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버킷 리스트가 유행했을 때, 그리고 그 유행이 꽤나 오래 지속되어 나의 리스트가 여러 번 업데이트가 될 때에도 빠지지 않은 것이 두 개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는 10곡짜리 앨범 내 보기, 그리고 대망의 장편 소설 써 보기. 첫 번째야 그렇다고 치고, 나름대로 돈을 받고 글을 쓰는 세상에서 가장 상업적인 프로 글쟁이가 되어보니, 아…어쩜 저리 오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쓰고자 하는 글의 양, 만들고자 하는 세상의 크기는 결국 그 사람의 깊이에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겐 그 정도 깊이의 비관도, 우울함도 없고 앞으로도 생길 것 같지 않으니, 특기가 잘 살기인 인간에게는 택도 없는 꿈이었던 것이죠. 그러니 저는 비교적 허들이 낮은 에세이, 혹은 최소한의 메시지를 담은 일기를 끄적이며 때때로 단편 소설에 도전하는 (그리고 대부분 실패하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교조적이거나, 그 결과 우스워지는 글을 쓰는 것만을 열심히 피해 가면서 말이에요.
이처럼 모자람밖엔 없는 반쪽자리 글쟁이지만, 그래도 글쓰기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월급도 받아야 하거니와, 어떤 문구를 읽었을 때 ‘와…좋다’ 를 넘어서 ‘아…글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는 그 감각이 꽤나 중독적이기 때문입니다. 영업이 끝난 놀이동산에 입장하는 것 같은, 그런 미지의 두근거림이요.
비록 브런치가 제발 글 좀 쓰라고 알람을 치졸한 전 애인처럼 끈덕지게 보내서 써본 글이지만, 어쩌나 저쩌나 글쓰기는 즐겁네요. 같은 반쪽짜리 글쟁이들의 적당히 뜨뜻한 연말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