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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ee Yang May 03. 2020

인간은 이렇게도 슬픈데, 5월은 너무 푸릅니다

5월을 수식하는 단어들은 대체로 따뜻하다. 살갗에 닿는 햇빛은 따스하고 바람에 흩날리는 꽃 향기는 덩달아 마음을 울렁인다. 세상의 모든 게 반짝이고 푸르르며 함께일 것만 같은 달. 그런 5월을 다른 온도로 체감하는 낱말이 있다. ‘스프링 피크(Spring Peak),’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엔 매번 자살률이 정점에 이른다는 뜻이다.



스무살이 되면, 으로 시작하는 갖가지 약속들로 새끼손가락을 걸어온 친구가 있었다. 열일곱을 기점으로 잠시간 멀리 떨어지게 되었지만, 무엇이 자신을 망가뜨리려 하던 허리를 꼿꼿하게 피고 살아갈 삶이니 그다지 걱정도 없었다. 그렇게 무던히 함께 자라나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겨우 스물을 넘기지 못하고 스스로 사라지길 택했다. 그 소식에 무너져 내렸던 오월의 어느 날은 유독 햇빛이 찬란히 부서졌고 나뭇잎이 푸르게 넘실거렸다.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죽음의 원인을 찾아내기 바빴다. 웅성거림 속 오가는 추측의 말들은 그 아이에게 내재된, 혹은 내재되었다고 짐작한 문제를 쉽사리 열거했다. 책임의 소재엔 오로지 그 아이만 남겨졌고 우리는 없었다. 스프링 피크의 배경을 두고 전문가들은 종종 ‘봄철에 자살이 급증하는 이유는 햇볕의 증가와 관련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만약 그에게 아주 작은 정서적 문제나 비관이 있었을지라도, 버텨내기에 햇살은 그저 눈부시고 오월은 너무 푸르렀던 것이었을지 모른다. 거기에 비추어진 자신의 어둡고 초라한 모습은 유독 외로워 보였을 텐데, 우린 모두 각자의 햇살을 즐기기 바빴다. 그래서 들여다보지 못했고, 알아차리지 못했음에도 왜 갑자기 그랬을까, 묻는 소리만 덩그러니 남았다.



어김없이 또 5월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부디 봄바람에 한껏 취하기보다 날씨가 좋다는 핑계로 한 번씩 더 들여다볼 수 있길, 그래서 누군가 스프링 피크라는 슬픈 통계에 위안을 얻기 전에 기댈 곳을 내어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럭저럭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슬픔을 감당하기엔 너무 푸르른 달이니까. 당장 피부에 닿는 계절의 따스함에 찬미를 던지기보다 여기에 닿기까지 견뎌냈을 언 땅과 차가운 바람의 시간들도 함께 가늠하며, 위태로운 경계에 서있는 당신이 홀로 잘못된 것도 나약한 것도 아니라고 말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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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人間がこんなに哀しいのに,主よ,海があまりに碧いのです。(인간은 이렇게도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 푸릅니다. | 엔도 슈사쿠, <깊은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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