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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레보보봉 Dec 09. 2022

인간은 언제 '사회적인 동물'이 되는가

배진수 <머니게임>






<머니게임>



네이버 웹툰 <금요일>로 데뷔한 배진수 작가는 현재 <퍼니게임>을 연재하고 있다. <퍼니게임>은 <머니게임>, <파이게임>을 이은 게임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배진수의 게임 3부작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주인공이 어떤 게임에 참여하게 되면서 벌어진 일을 그린 작품이다. 각 게임마다 참가자와 규칙은 다르지만, 기본 몇백억씩 되는 상금을 보상으로 걸고 게임을 진행하는 것은 비슷하다.


이번에 리뷰 할 작품은 게임 3부작의 첫 작품인 <머니게임>이다. 당연히 <머니게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볼 예정이라면 먼저 작품을 보고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머니게임>은 네이버 웹툰 완결작으로 네이버 시리즈에서 유료 결제하여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의 인용은 인물의 대사로 합니다.



“사회에서 인간을 격리시키자, 인간에게서 사회를 잊게 하자, ‘동물’만이 남았다. 법도 규범도 도덕도 없는. 모르는. 동물만이.”





1.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없는 환경


우선 <머니게임>의 규칙을 요약하면 이렇다. 참가자들이 100일간 스튜디오에 머물면서 시작 상금 448억 원을 사용한다. 100일 이후 남은 금액은 서로 분배하여 상금으로 가지면 된다. 단, 스튜디오에서의 물가는 소비자가의 1000배 가격으로 책정된다.


하루에 만 원어치 가량의 금액을 사용하면, 스튜디오에서는 천만 원으로 결제가 된다. 참가자는 주인공 포함해서 8명이며 누가 무엇을 구매했는지 모른 채 차감 금액만 알 수 있다. 여기까지는 금액을 최대한 아끼면 버틸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 건물처럼 화장실이 기본적으로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머니게임>, <파이게임>, <퍼니게임>에서는 화장실을 제공하지 않는다. 오직 스튜디오 광장과 개인 방만 주어진다. 


화장실을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변기 하나 설치하는 데에 가격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게임 참가자들은 돈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라 최대한 금액을 많이 남겨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에서처럼 생활할 수 있을까?


스튜디오에는 룰북에 적혀있는 규칙을 제외하면, 주최 측이 딱히 참가자를 제지하지 않는다. 그 말은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와 사회적 시스템 또한, 주최 측은 신경 쓰지 않는다.


위생적으로 살 환경은 물론,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 게다가 참가자들 간의 분쟁이 일어난 경우, 힘이 강한 구성원이 대다수를 지배하거나 구성원들끼리 죽이는 최악의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작품 초반에는 나름 구성원들끼리 타협을 하여 생활을 하지만, 구성원이 죽어갈수록 인간의 존엄성이 무색한 끔찍한 광경이 펼쳐진다.






2.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의 정치체제


<머니게임>은 주인공인 8번 방 남성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엄청나게 정의롭지도 않고 그렇다고 악하지 않는 주인공은 직접 나서지 않은 채 다른 참가자들을 관찰한다. 스튜디오 내에서 참가자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는 인물들이 있는데, 누가 집단에서 우두머리가 되는지에 따라 게임의 흐름이 달라진다. 


주인공은 종종 교수님(선생님)의 수업 내용을 떠올리는데, 수업에서 나온 정치체제는 민주주의, 독재, 사회주의, 철인정치이다. 스튜디오에서 6번 방 남성이 민주주의 형태로 집단을 이끌고, 4번 방 남성이 3번 방 여성과 같이 독재를 하고, 7번 방 여성이 사회주의적 시스템으로 식량을 분배하고, 마지막으로 조용히 관전하던 5번 방 남성이 4번 방을 제압하고 철인 군주가 되어 집단을 통치한다.


언뜻 보면, 위의 분석처럼 스튜디오 내에서도 정치체제가 변화한 것처럼 보인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철학자들도 정치체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떤 정치철학자도 <머니게임>처럼 100일간의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번 바뀌는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선 6번 방이 직접민주주의의 형태로 집단을 이끌었다고 나타나는데, 그 방식은 다수결 투표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선거로 정치인을 뽑는다. 후보가 2명 이상이면 가장 표를 많이 얻는 사람이 당선된다. 최선인 후보자가 아니라 차악인 후보자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에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지만, 적어도 누가 당선이 되든 지금 당장 내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6번 방이 제시한 투표는 우리가 생각하는 선거와는 다르다. 그가 말한 제안은 제비뽑기를 해서 당첨된 사람의 방을 화장실로 이용하자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스튜디오에는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용변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인간의 배설물에도 독성이 있기 때문에, 그대로 노출되면 위생상 좋지 않다는 것이다. 거기다 스튜디오는 창문이 없는 폐쇄적인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환기가 불가능하다. 


한 마디로 그의 제안은 집단의 생존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투표이다. 만약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싼 배설물의 독기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고, 투표를 하면 화장실 방으로 당첨된 한 명은 죽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애초부터 이런 상황에서의 투표는 한 시민이 정치활동에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에 불과하다. 생존이 급박한 상황에서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재산 관리의 중요성을 언급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재산 획득 기술은 본성적으로 가사 관리 기술의 일종이다. 왜냐하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고 국가 공동체와 가정 공동체에 유익한 재물들 가운데 비축될 수 있는 것들은 넉넉히 비축되어 있거나, 아니면 가사 관리 기술이 그런 것들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1권. 8장. 1256b26-29)


국가(polis)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재화가 필요하다. 국가의 재산뿐 아니라 참여하는 시민들이 정치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가사 관리(oikonomia)가 제대로 되어야 한다.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zoion politikon)”이라고 주장했는데(1권. 2장 1253a 1-2), <머니게임>과 같이 생존 자체가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과연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로 존재할 수 있는가?






