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멘트 Oct 26. 2023

21세기 도시에서 먹고산다는 것

'먹고' '사는' 이야기

흔히들 '먹고사는 일'이라는 말을 한다. 어떤 이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내가 단순히 먹고살려고 일을 하는 줄 아냐'라고도 한다. 당신이 먹기 위해 살든, 그렇지 않든, 생명을 유지하며 살기 위해서 먹는 일은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인류와 생명들은 모두 '먹고 산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에 이렇게 음식이 늘 풍부하다 못해 넘쳤던 때는 인류 역사 전체에서 보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세기와 20세기의 큰 전쟁들을 거치며 통조림 생산이나 냉장시스템같이 식품을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이 발명 및 상업화되면서부터 우리가 먹는 음식에도 산업화가 시작했다. 우리가 매일 수시로 우리의 입안으로 넣는 재화가 산업화가 되었다는 사실은 애석하게도 그리 대수롭지 않게 들리겠지만 이것은 그리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식품의 산업화는 이런 기괴한 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며칠 전 이곳에서 한 과일 가공품을 제조 및 수출하는 한 업체와 미팅을 했다. 유럽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전 세계에서 과일원료와 설탕등 부재료를 사서 잼, 아이스크림, 쥬스등으로 가공한 뒤 수출하는 업체인데 영업담당자는 여기에서 만들고 있는 과일 가공품에 사용되는 초콜릿이 모두 벨기에에서 가져온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이 상품이 얼마나 고소득 계층을 위한 프리미엄 상품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초콜릿을 소비하는 우리 같은 일반 소비자들은 벨기에나 스위스에서 가공된 초콜릿을 설레는 마음으로 소비하지만, 이런 예쁜 초콜릿이 우리의 손에 쥐어지기 전의 과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철저한 중간 수출자 위주 시장에서 아무런 협상능력이 없는 수많은 카카오 생산자들의 심각한 노동환경과 아동노동 문제등이 불거져 2천 년대 초중반 세계적으로 공정무역 초콜릿이라는 붐까지 일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직까지도 하루 1달러를 웃돌게 벌며 끔찍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동시에 초콜릿의 최종 소비자 가격은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기에 카카오 원물가격이 떨어질 때마다 초콜릿을 반제품으로 가공해서 판매하는 몇 안 되는 다국적 대기업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인다. 


초콜릿은 중세시대 방식으로 아프리카에서 수확된 카카오에서 시작해 가장 현대적인 가공으로 유럽에서 마무리된다

글로벌 식품 유통 MD로 수년간 이 업계에서 일을 해오며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낄 때도 있지만 벨기에 초콜릿을 쓴다는 프리미엄 상품의 수출가를 보고 거리낌 없이 기계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상품의 예상 가격과 회사의 중간 마진을 계산하고 있는 스스로를 자각할 때는 내가 맞닥뜨린 모순과 시장 구조의 위선에 마음 한편이 뻐근해진다. 이건 너무 순진하거나 혹은 위험한 반자본주의적인 생각인 걸까.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국가와 도시의 규모와는 크게 상관없이 대부분 대형(혹은 중소형)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대형 온라인 플랫폼에서 배달을 시키는 것이 우리가 식료품을 얻는 거의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이곳에는 단순한 생수부터 시작해서 온갖 다양한 종류의 식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각기 나름대로의 마케팅요소를 내세우며 매력적인 포장지 안에 들어가 있는 상품들이 내게 오기 전까지 이 식품이 거친 여정을 소비자는 모두 알지 못한다. 모든 식품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곡물이나 축산같이 원물단으로 갈수록 특히 이 시장은 흡사 마피아나 카르텔 조직과 비슷한 모양새를 띄는데,  고질적인 문제들은 기업들과 로비스트 같은 중간 주체들, 정부기관등이 너무나 조직적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근본적인 해결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매일 일상을 살아가기도 바쁜 현대인들이 오늘 나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의 모든 유통과정을 조사할 수는 없을뿐더러, 아예 소비를 하지 않기도 어렵겠지만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또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그래서 21세기 현대 도시에 산다는 것은 개인의 신념과는 무관하게 누구나 어느 정도는 이렇게 불공정하고 부도덕하게 짜인 이 시장구조에 동참하도록 강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개인이 이 사회 체제 안에서 일반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을 구매하는 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소비활동이 의도치 않게 소수의 주체가 대부분의 이익을 가져가는 시장구조를 강화시키고, 건강에 해로운 각종 화학원료와 기만적인 마케팅으로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회사들의 배를 불리고, 그리고 소비 후 쉽게 버려지는 플라스틱과 일회용 용기들이 나를 환경오염의 주역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 개인이 쓰레기를 생산하려는 의도가 없었더라도 내가 소비해야 하는 먹거리가 모두 플라스틱 패킹이 되어 있다면? 끊임없이 쓰레기를 생산해 내고 있는 내가 느끼는 죄책감은 내가 소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몫이 된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중 포장재가 차지하는 비율 (출처: 그린피스)


시장의 근본적인 구조가 선순환이 되려면 어쩔 수 없이 자본력을 가진 주체들이 움직여야 하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산업화된 시장에서 공급은 수요에 따라 움직이고 그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와 같은 일반소비자들이니까. 그래서 어떻게 보면 불공정한 구조의 변화는 우리 같은 개인으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소비자의 눈속임을 하는 기업들의 행태를 인지하려는 노력과 반대로 화려한 마케팅을 하지 못하더라도 사회와 자연의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는 좋은 기업을 찾아내려는 시도, 그리고 내 몸에 어떤 것을 내가 넣고 있는지를 귀찮더라도 찾아보고 공부하려는 자세, 내가 소비하는 것은 식품자체뿐만 아니라 그 식품을 감싸고 있는 포장재까지 포함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음식은 땅에서 비롯된다. 대형 마트의 매대가 아니라. 이 단순한 사실이 이렇게나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니, 이번주말에는 허브 화분이라도 하나 사서 내 손으로 직접 키워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와인] 오가닉 와인의 뒷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