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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Jan 04. 2021

결국 코로나 검사까지

학교에 선별 진료소가...

본 메시지를 받은 학생은
코로나 19 검사 대상입니다.


원격 수업으로의 전환으로 가정에 꾸러미를 보내야 했다. 꾸러미를 담을 종이 가방이 필요해서  문구점에 가서 종이 가방을 사고 주유를 하고 자동 세차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자동 세차기가 돌아가기 시작하자마자  ‘띠링’ 아이 학교에서 ‘긴급 공지’가 올라왔다. ‘본 메시지를 받은 학생 및 교직원은 코로나 19 검사 대상입니다....’로 시작하는 공지문이 올라오고 있었다. 머릿속에 멍해지며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세차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게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고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결국, 결국 이런 일까지 생기고야 말았다. ‘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지만 받지 않으셨다. 아마 학교는 더욱 정신없는 상황이었을 터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아는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눈물이 나서 말을 할 수 없었다. ‘놀라지 마세요.’라는 말만 계속했고 그분 역시 정신이 없어 보여서

“부모도 같이 검사를 받아야 하나요?”

라고 겨우 여쭈었다.

“부모는 의무 대상은 아니지만 원하면 할 수 있어요.”

하고 말씀하셨다.




주유소에서 나와 집으로 어떻게 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엉엉 울어버렸다. 무슨 큰일이 생겼는 줄 알고 남편도 처음엔 놀랐으나 딸 학교에 확진자가 생겼고 전수 검사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하니 이내 차분해졌다. 남편은 훨씬 차분하고 이성적이었다.

“눈물 그치고 집으로 들어가.  딸 놀라게 하지 말고”

라고 말했다. 아이가 놀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눈물 그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그렇지만 눈물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서러운지도 모르겠고 그냥 눈물이 계속 나서 한참을 더 자동차에 있었다. 그렇지만 학교에 생긴다는 선별 진료소에 갈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아 얼른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당장 다음 날 나도 아이들 가정에 꾸러미를 전달해야 해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일단 학교 단톡 방에 우리 사정을 말했더니 초등학교 선생님 한 분이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잠깐 집 앞으로 와서 내가 구입한 종이 가방을 가져가셨고(나 역시 내 상태를 믿을 수 없어 여러 발자국 떨어져 겨우 종이 가방을 전달했다.) 톡으로 챙겨야 할 물건을 말해주면 대신 꾸러미를 챙겨주겠노라 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어떻게 생각을 해 가며 챙겨야 할 꾸러미 목록과 각 물건의 위치를 적어나갔다.

‘1. 편지지 세트: 책상 뒤 수납장 구석, 2. 입체북 만들기: 교실 뒤편 장을 밀면 나오는 수납장에........’

꾸러미를 갑자기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최대한 머리를 굴려 교실에 준비된 수업 준비물 중에서 골라내야 했고 그 위치는 나만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어떻게 겨우 카톡을 보내고 집으로 들어왔다.


문을 여는데 딸아이가 반갑게

“엄마, 문구점 잘 다녀왔어?”

한다. 밝은 아이를 보니 또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응, 잘 다녀왔어. 그런데 할 이야기가 있어.”

라며 최대한 울지 않으려 노력하며 아이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다.

“너희 학교에 확진자가 생겼대. 그래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한대.”

이야기를 하며 결국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 울지 마. 괜찮아. 아직 내가 코로나에 걸린 것도 아니고 모두 해야 하는 거잖아. 아직 걸린 것도 아닌데 왜 벌써부터 걱정하고 그래. 나중에 걱정해도 늦지 않아. 그거 독감 검사랑 비슷하다고 했지?”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아이는 오히려 차분했다. 내가 알고 있는 내 딸이 맞나 싶었다. 1년 전 겨울, 독감 검사를 하며 눈물, 콧물을 쏟아서 소아과를 떠나가게 한 전력이 있는지라 이번 검사도 쉽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철없이 앞서 걱정하며 울고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정말? 괜찮겠어?”

