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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군 Dec 24. 2022

누군가는 나를 지켜보고 있다

2022년에 배운 것 [3]

중간만 가라는 사람들 말 믿지 말고 열심히 해라


 군대에 가기 직전, 좋아하는 B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군대가면 중간만 하라는 말 많이들 하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해. 열심히 해봐. 다 네 경험이고 자산이 되니까.” B 선생님은 항상 제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참 적절한 타이밍에 해주는 분이신데,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군대에 온 다음에야 크리에이터 장삐주의 ‘신병’을 보게 되었는데, 선생님의 말씀과 똑같은 대사를 만났을 때 참 반가웠습니다.



중간만 가라는 새X들 말 절대 믿지 말고, X나 열심히 해라. X나 열심히 하면... 다 너한테 돌아온다.

- 장삐쭈, <신병> 중에서

(이미지 출처 : 장삐쭈, seezn)



 훈련소에서도, 자대에서도 그 생각을 항상 했습니다. 잘 하려고 하자. 사람에게 잘 하고, 주어진 일을 잘 해내고, 보내야 하는 시간을 잘 쓰자. 남의 일도 내 일처럼 하려고 했고, 조금 손해보더라도 발 벗고 나서려 했고, 할 줄 아는 건 굳이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가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면 뭐하나, 이따금씩 ‘현타’가 찾아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분명하게 느끼는 것은, 제가 어떤 모습을 보이건 누군가는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훈련소를 마치고, 같은 소대였던 동생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형 덕분에 훈련소 훈련 3주간 버틴 거 같다고. 형이 항상 앞에 서고 선두에 서고 힘내라고 해주고 솔선수범해서 힘내서 버틸 수 있었다고. 그 어떤 말보다 힘이 되었습니다. 군대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값진 순간은, 그동안 제가 틀리게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때였습니다. 군대에 와서 특별히 무언가를 다르게 한 건 없지만, 그동안 해왔던 게 틀리지 않았다는 막연한 확신과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누군가는 알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자대에 와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막내 생활이 길다가 상병 즈음이 되어서야 맞후임이 들어왔습니다. 같은 부서 간부님 한 분과 신병까지 셋이서 함께 저녁을 먹는데, 간부님이 신병에게 “얘 진짜 잘 하는 애니까 잘 배워라"라고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내가 군생활하면서 얼마나 많은 병사들을 봤겠어. 그런데 뭐 하나를 시켜도 막 하기 싫어하고 빼려고 하고 대충 하는 애가 있는가 하면 또 누구는 긍정적으로 해내고 내 일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한다고. 그런 애들이 나중에 전역하고 보면 잘 되더라고. 왜냐면 사람들은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보거든. (...) 얘는 하나를 얘기하면 두개 세개를 해오는 얘야.” 물론 제가 옆에 있으니 하신 말씀이겠지만 그래도 힘이 됐습니다.

 여기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은 절반만 맞았습니다. 어쨌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내가 나에게 비겁해지지 않습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라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위해서 고민하며 노력하고 싶었고 그렇게 해냈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누군가는 계속 보고 있구나,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걸 그 때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좋은 사람을 놓치지 않는 능력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았을 때 저는 운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나, 어쩜 이렇게까지 안 풀리나, 생각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또 군대에 올 때까지, 인생의 문 하나를 열고 닫을 때마다 정말 좋은 선배나 선생님을 꼭 만나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군생활을 마무리하는 지금 생각해보아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자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군대가 아니었다면 영영 모르고 살았을 사람들을 사귀게 된 것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친구에게 이러한 생각을 말하자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난 것까지는 행운이지만, 그걸 알아보고 그 사람들 눈에 들어서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왔다는 건 너의 능력인 거야.” 그 말을 듣는데 세계가 조금 넓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을 원동력으로 삼아서 더 좋은 사람이 되자. 내가 행운으로 느끼는 그 사람들이 똑같이 나를 행운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자. 동시에 전혀 다른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누군가를 알아보기보다는 누군가 저를 알아봐주기만을 바라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누군가 나를 알아봐주기를 바라는 만큼, 나도 누군가를 알아봐주자. 알아보려고 노력하자. 그렇게 생각하니 21개월의 군생활이 아깝지만은 않게 느껴졌습니다.




‘비트윈', ‘타다’ 등의 서비스를 런칭한 VCNC 박재욱 대표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매년 올해의 배움 10가지를 정리하여 올리시던 것에서 영감을 얻어, 2021년부터 2년째 진행하고 있는 연말정산입니다. 한 해 동안 배운 10가지를 선정해 정리하고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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