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로의 이사를 결정하고 나서 바로 비자 신청 작업을 시작했다. 베트남, 미국을 거쳐 해외 거주 비자를 받는 건 세 번 째였다. 세 나라의 비자 작업 중 가장 시간이 오래 걸렸던 건 역시나 미국이었지만,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건 말레이시아였다.
예전에는 안 그랬다고는 하지만, 갈수록 해외 이민자들이 느는 까닭에 현재 말레이시아 정부는 외국인에게 비자를 내줄 때 꽤나 까다롭게 군다. 물론, 까다로워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좀 다른 종류의 까다로움이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멍청한 종류의 까다로움'...이라고 해야 할까. 말레이시아 비자를 진행하면서 암까지는 아니어도 몸 어디에 종양 하나 생기는 줄 알았다.
서류를 준비하는 일은 문제가 아니었다. 비자 신청서, 여권의 모든 페이지, 소득증빙서류, 배우자나 자녀가 있다면 관련 증빙서류 등 전부 납득 가능한 서류들이다. 신청에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모든 작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자료를 준비한 후 전부 스캔해 비자 신청 사이트에 업로드했다. 가장 처음으로 생긴 문제는 우리의 결혼 증명서였다.
미국에 배우자 비자를 얻어 갈 때도, 대사관에 그렇게나 우리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야 했는데 (연애 결혼한 게 맞는지 확인하는 사진을 보내야 하고, 인터뷰도 해야 했다), 말레이시아 비자를 신청할 때도 그들은 우리의 혼인증명서를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나는 미국 비자를 받을 때도 사용했던 한국 혼인증명서와 공증받은 번역본을 제출했는데, 말레이시아 이민국에서는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말레이시아와 한국은 아포스티유 협약국이 아니어서, 말레이시아 영사관의 인증이 필요했다. 그래서 집에서 새로 온라인으로 한국 혼인증명서를 뽑고, 그걸 번역한 것을 미국 내 말레이시아 대사관에 보냈고, 대사관에서 인증을 한 그 서류를 다시 스캔을 떠서 말레이시아 비자국 사이트에 업로드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야 겨우 우리의 혼인증명서가 받아들여졌다.
이 부분은 국가 간 아포스티유 협약이 이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생각한다. 그런데 그다음에도 몇 번이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비자가 거절되었다. 예를 들어, 서류 내용을 두 페이지에 나누어 보냈는데, 같은 내용을 한 페이지 안에 다 담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되거나, 그들의 확인 오류로 인한 거절, 신청 사진의 뒷 배경 색을 바꾸라는 이유로 거절 등, '참을 인'자를 여러 번 가슴속에 새기는 순간들이 많았다. 비자를 요청하는 입장에서 나는 철저히 을의 관계였기에, 그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거절해도 '그나마 응답이 늦지 않아 다행이네, 이메일로 연락이 돼서 다행이네'라는 말을 억지로 끌어내며, 정신 승리로 이겨냈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약 4개월에 걸쳐 비자 신청과 거절이 반복해서 이루어진 끝에 드디어 비자 승인을 받았다. 집에서 방방 뛸 정도로 기뻤고, 드디어 미국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벅차올랐다. 그로부터 한 달 만에 집을 정리했다. 비자 수명이 길지 않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에, 무인 창고 하나를 빌려 소파와 책상 같은 큰 가구와 식기류를 보관해 두고 집은 부동산 회사를 통해 세 놓았다. 그렇게 짐들을 정리한 후, 남편과 나는 각각 대형 캐리어 2개, 소형 캐리어 1개씩만 손에 들고 말레이시아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말레이시아와 미국은 직항이 없고, 우리가 사는 곳은 미국 시골이었기에 총 세 번의 비행기를 거쳐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 그리고 도착한 다음 날, 우리는 말레이시아 이민국으로부터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통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