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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Jan 03. 2021

결국 원격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결국 이렇게 됐다.

기어코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어제, 오늘 심상치 않게 재난 문자가 계속되었다.

“아, 어쩌지...”

라는 생각을 하며 냉장고를 정리하고 있었다. 몇 달 전부터 냉장고 바닥이 어는 일이 반복되어 결국 냉장고를 다 비우고 청소도 하고 정리도 하며 손을 보기로 했다. 냉장실, 냉동실에 쌓여있는 것들을 꺼내는데 카톡이 계속 왔다. 핸드폰 볼 겨를도 없이 냉장고에서 물건을 꺼내는데 참다못한 남편이

“핸드폰 봐야 할 것 같아. 뭔가 이상하게 계속 온다.”

한다. 그래서 고무장갑을 벗어 싱크대에 걸쳐두고 거실 소파에 둔 핸드폰을 찾아 카톡창을 열었다. 학교 단톡 방에 대화가 쌓이고 있었다. 지역 내 확진자 급증에 따른 유. 초. 중. 고등학교 전면 원격 수업으로의 전환이라는 문구와 그에 따라 부수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쌓이고 있었다.


1. 전면 원격 수업으로의 전환 안내

2. 긴급 돌봄 수요 조사

3. 원격 수업 지원 계획

4. 긴급 돌봄 지원 계획

5. 꾸러미 배부 계획과 안내 등등등


냉장고 정리는 손에 잡히지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결국 냉장고는 남편에게 맡기고 문자로 가정에 안내부터 시작했다. 확진자 급증에 따른 전면 원격 전환, 필요시 긴급 돌봄을 신청하시라는 내용. 문자를 보내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가슴은 두근두근 거리고 머릿속은 멍해지고 있었다. 몇 번을 문구를 수정해 가며 겨우 문자를 보냈다. 몇 주전부터 ‘제발 제발’이라고 했던 일이 결국 오고야 말았다. 아직 아이들과 수업을 마치려면 1주일 하고도 3일이 더 남아있다. 그 기간 중 일주일이 전면 원격으로 전환되었다. 그다음은 상황을 보며 다시 결정될 것이다.

‘아...... 조금만 더 참아주면 좋았으련만. 엊그제 하원 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배웅해주지 못했는데... 월요일이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크게 인사해줘야지. 같이 사부작사부작 연하장을 만들어야지, 새해 달력도 만들어야지, 아이들이 하고 싶다던 그 놀이를 더 해야지......’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야 말았다.


기적 같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


조마조마한 상황에서도 매일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매일 아침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이 얼마나 기적같이 귀한 순간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추운 아침,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걸어 들어오는 아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어 주는 아이, 나만 보면 하얀 이를 보이며 미소를 보이는 아이, 수줍어 고개만 끄덕이는 아이, 긴 점퍼 뒤로 가방이 넘어갈 듯 졸음을 채 떨치지 못하고 등원하던 아이, 보고도 못 본 척 부끄럼을 보이던 아이,..... 한 명, 한 명 다 눈에 밟힌다. 모두를 만날 수 있었던 그 아침 차가운 공기가 문득 그리워진다.

바이러스가 없어지면 우리 모두 마스크를 벗어서 하늘 높이 던지고 크게 소리 내어 웃고 춤도 추자고 했는데 결국 이번 학년도가 다 끝나가는 지금, 점점 더 기세 등등해지고 존재감을 미친 듯 뿜어대고 있으니 마스크를 벗기는커녕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 것 같다.


마음도 피폐해진 것 같고 작은 일에도 자꾸 상처가 쌓인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든 조금씩 해 나가겠지만 이렇게 또 하나의 상처가 새겨졌다. 이 상처는 어른인 나만 아는 상처였으면, 내 아이들은 이런 기분을 몰랐으면.... 언제나 나보다 더 긍정적이고 현명한 아이들이니 그럴 거라고......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 생각이 많은 나는 상처 받아도 너희들은 있는 그대로만 보고 느끼며 긍정적으로 넘겨줄 거라고..... 그랬으면... 욕심을 내 본다.


언젠가 지금의 일들이 웃으며 이야기할 하나의 에피소드가 될까? 그때 그랬는데 참 마음이 그랬다... 고.

지금의 우리를 추억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아이들은 지금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이번 주 부디 상황이 잠잠해져서 졸업하기 전에 내 아이들 모두를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써 준 편지, 정성껏 접어주던 하트와 꽃, 작은 손으로 만들어주던 반지와 케이크 모형까지... 다시... 꼭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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