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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 Jan 02. 2020

담임의 마지막 편지


학기말이 되면 갑자기 한꺼번에 몰려온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마음이 분주해집니다. 

조급한 마음에 행여나 중요한 것을 놓치고 지나갈까 걱정입니다.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납니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난다는 설렘보다 갑작스레 좋은 선생님과 이별한 뒤의 아쉬움과 속상함이 아이들과 학부모님과의 상담에서 느껴졌었습니다. 

한 달 정도 교실의 분위기를 느끼고 저에게 들어왔던 마음은‘내가 이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사실 전 조금 다른 마음으로 이 교실에 처음 들어섰습니다. 

교실에 오는 그 순간까지 많은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녔습니다. 

학교에 오면 아무도 자기와 놀아주지 않으려 하고 선생님에게조차 경계의 눈초리로 감시받는 듯한 갑갑함과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그 아이에 대한 고민과 그 아이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까? 

아이들의 관계 회복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지만 복직을 하고 제가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하는 업무는 한 아이의 강제전학을 위한 학적서류를 정리하는 일이었고 제가 고민하고 다짐했던 생각들은 대부분 소용없게 되었습니다. 

교사로서 더 비참했던 것은 저와 어떤 관계도 맺지 않은 그 아이에 대한 미움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미움이 어디서부터 나에게 흘러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와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은 한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남아있으면 저와 아이들을 불편하게 할 아이라는 생각이 그 미움을 정당화하는 것도 교사로서 부끄러운 생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반, 우리 학교 누구에게도 이런 제 감정을 드러낼 수도 없었고, 드러내서도 안 되었습니다. 그런 연유로‘이런 내가 이 아이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나서 한 아이가 집으로 가기 전에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죽으면 안 돼요. 선생님은 천사같이 착하니까 오래오래 살아야 해요.”

눈물이 많아 속상한 일이 있으면 자주 울어서 달래준다고 그냥 안아준 남자아이였습니다. 

어떤 날은 편지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어떤 날은 먹을 것을 가져와서 저에게 주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자주 저한테 안기는 남자아이가 있어서 장난스레 물어보았습니다. 

“너 선생님이 그렇게 좋냐?”

 “네!”

 “왜?”

“그냥 좋아요.” 그렇게 아이들을 안고 있으면 뜨거운 것이 올라옵니다. 

저는 제가 아이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모습이 부족하면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서로가 부족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그냥 지금 마음 가는 대로 표현하는 아이들의 말이...  위로하고 싶지만 내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머뭇거리는 저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내가 위로할 자격이 있을까?’멈칫하는 저를 아이들이 되려 토닥여줬습니다. 

아이들의 그 위로에 저도 용기를 내어 아이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이번 알림장이 3학년의 마지막 알림장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이별은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매년 아이들과 명시된 이별을 하는 직업이지만 어떤 이별이든 그 개인에게는 가장 아픈 것입니다. 

설령 그것을 마음으로 준비한다고 한들 타인의 이별을 흘려듣는 것과는 전혀 다른 나의 이별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해준 것이 없기도 했고 만남이 그만큼 짧았기 때문인지 헤어지는 시간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그러다 문득 한 여행지에서 투어를 도와준 현지 가이드 생각이 났습니다. 

저희 가족의 하루 호핑투어를 정말 즐겁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 그 가이드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팁을 많이 주고 싶었는데 가진 건 5달러밖에 없었습니다. 

가진 돈을 다 팁으로 주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도.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끔씩 그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인데도 자녀 다섯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얘기도 마음에 들어왔나 봅니다.  

그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모습에 저를 돌아보며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그의 삶이 나에게 들어왔던 것이겠지요. 그래서 제가 감사의 표시를 못한 게 기억에 남아 계속 미안한 감정으로 그를 계속 기억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아이들에게도 이런 감정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더 잘해주고 싶었는데 못 해준 것이 생각나 아쉬운 마음 말입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더 위로받고 사랑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이 더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학부모님께도 죄송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든 일상이 학부모님의 모든 행복과 맞닿아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제는 학원에 안 가면 불안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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