“응, 떼쓰고 우는 건 저학년 애들이 예약했으니까 그걸 내가 뺏으면 안 되지. 나는 잘해 볼게.”

무엇이 아이를 이렇게 크게 만들었을까? 아이의 말과 행동이 대견하고 안쓰러워 다시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나를 위로한 것은 또 오히려 딸아이였다.

“엄마, 학교에서 마스크 잘 쓰고 있었고 쉬는 시간에도 어차피 애들이랑 거의 말도 못 했어. 괜찮을 거야.”

한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걱정이 되는지 다시 물어온다.

“만약에 코로나에 걸리면 병원 같은데 갇혀 있어야 하지? 그러면 책을 많이 가져가도 될까? 정말 심심할 것 같아.”

아마 그래도 되지 않을까... 중얼거리며 말을 얼버무리며 아이에게 나갈 준비를 하자고 했다. 아이는 다시 양치를 하고 머리를 빗고 옷을 입고 나왔다. 손에는 두꺼운 책 두 권이 들려 있었다.

“그 책은 왜?”

“응 코로나라서 병원에 가야 하면 심심하니까 일단 이거라도 가져가서 읽으려고.”

아이의 말이 우습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서 눈물 반 웃음 반.. 그랬다.

“코라나 검사를 해도 바로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라서 집에 다시 와서 기다려야 해.”

“아, 그런 거구나. 난 바로 병원으로 실려가는 줄 알았네. 다행이다.”

아이도 어쩌면 긴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집을 나서서 학교로 갔다. 운동장에는 눈이 쌓여 있었고 바람이 차가웠다. 이미 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운동장 가득 줄을 서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았던 이 장면 속에 우리가 서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왜 우리와는 별개라고 생각했을까? 이렇게 바로 앞까지 와 있었는데..... 다들 별 말이 없이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그 와중에 아이의 친구들이 이름을 부르고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은 그저 해맑았다.

‘그래, 모든 걱정과 두려움은 부모들 몫으로 하자. 너희들은 그저 지금 이대로 맑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줄을 서있는 내내 겨울 공기가 차갑기도 했지만 두려움과 걱정으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남편에게서도 수시로 전화가 왔다. 남편도 이쪽으로 와서 같이 검사를 받겠다고 했다.


눈이 내린 운동장 위 길고 긴 줄. 사진은 긴 줄의 일부였다.


꼭 전쟁 난 것 같아.


아이들이 뛰어놀지 못한 운동장에는 어느새 하얀 눈이 내렸고 이 운동장 주인이면서도 마음껏 뛰어놀지 못한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길고 긴 줄에 서 있었다. 참으로 생경한 풍경이었다.

“엄마, 이렇게 서 있으니까 꼭 전쟁 난 것 같아. 전쟁이 나서 어디 가는 거 같지 않아? 피난? 뭐 그런 거?”

까르르 웃으며 아이가 이야기한다.


순간 ‘인생은 아름다워’의 귀도가 생각났다. 귀도는 이보다 더한 순간에 아이의 순수함과 맑음을 있는 그대로 지켜주었던 것이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생각이 너무나 많은 탓에 힘들고 두렵고 너무나 걱정스러웠다. ‘어쩌지’ 병이 다시 생길 지경이었다.


혹이라도 내가 확진자가 된다면 우리 반 아이들은 어쩌지, 우리 학교는? 지금과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 학교에 선별 진료소가 들어설 터였다. 나 하나 확진되는 것보다 그에 따른 후폭풍이 더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길고 긴 줄, 사이사이, 학교 선생님들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부모와 아이들을 안내하고 인사를 하신다. 아침부터 확진자 발생에 놀라기는 선생님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누구 하나 짠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2시간 남짓 줄을 서서 강당까지 들어섰다. 넓은 강당은 보건소에서 나온, 방호복을 입은 분들이 가득 차 있었다. 역시 텔레비전에서, 인터넷 기사 사진 속에서 보았던 처음이지만 익숙한 이 장면이 똑같이 재현되고 있었다. 방호복을 입은 저분들은 며칠 째 쉬지 못하고 일하는 중일 텐데 얼마나 힘이 들까 싶었다. 마스크 위에 페이스 실드를 덧쓰셨는데 온통 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마스크만 써도 답답한데 그 위에 또..... 저분들도 누군가의 가족일 텐데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누군가의 아빠, 엄마, 혹은 아들과 딸일 것이다.  그 가족들 마음은 오죽할까 싶었다.

