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믿을 게 필요해.” 영화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에 나온 대사다. 그렇다. 사람들은 무언갈 믿으며 살아간다. 꼭 대단한 걸 모셔야만 믿음이 되는 건 아니다. 출근 전 오늘의 날씨를 보며 우산을 챙길지 결정하는 것도 무언갈 믿는 거다. 비 소식을 알리는 정보만큼은 나를 기만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어제보다 나은 경기력에 대한 희망을 입안에서 굴리는 맨유 팬에게도, 자기 세상을 지키기 위해 광장으로 모여든 이들에게도 비슷한 게 깔려있다.
유일신의 자리를 자본으로 대체한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 줄 무언가를 위해 쇼핑센터로 향한다. 세계의 중심이 ‘나’로부터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확신시킬 게시물과 뉴스 하고만 눈을 맞춘다. 옳고 그름과 별개로 사람들은 여전히 무언갈 믿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 어디로든 향한다.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고추가 매운 건 크기가 아닌 습도가 결정하지만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재생산되는 건 그걸 믿어야만 속이 편한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사실이라서 믿는 게 아니라 믿으면 사실이 되는 세상이니까.
믿음은 희망을 전제로 하기 마련이다. 어쩌면 믿는다는 건 인간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합리적인 방식일지 모른다. 각자가 원하는 청사진을 그리고선 언젠가 그날이 도래하리란 상상은 마주한 현실이 주는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니까.
언젠가 관악산에 오르다가 마주친 등산객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연주대에 도착하려면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돌아오는 답은 간단했다. “거의 다 왔어요.” 먼저 다녀온 이들의 말에는 기본적으로 신뢰가 깔린다. 그 이유도 간단하다. 먼저 다녀왔으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그가 정상에 다녀왔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가 연주대 정상에서 위치 태그를 걸었다면 모를까(위치 태그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긴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난 그 사람의 말을 믿기로 했다. 믿어야 했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프 마라톤을 뛸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잘하면 티가 난다. 아무리 작은 페이지의 한구석이라도.” 믿을 게 필요해 책을 펼친 어느 날, 먼저 도달한 사람의 말을 가슴에 옮겨 적었다. 저 말은 한동안 카페인처럼 몸속 열정을 원활하게 만들었고 덕분에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읽어주겠지 하는 마음. ‘병 속에 편지를 넣어 바다에 던지는 심정으로’ 말이다.
한참을 가도 정상은 보이질 않는데 지나가는 등산객들은 얼마 안 남았으니 힘을 내라고 말했다. 그쯤부터 의구심이 피어올랐던 것 같다. 사실 정상까진 아직도 한참 남았는데 젊은이가 워낙 힘들어하니 그가 필요로 하는 말을 해주는 게 아닌가 하는.
매일 한 번씩은 웅얼거린 책 속 구절도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불확실한 상황에 놓였던 저자에게 가장 필요했던 혹은 그가 정말 믿고 싶어 했던 말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토니 파커가 미스테리오에게 이디스를 건넸을 때처럼 말이다.
노력하면 티가 나기 마련이다. 믿을게 간절한 요즘 내가 붙잡고 사는 말이다. 잘하는 부류와는 거리가 먼 내겐 이 말이 좀 더 현실적이기도 하고. 어떻게든 변하고자 발버둥 치는 사람은 분명 티가 날 거다. 그렇게 살다 보면 각자가 바라는 모습에는 조금이라도 가까워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