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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Oct 09. 2020

꿈에서 만나.

꿈에서는 신나게 떠나자.

하고 싶은 놀이



일주일에 한 번 다음 주에 어떤 놀이를 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눈다. (이전 누리과정은 교사가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교육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면 올해 개정된 누리과정은 교사는 지원을 할 뿐 아이가 주도적으로 놀이를 계획, 선택하고 진행하도록 하는 방식이 큰 변화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음 주 지원 계획을 세우는데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인형 만들고 싶어요."

"훌라후프 하고 싶어요."

"그림 그리고 싶어요."

"자동차 만들고 싶어요."

"팽이 돌리고 싶어요."

이야기를 듣고 서로 의견을 조율하여 어떤 놀이를 할 것인지 정한다. 그렇게 고만고만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을 때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저는 현장학습 가고 싶어요.


현장학습... 버스 타고 다 같이 떠나는 여행 같은 현장학습이란다. 금기어처럼 꾹꾹 눌러 담았던 단어가 아이의 입을 통해 방언처럼 터져 나왔다. 현장학습 금지인 이 상황에 아이들도 목말랐을 것이다. 예전이라면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은 이런저런 체험이나 나들이를 했으니 말이다.

"선생님도 현장학습 가고 싶은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현장학습 못 가는 거 너 몰라?"

하며 다른 아이가 이야기한다. 아이들 중 현장학습을 가고 싶지 않은 아이는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소풍'에 얽힌 설레는 기억이 모두에게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내 표정을 보고 당황한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때 우리 반 꼬맹이가 이야기한다.

"그럼 꿈속에서 가는 건 어때요? 마스크 벗고?"

뭐랄까, 현장학습이라는 금기시된 단어에 조금은 눌린 표정이 풀어지면서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게다가 다 같은 마음으로 정말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일찍 잠에 들어 다 같이 꿈에서 만나 현장학습을 가자는 것이다.

"현장학습을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데?"

"저는 무지개 나라요."

"저는 공룡 세계요."

어차피 꿈인데 가지 못할 곳이 어디가 있겠는가? 이왕 하는 상상, 신나고 기분 좋게~~~

"그럼 오늘 밤은 무지개 나라, 내일은 공룡 세계. 어때?"

"좋아요~~~~"

"그럼 오늘 밤에는 노란색에 날개가 달린 버스를 준비할게. 꼭 그 버스 앞으로 와. 날아서 무지개까지 갈거니까."

"그럼 내일은 공룡 버스 어때요?"

"정말 좋은 생각이다. 공룡 버스 타고 내일은 공룡 세계다!"

코까지 마스크를 꾹꾹 눌러쓴 아이들이 웃었다. 입은 보이지 않지만 눈만 보아도, 마스크가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아도 그 상상에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쿡쿡쿡 웃음소리도 나왔다.


아이들이 얼마나 참고 있는지, 얼마나 감내하고 있는지 생각하니 속상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했을까? 내 모습을 그리는 아이들은 마스크를 쓴 모습을 그린다. 그림 속에서라도 마스크를 벗겨주면 어떻겠냐 물으니 선생님이 마스크 벗은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그릴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구나. 우리가 마스크를 벗고 같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구나.

"얼른 코로나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아이들도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마스크 좀 안 썼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손잡고 놀고 싶어요."

"친구랑 손잡고 놀고 싶어요."


아이들은 모르는 줄 알았다. 아직 어리니 세상을 모르니 모르는 줄 알았다. 아니, 몰랐으면 했다. 엄마, 아빠가 시키는 대로 선생님이 하자는 대로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안에 어쩌면 우리가 모를 결핍이나 상처가 자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시기가 너무 길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마스크보다는 즐거웠던 상상과 기억만 남았으면 좋겠다. 마스크를 안 쓴 내 모습을 모르더라도 상상하며 쿡쿡대며 웃던 행복한 기억만 있었으면 좋겠다. 이 또한 나의 욕심이겠지만 그랬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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