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도 없이 내리는 비에 마음도 괜스레 다운되는 날이 이어집니다. 비가 온다고 비를 맞으며 뛰어다니고 홀딱 젖어서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다 감기에 걸릴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즐기는 모습이 부러운 마음도 생깁니다. 어른은 하기 힘든 젊은 날의 특권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1학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처음 학기를 시작할 땐 길어 보이는 시간이지만 지나고 돌아보니 반이나 지나가 버렸습니다. 아이들과 1학기를 정리하며 이야기하다가 같이 웃기도 합니다.
항상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그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지요. 유치원에 갈 때는 유치원 안 가고 놀 때가 좋았고, 1학년 때는 시험 안 보는 유치원 때가 좋았고, 3학년 때는 빨리 끝나는 2학년이 좋았고…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면 우리 인생은 계속 좋았구나...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미래에 대해 막연한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현재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에 집중하며 사는 아이들이 행복한 것일 테지요.
며칠 전 유치원 교사인 아내와 대화를 나누다가 벼룩시장을 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인 벼룩시장을 하는 것을 많이 기대하고 설레곤 하는데 막상 하면 자기 물건도 안 챙기는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선생님께 받은 돈으로 물건은 안 사고 허둥지둥하며 먹을 것에 줄을 길게 서며 시간이 모자라서 아무것도 못 사는 아이들이 많다고요. 그러면 선생님들은 아이들 뒤를 쫓아다니면서 가방이 비어있는 아이들이 좋아할 물건을 이것저것 넣어준다고요. 나중에 비어있는 가방 보고 속상할 아이들이 걱정되는 것이지요. 아이들은 그것도 모르고 집에 가면 가방을 열어 보곤 자기가 안 산 게 있다고 신기해합니다. 선생님과 부모님만 아는 사실이지요.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의 삶이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도움을 준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 사람이 부모님이었고, 친구였고, 선생님이었고, 동료였고, 제가 지금까지 가르친 아이들이지 않았을까?’
제가 이룬 것이 저만의 힘으로 만들어낸 성취가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게 도움을 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오니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열심히 사는 동안은 나의 열심만 보이고 내 수고가 가장 커 보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뒤로 멘 제 가방 속에 선물들을 몰래 넣어 주고 있는 줄 모르고 지내 온 시간이 참 오래된 것 같습니다.
‘사람’이라는 말은 ‘삶’과 ‘앎’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생겨난 말이라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소싯적에는 사람은 아는 만큼 살아야 한다고 해석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삶을 살아가며 알아가게(깨닫게) 되는 것이 많아지는 존재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과 안전하고 즐거운 여름방학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