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 번 기타나 쳐볼까?'라는 말, 정말 자주 들립니다. 소리 이쁘고, 간단하고, 휴대 가능하며, 노래 반주도 기가 막히게 되는, 무엇보다 가장 대중적인 악기라서가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가끔 저에게 가르쳐달라는 요청도 들어옵니다. 항상 기쁜 마음으로 수락합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과정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 좋은 취미 같이 즐기면 더 좋으니까요. 덕분에 이래저래 지금까지 스물몇 명의 사람들과 부족하나마 사제의 연을 맺은 것 같습니다. 그중 절대다수가 군대 선후임들이었지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중에 아직까지 기타 치는 사람,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두 달 정도 지나면 다들 머쓱해하면서 기타의 ㄱ자도 안 꺼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 글은 기타가 왜 최고의 취미인지 역설하며 독려하는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간낭비 돈 낭비를 막아드리고자 '만약 여기에 해당한다면 기타 시작하지 마세요'라고 경고하는 글이죠. 기껏 정성 들여 기타도 구매했는데 한 달도 안 돼서 인테리어 소품이 돼버리거나 방구석에 처박히면 슬프니까요. 그럼 본격적으로 당신이 기타를 시작해선 안 될 이유, 시작해 보겠습니다.
1. 음악 별로 안 좋아해요
가장 빠르게 포기하는 케이스입니다. 제가 처음 누군가를 가르치게 되면 먼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인지부터 물어봅니다. 그 노래의 코드를 따서 직접 연주할 수 있도록 쉬운 코드로 바꿔주기 위해서죠. 제 입장에서도 배우는 사람이 신나서 배우는 게 재밌고, 최대한 흥미롭게 스타트를 끊어줘야 이 사람이 오래 기타를 칠 테니까요. 아무튼 이런 질문을 던졌는데 난 음악 안 좋아한다는 대답이 돌아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면 저도 물어봅니다. 그러면 기타 왜 치고 싶은 거냐고. 취미가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악기 하나는 다룰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서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이런 분들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절대 오래 못, 아니 안 치십니다. 조금 지나면 귀찮고, 완곡 연주는 소원하고, 무엇보다도 손가락 아파 죽겠거든요. 높은 확률로 진입장벽 낮은 다른 취미로 넘어가십니다. 하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취미를 위한 취미활동은 지속하기 힘들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반대로 음악에 죽고 못 사는, 이어폰 없이 외출하면 하루 종일 짜증 나고 결국에 싸구려 이어폰이라도 사게 되는 중증 음악 덕후라면 기타는 정말 최고의 취미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즐거움을 단계별로 더 크게 크게 느낄 수가 있어요. 듣기만 하던 기타 소리를 직접 내보는 거에서 1차로 신세계가 열립니다. 그러다 가사까지 다 외울 정도로 애정하는 노래를 직접 연주해봅니다. 사실 이 부분이 종류를 막론하고 악기로 느낄 수 있는 쾌감의 최고점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보통 한 마디 반 정도 연주하고 멈춰요. '와 개신기해'를 크게 외치고 입을 틀어막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그 정도로 신기하고 짜릿한 경험이에요. 이 글의 주제가 왜 함부로 기타 시작하면 안 될까이긴 하지만 좋은 취미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네요.
2. 손가락이 너무 아파요
6개의 현 중에서 가장 얇은 줄의 두께는 얼마일까요? 0.3mm입니다. 그렇게 얇은 금속 소재의 줄을 손가락 끝으로 꽉 누르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처음에는 정말 정말 아픕니다. 말 그대로 철사가 손에 파고드는 느낌이에요(실제로 그렇기도 하구요). 그 고통을 최소 열흘에서 넉넉잡고 한 달 정도는 그냥 참아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계속 치다 보면 굳은살이 배겨서 언제 그랬냐는 듯 고통이 싹 사라집니다. 그리고 단단해진 손가락 끝을 만지다 보면 일종의 훈장처럼 여겨져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즐겁자고 취미활동하는 건데, 이런 물리적인 고통을 감내하기가 쉽지 않죠. 여기서 탈락하시는 분들도 상당수입니다.
