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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cea Nov 02. 2021

무제

당신께 제사를 지내며

당신의 사진 앞에 향을 켜고

나는 묻습니다


당신의 시간 안에 제가 있을까요.

나의 시간 안엔 당신이 참 많습니다.


수많은 시간 속에

당신은 젊었다가, 늙었다가

웃었다가, 울었다가


눈을 감고 떠올려보면

내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곁에 머물렀다가, 사라졌다가


멈춰버린 당신의 시간 안에

나는 어떤 모습인가요


시간의 길이가 늘어날수록

나는 당신을 잊어갑니다


하루하루 살아낼수록

시간 속 당신은 꿈처럼

아득해져만 가는데


나는 당신의 옷깃을 붙잡고

나는 당신의 손을 꼭 쥐고

나는 당신의 앞을 막습니다


흩어지는 당신이 밉기도 하고

얄궂은 섭리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언젠가,

어느 날, 어느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표정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내 일상이

하나 둘 늘어갑니다


언젠가,

당신과 오래도록 이야기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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