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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돌아가세요 1 (말레이시아 비자 취득기)

by 라봇

말레이시아 비자를 완전히 손에 쥐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복잡한 일이었다. 거주 비자 승인 이메일을 받았기에, 그 상태로 말레이시아로 들어와서 입국했다는 연락을 이민국에 하면 바로 최종 실물 비자를 받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입국해 보니 내가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리 비자 승인을 받았다고 해도 그대로 말레이시아에 입국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말레이시아로 들어가기 위한 또 다른 비자가 필요했다. 관광객으로 입국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체류할 체류자로서 입국하는 거라, ‘체류자 자격’의 입국 비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일종의 ‘입국 허가용 비자’였다. 승인받은 비자는 한정된 기간 동안 말레이시아에서 체류할 수 있는 거주 비자였고, 그 비자를 이용해 체류하기 위한, ‘입국 허가용 비자’가 또 필요했다. 아니, 체류 허가가 가능한 비자를 승인받았으면 됐지, 체류자로서의 입국 허가 비자는 또 무엇인가. 세상 복잡한 말레이시아 비자 체계에 말을 잃고 말았다.


우리는, ‘체류자 입국 허가’ 비자라는 게 필요한 지 몰랐기에, 관광객으로서 입국한 상태가 되어 있었고, 때문에 말레이시아 이민국에서는, ‘체류자’로서 입국한 게 아니니, 승인받은 거주 비자 실물은 내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래서 그놈의 체류자 입국 허가 비자는 어디서 받는 건지 알아보니, '해외'에 있는 말레이시아 대사관 혹은 전자 비자로 받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미국에서 비자를 신청했기에, 직접 대면해서 비자를 받으려면 '뉴욕에 있는 말레이시아 대사관'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비행기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힘들게 말레이시아로 짐들을 끌고 도착한 지 3일 만에 다시 미국으로 가라니… 이 무슨 천장이 무너지는 소리인가..


그럴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장시간 다구간 비행에, 시차 적응에 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는데, 3일 만에 그 짓을 또 반복했다가는 몸이 아작 날 것 같았고, 비싼 비행기 값 또한 우리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당연히 우리는 전자 비자를 받는 쪽으로 선택했고, 당장 체류자 입국 허가용 전자 비자를 신청했다. 웃긴 상황이었다. 이미 말레이시아로 입국해 있는 상태였는데, 여기서 입국 허가 비자를 신청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겼다.


남편은 단번에 이 전자비자가 승인되었는데, 나는 몇 번이나 거절된 것이다. 이유를 알아보니, 말레이시아 행정국에 실수로 이름 성씨 란에 이름과 성이 전부 들어가 버린 것이다. 여권에는 성과 이름이 나눠져 있는데, 전자 비자 서류에는 이름은 없고 성씨 란에 풀네임이 들어가 버린 형식적인 문제가 생긴 것이다. 내 실수가 아니었고 말레이시아 행정국의 실수였는데도 불구하고, 비자국에서는 자기들은 이걸 수정할 수 없으니 나는 뉴욕에 있는 말레이시아 대사관에 직접 가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지..


그들이 한 실수 때문에 왜 내가 돈, 시간, 체력을 들여 다시 미국으로 가야 하는 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면 너무 하다는 것을 알지만, 정말 뇌가 없는 빗자루와 얘기하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말레이시아가 많이 발전된 나라라고 하더라도, 정부에서 하는 일처리를 보면 이곳이 동남아 국가라는 것이 아주 절실하게 와닿았다. 말레이시아 현지 사람들 또한 그들의 정부를 ‘리턴 거버먼트’라고 부르고 있었다. 매번, 이 핑계 저 핑계, 말도 안 되는 이유들로 할 걸 안 해주고 사람들을 돌려보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여기서 더 웃긴 일이 생겼다.


뉴욕으로 갔다가 오라는 말을 무시하고, 세네 번 연속으로 계속 전자비자를 신청했더니 알 수 없는 이유로 내 전자비자가 승인된 것이다. 진짜 기준과 시스템은 갖다 버린 정부인가보다. 비자 신청 때마다 수수료가 들어가는데, 그 수수료를 최대한 많이 뜯어내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몇 번이나 거절한 건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미국에 다시 안 가도 되는 건 천만다행이지만, 지금도 이 나라의 비자 시스템과 승인 기준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렇게 전자비자로 입국 허가 비자를 받기까지 말레이시아에 입국하고 3주가 걸렸다. 부동산을 통해 살 집을 구하고 세간살이를 사러 다니며, 다시 미국에 진짜 가야 하는 건가 노심초사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어쨌든 입국 허가 비자를 받았으니,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 다시 말레이시아로 재입국해야 했다. 그래야 다시 이민국한테, 우리는 체류자 자격으로 입국 허가를 받고, 그 비자로 입국했으니 승인받았던 거주 비자를 정식으로 보내달라 요청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에서 가까운 다른 나라, 싱가포르로 1박 2일 여행을 갔다 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비자를 보내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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