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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 Dec 27. 2022

학부모에게 보내는 담임의 마지막 편지

지금,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노력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안녕하십니까? 

살 떨리게 하는 추위가 연일 이어지니 교실 문을 열고 등교하는 아이들의 볼에도 빨간 꽃이 핍니다. 

이 추운 날에도 따뜻한 집을 나와 학교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아이들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사실 기적 같은 일이지요.

 이 나이엔 학교로 가는 모든 길엔 수많은 유혹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학교로 온다는 것,  어른들이 잘 생각하지 못하는 참 놀라운 일입니다. 

생각해보면 부끄럽지만 교사인 저 조차도 학교에 가기 싫은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느적느적 학교에 오는 아이들이 정상적이고 학교에 일찍 와서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이 위대한 아이들이지요. 

그 위대한 아이들에게 학교에 잘 왔다고, 학교에 오고 싶지 않은 수많은 이유들을 떨쳐내고 학교에 와줘서 고마웠다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치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른들이 함께 있는 회사에서조차 자기가 노력하는 것이 더 크게 보이지요. 

자신의 열심과 노력에만 매몰되면 다른 동료의 노력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어른들의 삶에서조차 그러한데, 그 대상이 아이들이라면 어른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의 노력은 얼마나 하찮게 느껴질까요. 

10까지의 덧셈이 뭐라고,

고작 가지고 놀던 장난감 정리하는 게 뭐라고,

한글 자음과 모음 제대로 쓰는 게 뭐라고,

자기 책상 주변 청소하는 게 뭐라고, 

급식받아서 성큼성큼 걸어서 자리에 앉아 먹는 것이 뭐라고,

우리 어른들이 생각하는 이런 사소한 것들에 아이들이 들이는 노력은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그 나이에 해야만 하는 가장 힘든 노력이 모여 지금의 어른이 되어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이들은 지금 가장 위대한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고, 그 노력을 존중받아야 하고, 위로받아야 합니다. 


 우리끼리 쓰담쓰담 마지막 편지입니다. 

매년 한 번씩 이별을 겪는 직업이라 둔감해 질만도 한데 이별은 개별적이지요. 

전체 아이들과의 이별은 학년을 올려 보낸다는 느낌이 들지만 한 사람씩 떠올리다 보면 1년이란 시간이 그리 짧지 않아서 정이 많이 들었나 봅니다. 

떠날 때가 되니 마음이 몰랑몰랑해집니다.

처음 무섭고 두려운 눈빛으로 생전 처음 만나는 남자 선생님을 보던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학교란 곳에 온 것도 두려운 일인데 처음 겪는 남자 교사까지 적응해야 하니 아이들은 얼마나 두렵고 걱정이었을까요. 그래서 제가 가장 먼저 다짐했던 것은 아이들의 이름을 빨리 외워서 불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름을 불러주며 아이들과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고 아이들도 마음을 열고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쉽게 마음을 열고 제 짓궂은 장난도 잘 받아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제 부족한 가르침을 다음 학년 선생님께서 지혜롭게 채워주시길 기도하고 바랍니다. 

소중한 아이들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연말을 보내시고 새해에 더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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