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태국으로
겨울에도 보일러는 거의 틀지 않으시는 몸에 열이 많으신 70대 어머니, 그래서 더운 나라 여행은 꿈도 꾸지 않으시는데 태국이라니,
그것도 하필 여름 중에 제일 덥다는 4월, 가뜩이나 무릎이 시원찮으셔서 오래 걷는 것을 힘들어하시는데 더하여 불볕더위 속을 어찌 걸어 다니시라고 태국이라니,
* 태국의 여름은 3월부터 시작해서 6월까지다. 우리의 여행은 4월이었다. 1년 중 가장 더운 때.
한 여름의 인도를 배낭여행으로 다녀온 전력이 있는 언니가 배낭여행자의 천국이라는 태국을 제의했고 최근 집 안팎의 여러 문제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기력해지신 어머니를 위한 여행이니 이 같은 이유를 들어 거긴 아니라고 했지만, 언니는 여러 사정을 고려했을 때 이 곳이 최적인 이유를 꺼내며 나를 설득했다.
1. 마침 저렴한 비행기 티켓이 딱! 나왔다
2. 마침 우리의 시간이 그때 딱! 맞추어진다
3. 어머니가 열대 과일을 좋아하신다
4. 관광지 여행을 하지 말고 우리 속도에 맞는 느린 여행을 하면 된다
5. 태국의 저렴한 마사지, 어머니가 매일 힐링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하긴 어디든 빨리 다녀와야 하였고 일본과 중국은 계(수 십 년 된 동네 친구 계)에서 하반기에 갈 계획이라 하시니 가까이 다녀올 곳은 더운 동남아뿐이었다. 저렴한 주머니 사정도 그러하였고.
아무튼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나게 되었다. 각자 바쁜 일에 쫓기느라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태국으로.
여행 고수들에게야 태국은 편하고 쉬운 여행지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이 예민하셔서 잠자리나 음식이 바뀌면 쉬 탈이 나는 70대 어머니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 10살 아이를 챙기며 다녀야 하는 여행은 한국이 아닌 이상에야 어디든 어려운 일이다. 미리 여러 변수를 예측해야 하고 가능한 더 많이 준비해야 했다. 음식에 예민하신 데다 당뇨를 조심해야 하시니 특히 음식조절이 중요하여 가능한 한식을 바리바리 싸야 했다. 몸이 힘들어지실 경우를 대비, 숙소에 혼자 쉬실 때 보실 드라마를 담은 노트북과 좋아하시는 네모네모 퍼즐게임을 위한 태블릿도 챙겼다.
10박 11일의 길지 않은 여행이지만 가능한 모두가 만족한 시간을 보내고 무탈하게 돌아오는 것이 미션이었다.
유전자의 영향인지 음식에 심각하게 예민하고 탈이 자주 나는 우리들의 체력이 두 분(?)을 케어하면서 힐링하는 여행을 치러낼 수 있을까. 자유여행 초보자인 나는 두려움부터 앞섰다. 언니는 비행기 티켓과 숙소 예약을 해놓고는 별거 없다는 듯 여유만만한 표정이다. 그러면서 이 기회에 두려움을 극복해 보라며 뒤로 물러나 있겠다고 선언했다. - 물론 실제 그곳에 도착해서는 함께 치러냈지만.
여행 베테랑인 형부는 겨우 태국, 그것도 열흘 다녀오면서 오버는, 하면서 웃었지만 나는 초보거든요, 배낭 메고 가는 것도 처음 이거든요, 만만치 않은 두 사람에다가 (비록 언니와 함께지만) 덩치만 이렇지 물갈이 기본에 알레르기 탓에 소고기도 닭고기도 못 먹는 걸요.
그래서 이 여행기록은 이런 분들과 함께 나누려고 한다.
태국 한 번도 안 가보신 분, 외국은 무서워서 무조건 패키지로만 가야 할 것 같은 분, 부모님 모시고 자유여행으로 가보고 싶은 분, 제일 더울 때의 태국이 궁금하신 분, 외국 음식 일절 못 먹어서 여행 가기 무서운 분, 부산 할머니와 어린이를 동반한 태국여행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신 분.
반대로 태국 여행 몇 번 다녀오신 분들은 심장에 무리를 일으킬 수 있으니 관람에 요 주의를.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해지고 자꾸 훈수하고 싶어 질 테니까.
어찌 됐든 4월의 태국으로 간다
내 짐만 싸면 되는 배낭여행이 아니다. 하루 한 끼 이상은 한식을 드셔야 하는 엄마를 위해 인터넷으로 구매한 즉석 국밥만으로도 이미 배낭은 가득 찼다. 그곳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아무것도 준비해갈 필요가 없다고 지인들이 얘기했지만 처음 한동안은 헤맬 수 있으니 일정의 반 정도만이라도 챙겨가는 쪽을 선택했다.
여행의 설렘은 떠나기 전, 일정을 짜고 준비물을 챙기는 과정에서 반이상은 끝난다고 했던가. 짐을 바리바리 싸게 되어 몇 달여행이라도 떠나는 듯 무거워도 동남아로 떠나는 가족의 여행이라니, 예전 첫 여행 떠날 때만큼은 아니지만 준비물 리스트를 체크하면서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설레어하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걱정도 딱 비례하여 함께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