강당을 둘러보니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곳에서 아이가 학예회를 했는데, 합창단 공연을 했는데, 뮤지컬 공연을 했는데, 입학식을 했는데.... 이 곳이 이렇게 다른 모습일 수도 있구나. 쓸쓸하고 마음이 아렸다.


아~~~ 소리 내세요.


어느 줄에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 가족들도 보건소 직원 분들도 쩔쩔 매고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검사를 해야 했다. 가족들이 아이의 팔과 머리를 잡고 아이를 달래 가며 검사를 하는 것 같았다. 이 상황이 정말 아팠다, 아니, 단순히 아프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무엇 때문에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우리 순서가 되어 검사를 시작했다. 남편, 아이, 나의 순서로 검사를 받았다. 생각보다 씩씩한 딸아이를 보며 엄지 척을 해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눈물 날만큼 고마웠다. 긴장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모습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접수하는 곳에 이름, 연락처, 주민번호를 알려주면 작은 시험관 같은 플라스틱 통을 준다. 그 통에 이름과 일렬 변호가 적혀있었고 붉은색 시약이 들어있었다. 의자에 앉아 검사를 기다렸다.


이 플라스틱 시험관에 두 개의 면봉이 담길 것이다.


“마스크를 턱까지 내리세요. 아~~~ 소리 내세요.

긴 면봉이 목구멍 깊숙이 들어와 왔다 갔다 했다.

“마스크로 입만 가려주세요.”

이번에는 긴 면봉이 콧구멍 깊숙이 들어와 여러 차례 왔다 갔다 했다.

“이제 다 되셨어요. 마스크 쓰고 가시면 됩니다.”

이 분들은 이 말을 오늘 하루 몇 번이나 하고 있는 걸까? 이 면봉을 몇 번이나 찌르고 빼고 있는 중이고 또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해야 할까? 어질어질하고 마음이 안 좋은 상황이라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검사를 마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한참이나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서 있었던 탓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으슬으슬했다. ‘정말 코로나일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러나 어쩐지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제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길고 긴 밤이 될 터였다. 잠은 제대로 들 수 있을까?


무엇보다 밝은 딸아이 덕분에 뭐든 일이 수월했다. 우리 집에서 제일 철이 들지 않고 조급해하며 걱정하는 사람은 나 하나여서 정말 다행이다. 위기의 순간에 진짜 모습이 나온다고 했는데.... 이게 나의 진짜 모습이었나 보다. 애기라고 생각했던 아이의 맑음과 차분함이 내 아이의 진짜 모습이었나 보다. 얼마나 감사한지....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 집 철부지가 이렇게나 자라 있었다니. 우리 집에서 나만 좀 더 철이 들면 되겠다.


띠링


다음날 아침, ‘코로나 19 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정되어 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모든 근심과 두려움이 다 가라앉는 감사한 순간이었다. 당연히 음성이어야 했지만 진짜 ‘음성’이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 편으로 이 ‘음성’이 끝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 한참 진행 중인 코로나 속에서 아직도 몇 번의 검사를 더 해야 할까라는 생각, 오늘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검사를 하고 이 검사를 받아야 할까?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확진자’가 되어 슬픈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문자 한 줄이 누군가는 천국으로, 누군가는 지옥으로 오가게 할 것이다.




인류를 멸하지 못한 사건은 결국 인류를 발전시킨다는데 이 바이러스로 우리는 얼마나 많이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 발전하고 성장하기 전 마음에 생기는 상처들을 어떻게 감당하며 치유해 갈 수 있을까? 터널이 길수록 예민해지는 날들이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귀로처럼, ‘죽음의 수용소’의 저자 빅터 프랭클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너무나 멀고 힘든 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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