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필로소퍼 속 흥미로웠던 관심 경제 칼럼 ‘시간 도둑을 잡아라’.
필로소퍼는 내가 좋아하는 잡지 중 하나이다. 이전에 현대인들의 소비를 주제로 한 편을 낸 적이 있었는데 내 소비 행태를 돌아보는 것뿐만 아니라 현 사회의 소비문화에 대해 다양한 학문적 접근을 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경제학 교수도 아니고 사회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아닌 내가 현대인의 소비 행태에 관해 다양한 학문의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며 즐겁게 읽었었다.
그로 인해 필로소퍼라는 잡지는 매우 흥미롭고, 친근하고 대중을 위한 잡지이면서도, 주제에 대한 전문성을 놓치지 않는 멀티 매거진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좋은 기회로, 뉴필로소퍼 ‘당신의 시간은 안녕하십니까?’ 편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다소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찬찬히 그리고 자세히 각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시간에 대해 읽어보았다. 그러면서 다시금 감동한 것은, ‘시간’이라는 어쩌면 다소 철학적이고 어려운, 밑도 끝도 없어 보이는 이 추상적인 주제에 흥미롭게 다가설 수 있도록 기획된 뉴필로소퍼 특유의 힘이었다.
개인적으로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추상적이고 막연하며, 가끔은 시간 낭비와 비슷한 몽상과 같은 것이고, 그것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영역이며 철학자들의 경계에 속한다고 여겼다. 전문가도 무엇도 아닌 일개 개인으로서 시간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모순적이지만 오히려 이번 편에 더 끌렸다. 내 것이 아닌 영역, 내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되는 것에 도전해보는 것에 가끔 욕심이 생기곤 하는데 그래서였던 것 같다. 시간이라는 것을 다루는 철학 잡지를 읽고 과연 내가 이해하며 나아가 나만의 견해를 정리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지만 그래도 도전해보기로 결심하고 첫 장을 펼쳤다.
첫 장부터 눈길을 끈 것은 ‘뉴필로소퍼’ 호주판 편집장의 서문이었다. 서문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 시간을 가장 어리석은 방식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짧다고 불평부터 하는 이들이다.
- 장 드 라 브뤼예르 ‘
사실 부끄럽지만 최근의 내가 이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분명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탓해야 하는 것이 맞았지만 무엇인가 억울한 마음에 혼자 불평을 해댔다. 일명 요즘에 흔히 말하는 말로 ‘팩트 폭력’, ‘뼈를 맞은’ 기분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이전에 예상했듯이, 뉴필로소퍼는 시간에 대해 경제학, 물리학, 철학, 미디어, 윤리학 등 다양한 학문과 시각으로 접근한 전문가들의 칼럼과 글을 제시한다.
먼저 하나 인상 깊었던 칼럼은, ‘시간 도둑을 잡아라’라는 제목의 가디언지 기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버크먼의 글이었다.
이 글에서는 ‘관심 경제’라는 개념을 다루는 데 마케팅과 사회 전반 트렌드에 흥미를 가지는 나에게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 칼럼의 필자는 현대인들, 우리가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즉, 간단히 말하자면 대중, 소비자들의 관심이 경제의 주체로써 작용하는 시대라는 말이다.
다음의 문장이 더 깊은 이해와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현대 심리학의 창시자 윌리엄 제임스는 “내 경험은 내가 관심을 쏟기로 동의한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달리 말하면, 관심이 곧 인생이라는 것이다.
인생은 결국 한 사람의 관심 범위를 채우는 요소들의 총합이다.
(중략)
관심을 쏟는 행위가
“관심을 쏟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모든 것, 추구하지 않은 모든 목표, 만약 다른 일에 관심을 쏟았다면 얻을 수 있었을 모든 가능성”을 지불한다는 의미와 같다고 말한다.
관심을 쏟는 일은 결국 가능한 다른 미래를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시간과 관심이 얼마나 현대사회에서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사실 생각 해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새삼 묘하게 와 닿는 사실은 내가 지금 쏟는 관심과 시간투자로 인해 알 수 없는 또 다른 미래는 나에게 기회비용으로 남겨진다는 것이다.
결국 이 글에서는 더욱 교묘해진 미디어 업계 및 기업들이 우리의 관심을 능숙하게 통제하고 소비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관심을 이끌어낸 다는 것은 곧 각 개인의 시간 투자를 이끌어낸다는 뜻이며 그것은 곧 돈, 소비와 직결된다.
우리는 소비를 능동적으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sns, 미디어, 인터넷 등 발달하는 기술로 인해 결국 우리의 관심과 시간을 교묘하게 통제당하며 수동적으로 소비를 하게 조정 당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예전에 비해 현대인들이 언론과 미디어를 접할 기회가 많아지고 그로 인해 더 똑똑해질 기회가 많아진 것 같지만 사실 언론과 미디어에 의해 조정 당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바보가 될 가능성이 더 많아진 것이라는 지적을 떠올리게 했다.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필터링이 되지 않은 날 것의 정보들이 범람하는 미디어 시대를 맞이함에 따라 최근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를 길러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란, 다양한 방식의 교육을 통해서 향상시킬 수 있다는 일종의 능력인데 이 능력이 높아질수록 우리는 미디어가 우리를 어떻게 정신적, 정서적으로 조작하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더 깊이 있게 감상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칼럼에서 너무 멀리 온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본질적으로 비슷하다고 느꼈다. 진짜 의도를 화려한 미디어의 모습으로 교묘하게 가리고 현대인들의 무의식을 조종하는 미디어 시대는 관심 경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 느꼈다. 그리고 그 미디어 시대와 관심 경제는 결국 개인의 관심과 시간의 투자를 근간으로 순환하며 돌아간다.
그리고 이 칼럼의 끝은 다소 애매하게 끝을 맺는다. 결국 우리네 관심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만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먼저 지적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이렇게 교묘하고 무서운, 보이지 않는 적들의 통제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인지 다소 답답해졌다. 물론 당연하게 명쾌한 해답이 있을 수 없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지만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칼럼은 다소 뜬금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명상을 통한 집중력 향상을 시작으로 개인의 관심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능동적으로 통제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이미 sns와 인터넷, 미디어에 24시간 노출되어있고 길들여져 있는 우리가 명상을 가지는 것은 근본적인 시도라고 생각한다.
30분만 이라도 스마트폰과 떨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대인들에게 디지털 기기를 포함한 모든 것들과 떨어져 온전히 명상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결국 나의 인생을 위해, 스스로의 시간을 통제하는 것을 위한 궁극적인 시작이 아닐까?
내가 가지는 관심 그리고 그로 인해 투자한 시간으로부터 비롯된 미래가 기회비용으로 존재하는 또 다른 미래보다 더 나은 가치를 지니길 바란다면 당장 10분짜리 명상이라도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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