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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파네마 Feb 03. 2023

#6 결국 또 파리에 와버렸다

1월 24일 밤. 프랑스 파리 키리아드 베르시 호텔에서

애증의 파리. 내가 가장 사랑했고 한때는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라도 비집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결국은 징글징글해져 버린 상태로 도망쳐버린 이 도시에 4년 만에 찾아왔다.


2019년 11월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두고 샹젤리제와 갤러리라파예트에 온갖 금빛 장식이 가득하던 그때, 바닥 난방이 되지 않아 냉랭한 유럽의 한기는 빨간 천막의 카페에서 계피향이 나는 따뜻한 뱅쇼로 녹이면 된다는 걸 이제 갓 배웠던 그때, 나는 이민가방 두 개에 온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샤를드골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멀어지는 파리를 바라보며 나는 ‘꼭 돌아오겠다’ 다짐했지만 그 덧없는 기약은 일 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고 삼 년이 지나도 이루지 못했다.



원치 않은 시기에 보다 서둘러 떠났던 만큼 다음에 이 땅을 밟을 때는 많은 것을 철저히 준비해서 돌아오겠다고,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얻어 오겠다고 결심했지만 결국 나는 수많은 실패한 도피자들이 그러하듯이 한국으로 돌아와 나를 들끓게 하던 타국에서의 열정을 잊고 집과 가족과 친구와 직장이 있는 고국의 안락함 속에 꽁꽁 숨었다.


이따금씩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좋아하는 것을 향해 기를 쓰고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괜히 위축되면서도 다시는 같은 선택을 할 용기가 없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프랑스 은행계좌와 핸드폰 계정을 해지하지 못하고 3년이나 미련하게 요금을 내던 것조차 실낱같은 끈이라도 연결해두고 싶어서였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떠날 결심은 하지 못했다.

코로나로 막혀있던 국경 제한이 차츰 풀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잠깐이라도 그곳에 발을 붙이면, 그토록 나를 매료시켰던 에펠탑과 센 강을 한 번이라도 다시 본다면 모든 게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고 미루던 나는 돌연 알 수 없는 충동이 일어 회사에서 8일간의 휴가를 얻자마자 유럽행 비행기를 끊어버렸다. 이제 다시 떠나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는지, 혹은 또다시 벗어나야만 했던 무언가가 있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결국은 떠나봐야만 알 일이었다.


24일. 스위스에서 스카이다이빙으로 짜릿한 희열을 맛본 나는 취리히 공항에서 저녁 8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밤 10시 무렵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악명 높은 프랑스의 치안에도 불구하고 파리에서만큼은 늦은 밤에도 별문제 없이 숙소까지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요상하고도 위험한 자신감이 있었지만 막상 커다란 짐을 끌고 파리에 도착하니 그저 빨리 숙소로 돌아가 눈을 붙이고 싶을 뿐이었다. 때마침 입국장으로 나오자마자 한 택시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벤치에 등을 굽히고 쪼그려 앉아있던 그는 캐리어를 이고 낑낑 거리며 걸어오는 나를 보고 화색이 돌았다.


“Where are you going? Taxi?" (어디 가니? 택시를 탈 거니?)

"Bah oui. Mais je suis en train de chercher un Uber." (맞아. 하지만 난 우버로 찾고 있어)


영어로 물어오는 기사에게 프랑스어로 답변을 했다. 호락호락한 관광객으로 보이지 않으려는 심산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사실 한시라도 빨리 케케묵은 나의 프랑스어를 이곳 프랑스에 도착해 자유롭게 꺼내 쓰고 싶었다. 기사는 80유로를 내면 베르시까지 있는 호텔로 가주겠다고 제안을 했고 나는 60유로를 질렀다. 잠깐의 협상 끝에 우리는 70유로로 딜을 봤다.


공항 밖으로 나가 검은색 택시를 타고 샤를드골을 빠져나갔다. 15분 남짓 달리니 5~6층 높이의 프랑스풍 건물들과 빨간색 천막의 카페, 노란색 가로등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부터 마음이 울컥할 것 같았지만 내일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고 나면 얼마나 더 큰 감정들이 몰아닥칠지 모르니 아직은 일렁이는 그 감정을 적당한 선에서 눌러내기로 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밤 11시. 체크인을 마치고 들어오니 11시 반. 생각해 보니 공복 상태로 벌써 한참이 지난 터였다. 배를 채우면 좋을 텐데 주변의 카페테리아들은 이미 문을 닫은 듯싶었다. 그때 마침 머릿속에 한 가지 음식이 떠올랐다. 프랑스 유학 시절 종종 배달로 시켜 먹던 피자헛의 모짜렐라 브레드스틱. 치즈크러스트 피자의 엣지 부분만 모아놓은 것 같은 애피타이저인데 한국에는 없고 프랑스 피자헛에만 판매하는 메뉴로 유학생시절 나가긴 귀찮은데 맛난 게 땡길 때마다 틈틈이 시켜 먹던 메뉴였다.


3년 만에 우버이츠 어플을 설치해서 피자헛을 검색하니 호텔 근처에 아직 열려있는 매장이 있었다. ‘와 이게 아직 있다니’ 메뉴도 소스도 그때 먹던 그대로 설정해서 주문을 완료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머리를 말리니 전화벨이 울렸다. 로비로 내려가 받아온 박스를 열었더니 익숙한 비주얼에 냄새를 가진 모짜렐라 브레드스틱이 눈앞에 있었다. 치즈가 쭉 늘어나게끔 한 조각을 뜯어 바비큐 소스에 찍어 먹었다. 어제도 그제도 먹었던 것처럼 너무나도 익숙한 맛이었다. 면세점에서 산 피노누아 와인 한 병을 뜯어 호텔에 있던 종이컵에 따라 마셨다. 고소한 치즈와 향긋한 와인을 타고 사나흘 간 누적된 여행의 피로가 사르르 풀리기 시작했다.


스위스에서의 1부 여행이 마무리되고 프랑스 파리에서의 2부가 막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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