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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Dec 29. 2020

예측할 수 없는 날을 산다는 것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그땐 알지 못했다.
예측 가능하지 않은 내일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엄마, 팔이 정말 아파.”

퇴근 후 집에 들어오는데 쪼르르 현관으로 나온 아이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팔이 아파? 무슨 일이야?”

“다음 주 금요일, 학교 가는 날이잖아. 그런데 어쩌면 학교에 가지 못할지도 모른대. 그래서 물건을 다 챙겨가라셨어. 그거 다 들고 오느라 팔이 빠지는 줄 알았어. 어떻게 들고 왔는지 알아? 바구니 위에 물건을 넣어 쌓고 그 위에 책을 쌓아서 턱으로 누르면서 정말 간신히 들고 왔다니까.”

숨도 쉬지 않고 아이가 종알종알 이야기를 했다. 지난주는 원격 수업이었고 어제, 오늘 이틀 출석 수업을 했고 다음 주 금요일에 다시 출석 수업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전면 원격으로 전환될지 모르니 미리 짐을 챙겨 가라는 선생님의 배려가 있으셨나 보다. 갑자기 많은 짐을 챙겨 온 아이도 안쓰럽지만 내일을 알 수 없는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더더욱 아프고 안타깝다.




하루하루 조마조마하다. 조금만 힘주어 걸으면 금세 깨질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다. 언제 갑자기 원격 수업으로 전환될지,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날들......


다음엔 무엇을 할까?


내일은? 다음 주는? 몇 달 후는? 내년엔?

계획적인 성향이라 미리미리 계획하고 사부작사부작 적는 것을 좋아하는데  ‘불확실한 내일’, ‘예측 불가능한 미래’라는 말은 견디기 힘든 감정을 갖게 한다. 물론 누구에게든 그럴 것이다. 올해도 계획하며 적어둔 것이 한가득이었다. 운동, 여행부터 시작해서 배우고 싶은 것들까지. 그 무엇 하나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은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가늠할 수 없다. 다음 주도 지금과 같은 일상을 살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는 날이 되어 버렸다. 안개가 가득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바로 앞 차선을 따라 천천히 당장 눈 앞만 보며 나아갈 뿐이다. 저 먼 곳을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면 감사해야 한다.





우리 내일 또 만나자!


수업을 마치면 아이들과 헤어질 때마다 말한다.

“내일도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만나자.”

지극히 평범한 이 말 한마디를 꼭꼭 힘주어 한 단어, 한 단어 눌러 가며 말한다. 우리 중 누구도 아무 일 없이 다시 여기,  교실에서 만나자고. 이 평범한 인사가 매일 마음 시리게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우리 내일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내일 만나지 못하면 어쩌지? 갑자기 원격 수업으로 전환되어 버리면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병’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걱정이 한가득이다.


인근 몇몇 학교나 유치원들은 확진자 발생으로 지난주, 또 이번 주에 원격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학년말, 갑작스러운 원격으로의 전환은 미처 헤어질 준비를 하지 못한 아이들과의 강제 이별을 의미한다. 학년도를 마치려면 아직 며칠 남아있는데 그 며칠이 부디 평안하길. 우리 모두 충분히 헤어질 준비를 하고 헤어질 수 있길. 오늘도 간절히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기도해 본다.


누구에게나 힘들고 슬픈 한 해였던 것 같다. 계획했던 많은 일들이 물거품처럼 쓸모없는 일이 되어 버린 해였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당장 어찌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좌절하고 마음 졸이며 살고 있지만 그래도......
“Keep calm and carry on.”
매거진의 이전글 글을 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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