 번 다시 펼치게 될 것 같다. 어떤 부분이 좋았고 왜 좋았는지 깨닫기 위해서는 한 번으로는 부족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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