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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멘트 Oct 22. 2023

[와인] 오가닉 와인의 뒷이야기

그리고 와인시장이 직면한 문제들

오가닉 와인을 생산한다는 와이너리들에 방문해 보면 마치 트레이드 마크 같은 이미지들이 있다. 드넓게 펼쳐진 포도밭 사이로 양들이 무리 지어 다니며 나무 사이에 자란 풀을 평화롭게 뜯고 있고, 자전거들이 중간중간 멋스럽게 비스듬히 세워져 있으며 근처 호수에서는 오리들이 꽥꽥 거리는 풍경 같은 것들이다. 살충제 같은 화학약품 대신 귀여운 동물들을 통해 잡초 관리를 하다니,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가 또 있을까. 

글로벌 식품업계에서 상품의 종류와 크게 상관없이 매출과 직결된 키워드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오가닉 #지속가능한 #친환경적인 #공정무역 #비건 같은 단어들인데, 이 인증마크를 달고 나온 상품들은 조금 더 비싸더라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윤리적인 소비를 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생산자들에게 단연 매력적인 옵션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글로벌 오가닉 푸드시장은 매년 커지고 있고 2023년부터 향후 약 10년 동안 11% 이상의 성장률이 예상되는 작지 않은 시장이다. 


그러면 무엇이 Organic Wine인가?

일반적으로 오가닉 와인은 살충제, 살균제, 제초제등 화학약품의 사용을 제한해서 생산한 와인을 말한다. 그러나 정말로 유기농 농법을 통해 친환경적으로 만든 와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정의하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오가닉 와인의 정의가 국가별, 상황별 제각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오가닉 와인이라고 판매할 수 있기 위해서는 오가닉으로 인증받은 원료만 사용해야 하고, 아황산염을 사용하지 않아야 하며, 인공 비료를 사용하면 안 되지만 유럽에서는 아황산염을 쓰는 게 허용되어 있다. 또 '오가닉 와인'과 '오가닉(유기농) 포도를 쓴 와인'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거기에다 오가닉이나 비건 인증마크를 받고 유지하는 것 자체가 비용과 여러 가지 귀찮은 절차들이 요구되는 일이기에 규모가 어느 정도 갖춰진 큰 와이너리가 아닌 경우에는 실제로는 오가닉 와인이나 비건 와인이면서도 인증마크가 없는 와인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오가닉 와인은 친환경적 와인일까? 

이것도 답을 내리기가 쉽지는 않다. 물론 화학약품을 일정 부분 제한하는 것은 포도가 자라나는 토지가 건강하게 유지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오가닉 와인은 일반 와인보다 20~50%가량 인공비료 사용량이 낮다) 와인생산의 생애주기평가(LCA: 원물부터 완제품의 전 과정 동안 어떠한 상품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방법)에 따르면 놀랍게도 오가닉 와인 생산 시 더 잦은 빈도로 사용되는 트랙터와 일반 와인밭보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생산방법 등의 원인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봤을 때 오가닉 와인이 온실가스를 더 내뿜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같은 논리로, 와인밭이 클수록 톤당 탄소배출이 적고, 작을수록 효율성이 감소로 인해 톤당 탄소배출양은 증가한다.

와인생산 주기 내 각 단계별 탄소배출 영향도

각 실험마다 조건과 모수등의 차이로 인해 단순하게 결론을 낼 수는 없지만 여러 실험들에서 공통적으로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요소 두 가지는 무거운 와인병의 사용으로 수출 시 유발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문제와 포도 생산 시 사용되는 중장비 기계, 에너지 사용등의 문제다. 사실 생산단 보다 유통과정에서의 탄소배출이 거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와인을 고를 때 사용하는 몇 가지 기준들이 있다. 일단 라벨의 디자인이 눈에 띄고, 빈티지가 적당히 오래되었으며, 스크류캡 보다는 코르크가 있어야 하고, 병이 두껍고 무게감이 있어야 왜인지 모르게 더 좋아 보인다. 그리고는 병 아래 부분이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는 데다가 오가닉 혹은 비건마크가 있다면? 합격이다. 그리고 생산자들은 이러한 소비자의 기준에 부합하는 상품을 생산한다.  


하지만 사실 와인병은 햇빛만 차단할 수 있다면, 무게나 재질은 와인의 맛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단순히 무게감 있는 유리병이 좋아 보인다는 이미지 때문에 저 먼 나라에서 배를 타고 깨지지 않고 오기 위해서 배출한 불필요한 이산화탄소와 포장재 쓰레기들은 소비자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가벼운 패키지에 담긴 일반 와인과 무거운 유리병에 담긴 오가닉 와인이 있다면 그 둘 중에 무엇이 더 친환경적인 와인일까? 기후환경이 불리한 곳에서 와인재배를 하느라 포도 온도 유지를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쓴 오가닉 와인과 포도가 자라기 좋은 기후에서 아무런 온도유지 기계를 쓰지 않고 재배한 일반 와인이 있다면 어떤 와인이 더 친환경적인 와인일까? 와인뿐만이 아니라, 모든 그럴듯해 보이는 인증마크 뒤에는 무조건 그 물건을 집어서 장바구니에 넣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이 있다. 


재활용하기에도 용이한 알루미늄 캔와인


최근 와인 생산자들이 직면한 문제들

지난 8월 프랑스 정부는 이미 생산된 와인을 폐기하는데 2억 유로(약 2800억)의 예산을 배정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와인시장은 완전한 포화시장인 데다가 젊은 세대들은 와인보다는 칵테일이나 맥주처럼 저도수 알코올음료를 더 선호하는 소비패턴을 보이고 있고, 오랜 시간 동안 유럽와인의 중요시장이었던 중국에서도 직접 와인을 생산해 수입량도 줄어들면서 가격이 폭락을 한 것이다. 와인밭을 갈아엎고 다른 경작지로 바꾸는 농가에는 지원금을 받게 된다. 중국에서 지난 21년 호주산 와인에 보복성 관세를 책정한 이후 수출길이 막힌 호주에서도 와인재고가 엄청나게 쌓이고 있다. 


기후변화 문제도 있다. 칠레의 경우에는 벌써 추운 파타고니아 지역에서 와인을 재배하고 있으며 극심한 가뭄과 기온상승은 전통적인 와인벨리를 점차 아래쪽으로 이동시킬 전망이다. 포도나무가 다른 작물보다 물을 적게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하나의 작물 생산을 위해 토지와 관개수로를 이용하는 것은 생물다양성에 당연히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고도로 포화된 시장은 시장의 원리에 의해 다시 격변기를 겪고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겠지만 앞으로 와인 시장은 어떻게 흘러갈까. 와인은 단순한 식품가공품이라고만 보기에는 조금 어렵다. 가격과 품질, 맛을 넘어 한 와이너리의 전통과 철학을 담은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생산자는 단순히 그럴싸해 보이는 인증마크만을 내세우기보다는 본인의 아이덴티티와 상품을 얼마나 더 투명하고 진정성 있게 소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도 더 현명해져야 한다. 내가 어떤 기준을 갖고 돈을 지불할 것인지는 넓게 보면 시장의 패턴을 바꾸고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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