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가기 전의 집, 서재의 책장 가운데칸에는 언제나 필름 카메라가 놓여 있었습니다. 낡고 두꺼운 청록색 줄이 달려 있는, 코닥 카메라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버튼을 손으로 살짝 누르고 있으면 렌즈 뚜껑이 자동으로 열리는 카메라가 신기했던지, 여행이라도 가면 저는 꼭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희 집 사진에는 흔치 않게도 아버지가 자주 등장하시죠. 초점이 나간 것은 물론이고 각도도 엉망이었지만,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브이자를 그리실 수 있었습니다. 동네 상가의 '미도사진관'에 필름 현상을 맡기고 두근거리던 시절, 제 눈높이가 아버지의 허벅지 즈음에 맞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이십여 년이 흘러 눈높이는 비슷해진 지 오래인데, 왜 요즘은 말 한마디도 힘들게만 느껴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