3. 철인이 태세 전환을 한 이유


스튜디오에서 무력으로 권력을 쟁취한 참가자는 4번 방, 5번 방이다. 강압적인 태도로 참가자들을 대한 것은 둘이 비슷하지만, 주인공에게 4번 방은 ‘독재’로 5번 방은 ‘철인’으로 여겨진다. 4번 방은 본인과 3번 방을 제외하고 나머지 참가자들에게 최소한의 금액만 사용하도록 강요했지만, 5번 방은 본인도 다른 참가자와 똑같이 도시락 한 개, 물 한 통으로 버텼기 때문이다. 


작품 내에서도 5번 방은 최대한 절제하고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보고 주인공은 플라톤의 『국가』에 나타난 철인정치를 떠올린다. 만화에서 나타난 철인정치에 관한 설명은 이렇다. 


“플라톤은 지혜를 가진 철학자가 통치를 하는 것이 이상적이라 생각했으며, 국가를 통치하는 철학자는 지혜를 닦기 위한 어렵고 혹독한 과정을 거침으로써 이데아 중 최고의 가치인 선의 이데아를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에서는 통치자 계급과 수호자 계급에 관한 교육을 상세히 나열한다. 통치자가 되기 위해서는 ‘절제, 정의, 용기’는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 생산자 계급을 제외한 두 계급은 사유 재산도 소유할 수 없고 가족도 꾸릴 수 없다. ‘선의 이데아’를 통찰하기 위해서는 어릴 적부터 통치자의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훈련받아야 한다.


물론 <머니게임>의 5번 방은 수호자에 가깝지만, 참가자들 중에서는 그나마 『국가』에 나타난 지도자의 자격에 적합한 편이다. 그렇지만 『국가』에서 통치자는 더욱더 기준이 까다롭다.






“그는 서로 불의를 행하거나 당하는 일 없이 언제나 질서와 이성에 따라 움직이는 질서 정연하고 영원불변하는 것들을 관조하며 그것들을 모방하려 하거나, 힘닿는 데까지 그것들에 동화되려고 노력할 것이네.”(6권 500c)


여기서 ‘그’는 철학자 왕이다. 정확히는 철학자의 특징에 관해 소크라테스가 설명한 것인데, ‘질서 정연하고 영원불변하는 것들’은 ‘선의 이데아’라고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철인 군주가 되려면 절제, 정의, 용기를 영원히 유지하고, 선천적으로 갖춘 훌륭한 혼을 훌륭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주장처럼 훌륭한 사람이 계속 훌륭한 상태로 남을 수 있을까? 특히 내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절제, 정의, 용기와 같은 덕목을 유지할 수 있을까? 


<머니게임>에서는 돈이 몇백억이 있지만 돈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첫 번째는 1000배의 물가에서 펑펑 돈을 쓰다가 게임이 끝날 무렵에는 얼마 안 남을 수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구성원이 여러 명인 상황에서 개인이 소비를 마음대로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 내에서 2번 방 여자는 특정한 약을 복용해야 하는 난치병 환자다. 사회에서 약은 보험처리가 되었기 때문에 비싸지 않았지만, 스튜디오 내에서는 1,000배의 가격으로 약을 구매해야 한다. 최대한으로 절약해서 상금을 많이 남겨야 하는 참가자들은 살기 위해 약이 필요한 2번 방을 불편한 눈으로 볼 수밖에 없다.


스튜디오의 환경은 비위생적이고 게임이 끝나기 전에는 병도 제대로 치료할 수 없다. 거기다 영양보다 가격이 싼 음식을 소량 섭취하니 면역력이 약해진다. 무기를 구매하는 것은 금지했지만, 참가자 간의 싸움에서 큰 상처를 입은 경우에는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5번 방은 눈이 멀게 되고 서서히 죽어가기 시작하면서, 결국에는 상금을 마이너스로 만들어버리게 된다. 『국가』의 철인은 변하지 않겠지만, 현실의 철인은 이런 상황에서 이상적인 군주로 남을 수 있을까?






작품에서 철인 통치의 단점에 대해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초월적 권력을 지닌 통치자……니까, 그 철인이 태세 전환을 하면. 뭔가 초월적으로 안 좋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철인이 태세 전환을 하게 된 배경에는 본인의 사욕과 단순한 변심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가/백성/자신의 생존이 불가능한 환경도 포함된다. 지도자라도 <머니게임>과 같은 극단적 환경에 처한 상황이라면, 과연 좋은 정치활동을 할 수 있을까?






<파이게임>과 <퍼니게임>에 대해서도 언젠가 다뤄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배진수 작가의 작품 중에 <금요일>을 제일 좋아하는데, 몇몇 단편은 분석할 요소들이 많다. 






참고 자료

배진수. <머니게임>. 네이버 웹툰. 2018-2019.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천병희 옮김. 숲. 2020.

플라톤. 『국가』. 천병희 옮김. 숲. 2019


이미지 출처

배진수. <머니 게임>. 네이버 웹툰. 201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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