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계의 육즙 대장님
그런 말이 있습니다. 전 세계 어느 문화권에 가도 꼭 있는 음식 중에 하나가 바로 ‘만두’라고. 중국에선 무려 삼국지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만터우’가, 이탈리아에는 무려 깔조네와 뇨끼 그리고 라비올리가, 스페인은 엠파나다, 인도의 사모사. 지구 곳곳에 뿌리내린 그 수많은 만두들 중에 제가 가장 좋아라하고 찾아먹는, 만두계의 육즙 대장님, 소롱포를 먹으러 오늘은 이태원에 왔습니다.
많이들 ‘소룡포’라고 부르는 이 만두의 정식 명칭은 사실 ‘소롱포’입니다. 20세기에 ‘이소룡의 할리우드 진출을 틈타 글로벌한 인지도를 얻기 위해 이소룡의 이름을 붙여 만들었다’는 썰이 사실은 더 매력적이고 끌리지만, 작은 대나무 통에 쪄냈다 하여 ‘작을 소, 대바구니 롱’의 소롱포가 본명이죠. 하지만 누가 봐도 소룡포가 더 입에 짝짝 붙고, 온갖 육즙과 고기 맛으로 점철된 파워풀한 맛이 이소룡과도 퍽 잘 어울리기 때문에 상당수의 식당에서는 소룡포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아무도 동네 중국집에서 ‘작장면 하나요’라고 하지 않으니, 소롱포든 소룡포든 괜찮지 않을까요. 자고로 음식이란 맛있으면 그만이니까요.
하여튼 간에 이 소롱포는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가진 음식입니다. 정확힌 시기는 기억이 안 나고 찾아보기도 약간 귀찮아서 기억나는 대로 씨부리자면(죄송합니다), 대략 18세기쯤에 전국 유랑을 즐기던 청나라의 황제가 양쯔강 남쪽 지역을 돌다가 소롱포를 접했고, 그 맛에 반해 그때부터 중국 전역에 명성을 떨쳤다는 설이 있습니다. 뭐 그런갑다…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 소롱포의 조리법을 알게 되면 중국의 방대한 식문화와 기술력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건드리기만 해도 주욱-하고 쏟아져 나오는, 소롱포를 먹는 이유이자 최대의 매력인 풍부한 육즙. 이 육즙은 사실 만두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만두소에 특별한 작업을 거친 결과물이죠. 자, 그럼 이 육즙은 어떻게 추가된 것일까요? 위에 있는 동그란 구멍으로 조리 도중에 주입하는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만두소에 따로 젤라틴 형태로 굳힌 닭&돼지 육수를 고체 형태로 넣어 쪄내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최소 4백여넌 전에, 고체 형태의 육수를 넣어 인위적으로 육즙이 터져 나오는 만두를 만들어낸 것이죠.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먹던 소롱포의 감칠맛 나는 육수가 약간은 더 맛있어지는 느낌입니다. 그런 장치가 없어도 충분히 맛있긴 하지만요.
먹는 방법에서도 소롱포는 특별합니다. 터져 나오는 육즙을 받아낼 수 있는 큰 숟가락 위에 만두를 터지지 않도록 조오오심스럽게 잡아 올리고, 피를 살짝 찢어 안에 가득 찬 육수를 빼냅니다. 약간 식힌 뒤 바로 진한 육수를 호로록 마시고, 바람을 후후 불어 남은 만두피와 소 위에 생강채를 약간 얹어 한 입에 넣고 양껏 즐깁니다. 이렇게 몇 개를 먹다가 뒤에 가서는 육수를 따로 빼지 않고 통째로 입 안에 넣어, 자신의 성급함을 후회하며 바람을 후후 불어대며(보기에는 굉장히 숭하지만) 즐기는 것도 재밌습니다. 아마 지구 상 만두 중에 가장 먹는 법이 복잡하고 그만큼 재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소롱포 한 판, 사천풍의 국수 한 그릇, 어향가지에 공깃밥까지. 살인적인 웨이팅을 피하기 위해 엄한 시간대에 미적미적 기어 나와 먹는 한 끼이지만, 반쯤 잠들어있던 뇌까지 깨워주는 날카로운 맛입니다. 소룡포든 소롱포든 작장면이든 짜장면이든, 맛있는 중식이 사방 천지에 널려 있는 서울에 사는 것이 다시 한번 감사해지는 오후입니다.
-오늘의 식당은 야상해이며, 이태원역 근처 골목에 위치해 있습니다. 최자로드에 소개된 이후로 바글바글해진 집이고 웨이팅 시스템도 없으니, 피크타임을 피하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