방법이 단 한 가지 있습니다. 줄이 부드럽고 장력이 약한 일렉기타나 클래식 기타를 치시면 됩니다. 하지만 보통 첫 시작을 일렉이나 클래식으로 하진 않죠. 가장 줄이 짱짱하고 손끝 아작내는 어쿠스틱으로 시작하는 게 정석이고, 그게 베스트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3. 그놈의 F코드
초보 기타리스트가 넘을 수 없는 마의 산, F코드입니다. 보통 한 달 정도 기타를 치다가 이제는 안 치신다는 분들이 있으면 넌지시 물어봅니다. 'F코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왜 여기서 좌절들을 하시나 설명을 드리자면 너무 길어지니까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초보가 배우는 코드 중에 유일하게 손아귀 힘이 필요한 코드입니다. A나 Em 같은 애들은 아픈 거 조금 참고 줄 두세 개를 손가락으로 꽉 눌러주면 소리가 이쁘장하게 나옵니다. 악바리인 친구들은 알려주자마자 이쁘게 소리가 나는 경우도 종종 봤구요. 근데 F코드는 그런 사람 한 명도 못 봤습니다. 손아귀는 아프지, 그 와중에 손 끝은 찢어질 것 같지, 소리는 하나도 안 나지. 그렇게 외로이 며칠 끙끙대다 보면 짜증이 솟구칩니다. 이 부분 관련해선 딱히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없어요. 밥 먹듯이 나오는 코드인데다가 실력이 늘면 이런 코드가 수두룩닥상이기 때문에 안 배우고 넘어갈 수가 없는 코드입니다. 그저 근성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취미에 이렇게 열정을 쏟는 분이 많이 없으시기 때문에 여기서 많이들 그만두십니다.
4. 노래하기가 민망해요
핑거스타일, 솔로잉, 루프 머신을 활용한 연주 등등 다양한 연주 방법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기타는 반주용 악기입니다. 영화나 TV에서 기타가 정말 멋지다는 걸 느낀 장면을 생각해보세요. '원스'의 글렌 한사드, '비긴 어게인'의 키이라 나이틀리, 혹은 장범준이나 로이킴, 자우림의 김윤아 등등. 기타만 연주하시지는 않죠? 그들의 모습에 반해 기타를 배운다면, 먼저 연주를 배우고 노래를 함께 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엄청나게 민망합니다. 분명 내 방에서 혼자 부르는 것일 뿐인데, 노래방이 아닌 곳에서 목소리를 내는 경험 자체를 하기가 힘들잖아요. 첫 음을 내는 순간 몰려오는 민망함에 손도 멈추고 목소리도 멈추는 게 당연합니다. 근데 기타 반주에 마이크 없이 노래 부르는 일, 굉장히 근사합니다. 스피커 소리에 귀가 왱왱 울리지도 않죠. 들리는 건 기타 소리랑 코드 바꾸면서 나는 근사한 줄 긁는 소리뿐입니다. 거기에 작게나마 내 목소리가 얹히는 순간은 정말 각별합니다. 어느새 민망함은 사라지고 한음 한음 따라가다 보면 한 곡을 다 부르게 되죠. 왠지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립니다. 그렇게 혼자만의 공연을 해 보면 기타를 놓기가 힘들어집니다
읽으시다 보면 '뭐 어쩌라는 거야?'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시작하지 말라고 했다가 최고의 취미라고 칭찬하고, 손가락 아파 죽을 것 같을 거라고 겁주다가 황홀한 경험 할 수 있다고 영업하고. 분명 이 글을 시작할 땐 안 좋은 얘기만 팍팍 써놓아서 돈 낭비 시간 낭비를 막아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글을 적다 보니 기타에 대한 제 덕심이 묻어났네요. 이렇게 행복한 취미 무작정 안 좋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이니까요.
아무튼 여기까지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이 어떤 생각을 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 고통스러운 과정이 수반됨을 아신 후에도 너무나 기타가 쳐보고 싶고, 아직 열정이 남아있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다음 글에는 기타를 배우기로 마음먹은 직후 해야 할 일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기타는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뭘 사야 하는지, 독학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제가 독학하면서 겪었던 어려움들을 피해 가실 수 있도록 말이죠.
tjlim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